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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대도 3

편집부   
입력 : 2013-09-02  | 수정 :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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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법신의 가르침은 희망의 메시지"


등상으로 한정되지 않은 무한의 부처님
삼밀수행이라는 간소한 형태로 정립해


진각종교학의 핵심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자성법신과 심인진리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조님 이전의 불교는 부처님이라면 주로 사찰 대웅전이나 야외에 조성되어 모셔진 형상 있는 부처님만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었다. 아니 더 이상의 부처님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현실이었다. 그러나 종조님께서는 등상으로 한정된 부처님이 아닌 무한의 부처님, 형상을 넘어선 부처님에 대한 소망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같은 종조님의 사고 바탕에는 계성학교를 통해 접한 기독교가 다소의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선배스승님께서 다른 글에서 지적하신 바 있다.

기독교의 신앙형태를 통하여 무등상신앙의 보편성과 편의성 등에 대한 감명은 이후 종조님께서 불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불교의 신앙형태에 대한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불교는 왜 기독교와 같은 보편적 신앙의 형태가 없으며, 등상불 신앙에만 국한되어 대부분의 불자들이 차원이 낮은 기복적인 신앙형태 밖에 보이지 않는가 하는데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셨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결국 종조님의 깨달음을 통하여 법계진각님 즉 법계에 두루 계신 법신부처님의 존재를 깨달음으로써 의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게 되었고, 이것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신행 형태로서의 진각종이 탄생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진각종의 탄생과 꼭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례로 이슬람교의 탄생을 들 수 있다. 당시 중동의 여러 나라들은 부족단위의 신을 믿은 까닭으로 많은 신들이 난립하였고 이것은 전쟁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사상적으로 혼란스러운 점에 대하여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중동에 전해진 기독교를 통하여 하나의 신으로 통합된 중동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이 같은 종교적 목마름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기도에 매진하던 중 유일신 알라의 계시로 세계 4대 종교의 하나가 된 이슬람교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구하면 얻어지고 두드리면 열리며, 목마른 자가 샘을 파는 것은 바로 시절인연이 도래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종조님께서는 물질이 개벽하는 새로운 시대에, 새 시대에 맞는 각성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셨다고 할 수 있고, 이 같은 목마름은 결국 깨달음과 창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창종의 여러 요인 중 종교적인 요인에 국한된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신불을 통하여 시방삼세에 두루하여 계시는 부처님의 존재성을 깨달으시고, 또한 그 법신부처님이 우리들 자신에게 내재하여 있음을 알려주신 것은 종조님의 가르침이 불교 중에서도 밀교의 진리가 됨을 설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바로 참 부처님이 계심을 알아야 한다는 '자성법신'의 가르침은 마치 근대의 천도교에서 '인내천'이라 하여 '사람이 바로 하늘(님)'과 같다고 말한 진리와 그 맥이 통하고 있다. 양반과 평민, 노비의 계급이 엄연한 사회질서였던 시대에 모든 사람이, 바로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믿어온 하늘님 신앙의 하늘님과 같다는 천도교의 선언은 주역의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새로운 인간관'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가르침은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 시대, 새 진리에 대한 기쁨으로 가슴 뛰게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진각종의 창종과 '인내천'에 버금가는 '자성법신'의 가르침은 타성적이고 의뢰적인 신앙 속에 살고있던 수많은 불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법에 대한 무한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가 주(主)와 종(從)을 주로 한 신앙의 형태에서 부처님과 중생이 대등한 관계성을 위주로 한 종조님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혁신적이고, 진취적이며 자유평등시대에 맞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범성불이(凡聖不二)적 관계성의 교리를 가진 대승불교 중에서도 가장 대승적인 가르침인 밀교라 할 수 있다. 대승은 모든 중생이 다 깨달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양하기 위하여 출가자 위주의 불교를 모든 대중들에게 회향하여 열었고, 전통밀교는 다시 그 깨달음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불타관과 수행적 방법론을 법신불과 삼밀수행을 통하여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통밀교는 그 수행의 엄정성으로 인해 아주 뛰어난 제자들만을 선발하여 수행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일반 불자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스런 영역으로 공개되지 않아 왔다.

이 같은 전통의 밀교에 대하여 종조님께서는 현 시대에 맞는 대승적 밀교수행의 방편을 창안하여 체득하시고, 삼밀의 수행을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지극히 간소한 형태로 정립하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진언행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몸으로는 금강지권인(또는 금강권), 입으로는 육자진언 염송, 뜻으로는 육자진언을 관상하는 삼밀수행이다. 그 관상의 내용이 옴마니반메훔으로 의미되는 오불과 금강보살을 나타내는 진각종적 만다라인 육자관념도라 할 수 있다. 이 육자관념도는 종조님께서 진각종적 삼밀수행을 정립하시는 과정에서 체득하여 그리신 종조님 내면세계의 깨달음을 드러낸 그림이다. 밀교에서는 행자로 하여금 속히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하여 대각을 성취한 밀교의 성취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드러난 깨달음의 세계를 구체화하여 그림으로 그려내게 된다. 이것을 '본질(깨달음)를 함장하여 가진 것'이란 의미의 만다라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만다라는 깨달은 이들이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이끌기 위한 자비의 발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조님의 깨달음의 내면세계를 드러낸 육자관념도. 그것은 우리들 마음의 참 모습이 불보살의 세계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며, 그 속에 깨달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과 이를 체득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종조님의 큰 자비를 생각하면서 눈을 비비고 다시금 육자관념도를 바라보자. 육자진언이 육자관념도의 모습으로 종조님의 마음 속에 메아리친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서 생생히 메아리쳐 올 때 종조님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은 하나가 되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의발로 법을 전해 특정한 사람만이 법을 전했지만, 종조님께서는 현 시대에는 이 같은 진리를 심인의 법으로써 우리 모두가 전해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우리 진언행자들은 종조님의 법은에 감사하면서 진언행자 모두 함께 손잡고 이 법을 전해 받을 수 있도록 진각의 큰길을 다 함께 걸어가기를 서원해 본다.

법경 정사 / 교무국장, 시복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