인도, 그리고 불교(50)

편집부   
입력 : 2010-09-14  | 수정 : 201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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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례의 발전)브라만교·제사의식의 변형… 성불로 나아가는 과정

밀교의 의례는 320년에 순수한 인도혈통의 굽타왕조가 형성되면서부터 그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한다. 이는 굽타왕조가 브라만교를 국교로 삼고 바라문의 문화를 부흥함에 따라 불교도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농촌사회에 뿌리를 두고 진행해오던 브라만교는 굽타왕조의 적극적인 부흥책으로 인해 표면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사제계급인 브라만들의 언어였던 산스크리트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었고 브라만의 교학이 부흥하였다. 브라만교가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브라만교의 사상과 종교의례가 부활하였고, 브라만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적인 사회질서가 확립되었다. 힌두설화문학의 최고봉으로 세계 최장의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산스크리트어로 씌여진 것도 이 시대이다.

브라만 교학의 부흥에 대응하여 불교는 무착, 세친 등에 의해 이론체계와 수도체계를 정교하게 구축하였으며, 동시에 브라만교의 의례를 대폭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백시리밀다라가 한역한 관정경 제5권에 의하면, 당시에 불교가 외도의 다양한 술법(術法)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경전에서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정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도들의 다양한 술법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보자. "보관보살(普觀菩薩)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술법의 갖가지 모습들을 짓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내가 만약에 세상에 있다면 이와 같은 모습의 법은 구할 필요가 없느니라. 내가 이미 열반에 든 미래의 악세에는 오탁의 중생이 바른 것을 믿는 자는 적고 삿된 견해에 많이 물들어 참으로 바른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이 장구(章句)와 다양한 술법들을 설하느니라. 군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나는 이러한 다양한 장구를 내는 것이니 삿된 법이 아니니라.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나, 여러 비구들은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경서(經書)를 보고 독송하는 자는 이 법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삿된 견해를 일으키며 비방하고 믿지 않느니라. 나는 전에 이미 비구를 보호하는 장(章)에서 비방의 허물과 각각의 허물들에 대해 말하였느니라. 만약에 듣는 자가 오직 응하여서 오로지 닦고 불신(不信)을 내지 않거나 행하는 자를 보고는 마치 큰 스승과 같이 여겨 공경하고 예배한다면 가히 큰 복을 획득할 것이며 불도(佛道)를 얻을 것이니라.'"

이러한 이념 하에 외도의 호마법이 마등가경에 나타나고, 5세기 후반에 담요에 의해 한역된 대길의신주경에는 7중의 결계작단법을 설하고 있다. 그리고 힌두교에서 비롯된 여러 존자들도 불교로 끌어들여 그 이름을 나열하고, 그 각각에 대하여 기원의 내용을 달리하는 호마 공양법을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의 밀교 경전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이한 사항은 경전 내에 제존(諸尊)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4세기말경까지는 사방의 네 부처님과 시방의 열 부처님이 구성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담무참역인 금광명경의 사방 4불과 불타발다라역인 불설관불삼매해경에서의 사방 4불과 시방 10불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사방 4불을 살펴보면 동방의 아촉불(阿佛), 남방에 보상불(寶相佛), 서방에 무량수불(無量壽佛), 북방의 미묘성불(微妙聲佛)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사방의 네 부처님은 이후 태장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로 전개되는 원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네 부처님을 공간적으로 사방에 배열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관계성에서 연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불설관불삼매해경에서는 또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상을 공양한 후에 부처님을 관상하는 방법이 설해지고 있다. 즉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는 부처님께서 안 계시므로 마땅히 불상을 관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상을 관찰하려면 먼저 불탑에 들어가서 좋은 향과 진흙과 보통의 흙으로 땅을 발라서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향을 사르고 꽃을 흩뿌리며 불상에게 공양하며, 자기의 허물과 악을 말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참회하여 이와 같이 마음을 조복하여 7일을 보낸다. 또한 출가자는 여러 스님들 앞에서, 재가자는 부모와 스승과 어른들 앞에 나아가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마음을 조복하기를 7일간 행한다. 마음이 유순해지면 부처님 전에 나아가 가부좌하고 몸을 안온하게 한다. 몸이 안온해지면 불상의 발가락으로부터 차례로 우러러보며 관상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양대(梁代·502∼557)에 한역된 모리만다라주경(牟梨曼陀羅呪經)에서는 결계와 작단에 이어 중앙에 부처를 그리고 우측에 12개의 팔을 지닌 금강상(金剛像)을, 좌측에는 16개의 팔을 지닌 마니벌절라보살을 그리는 3존(尊) 형식의 화상법(畵像法)을 서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입도량작법과 호마법이 한층 정비되었으며, 인계를 맺는 방법과 그에 따르는 주(呪)가 처음으로 설해져 있다. 경의 내용은 결계를 행하고 단을 쌓아 토단(土壇)의 만다라를 축성하고 밀교의 의식을 거행한 것이며, 의식이 끝나면 쌓은 단은 허물어 버린다. 특히 토단에 그려진 장엄한 채색며 결계로 표시되는 흰가루의 선은 이후의 도회만다라(圖繪曼茶羅)에 수용되기도 하였다. 모리만다라주경에서는 토단 위에서 공양물을 헌사하는 절차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토단만다라는 고대 인도의 왕성(王城)을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3존 형식의 화상법은 7세기 중엽 아지구다(阿地崔多)가 한역한 불설다라니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석가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금강보살을,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을 그린다고 하였다. 이것은 후에 밀교의 존상들을 조직화해서 불부, 연화부, 금강부의 3부로 전개되는 하나의 단서로 여기고 있다.

7세기 전반기에 이미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고 있는 소실지갈라경(蘇悉地 羅經), 소바호동자경(蘇婆呼童子經), 유희야경(  耶經) 등에는 수법에 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 8세기 중엽에 선무외에 의해 한역된 소실지갈라경에서는 식재법, 증익법, 조복법 등 3종의 호마법을 설하고 있다.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선지가진언(扇底迦眞言·息災眞言)을 염송하여 재앙을 없애는 호마법을 행하려면 귀명삼보하고 깊이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켜 백월(白月) 1일 황혼이 질 때 염송하기 시작해서 선지가 성취법을 행한다. 정거천(淨居天)이 내려와 인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천복(天福)으로 도와서 속히 실지를 얻을 수 있다. 보슬치가법(補瑟徵迦法·增益法)은 마음이 뛸 듯이 기쁠 때 혹은 지송해서 호마할 때, 본부(本部)에서 말한 법에 의거해서 백월 15일에 시작해서 다음 백월 15일에 이르러 끝마쳐야 한다. 해당 부의 법에 의거해서 보슬치가법을 행한다. 인시(寅時)에 시작해서 정오[日中]에 마쳐 한결같이 본정(本情)에 따른다. 아비차로가법(阿毘遮迦法·調伏法)은 마음에 진노를 품고 진심(瞋心)으로 상대방을 다스리면서 자신은 공포가 없을 때 이 법을 행해야 한다. 분노진언을 염송하거나 혹은 호마법을 행한다. 시일을 가리지도 않고 재식(齋式)도 하지 않고 분노가 일어났을 때 시작해야 한다." 

8세기 초 보리유지에 의해 한역된 일자불정륜왕경(一字佛頂輪王經)에서는 일자(一字)의 종자사상과 식재, 증익, 조복의 3종수법을 설하고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여래를 중심으로 하고 동방 보성여래(寶星如來), 북방 아촉여래, 서방 무량광여래, 남방 개부연화왕여래(開敷蓮華王如來)를 그리는 화상법을 설하고 있다. 또한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索神變眞言經) 제9권에서는 결계와 작단을 행하고 내원(內院)의 중심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동쪽에 아촉여래를, 남쪽에 보생여래(寶生如來)를, 서쪽에 아미타여래를, 북쪽에 세간왕여래(世間王如來)를 안치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일자정륜왕경의 내용은 태장만다라에, 불공견삭신변진언경의 내용은 금강계만다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보면 밀교의례의 발전은 브라만교에서 행해지던 결계와 작단, 그리고 단에서 행해지는 신에 대한 제사의식이 불교적으로 변형되어 성불(成佛)로 나아가는 밀교의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복덕과 지혜를 구현하여 이 몸 그대로 부처가 되기 위한 밀교의 수행의식으로 바뀌어간 것이다.        

김치온(명운)/ 진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