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3

편집부   
입력 : 2013-09-16  | 수정 :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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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調和)-코스모스를 노래하다


지독했던 더위도 한풀 꺾인듯하니 이제 곧 가을이 다가오려나 보다. 며칠 사이에 길가 여기저기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붉고, 희고, 분홍빛을 띈 꽃들이 초록색 가지와 잎에 어우러져 참 예쁘기도 하다. 가느다란 가지가 약한 바람에도 쉽게 움직여 꽃들이 한들거리니 그 자태가 더 곱다. 가을의 전령사라면 역시 귀뚜라미와 코스모스다. 우리말 '살살이 꽃'이라는 이름보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다. 코스모스(cosmos)란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우주의 질서' 그리고 '조화'라는 뜻이다. 우주가 자리를 잡기 전의 상태인 '카오스'(chaos)에 대비되는 말이다. 어찌하여 '순정'(純情)이라는 꽃말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원래 이름 그대로 꽃말을 '조화'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성들이 얼굴의 부조화를 가리어 예쁘게 보이려고 치장하는 화장품의 영어 표현 코즈메틱스(cosmetics)도 코스모스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대표적 가을전령사 노릇을 하고 있는 코스모스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고작 100여 년 내외에 불과하다. 멕시코 원산으로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작로를 내기 시작하면서 가져와 길가에 심기 시작한 것이란다. 그래서 더러는 재래종이 아닌 코스모스를 가을의 대표적 식물로 인정함에 인색한 문인들도 있다. 일본인들이 가져왔다는 이유와 함께. 그리 따진다면 우리 식탁에 빠짐없이 오르는 양념, 고추는 어찌할 것인가? 고추 또한 기껏해야 우리 땅에 내린 지 불과 300여 년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역시 일본으로부터. 그분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배추나 무에 고춧가루 양념을 한 김치도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 될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입에 익은 동요 '오빠생각'도 권장할 노래가 못 된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꽃들 역시 외래종이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의 일인 것 같다. 한때 돼지풀과 미국자리공이란 외래식물이 유입되어 재래식물을 밀어내며 우리 땅을 망치고 있다는 호들갑성 기사와 방송이 사람들을 염려스럽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귀화식물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생각만큼 폐해가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이 받아들이자 이들이 재래종과 조화를 이루면서 토착식물처럼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귀화식물 즉 외래종이라고 해서 다 재래종의 성장을 방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재래종이 하지 못하는 기능을 발휘하여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귀화식물도 부지기수이다. 채송화, 봉숭아가 그러하며 고추와 가지가 그러하다. 게다가 코스모스는 제가 가진 이름처럼 우리의 산야에 뿌리를 내리고 재래종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을의 대표적 꽃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는가.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단일민족임을 강조하여 자랑스럽게 여긴다. 모두가 단군의 자손으로 이민족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순혈관계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그 뜻을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이라 풀이하고 있다. 영어로는 'Nation State'에 해당된다. 이 경우의 Nation이란 문화, 언어, 가치관을 공유하는 주민집단이란 의미이다. 사실 근대사회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민족이란 개념은 없었다. 민족이란 용어는 서구 근대화의 역사적 산물이다. 우리의 민족개념은 겨우 구한말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 촉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단일민족론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1880년 일본 지식인들이 외세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백성들의 단결을 주창하여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 칭한 바 있다. 일본의 단일민족론은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었지만, 위기 때마다 정치성향이 강한 일본 학자들 특히 유사사학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해왔고, 그 때마다 소기의 목적을 거두곤 했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의 단일민족론 역시 이 이론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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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보장 각자/보정심인당 신교도



단일민족론이란 선동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즉 쇼비니즘의 한 형태이다. 이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기 민족만을 우월하게 여기고 타민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수단으로 쓰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가진 위험한 사상임에 분명하다. 단일민족사관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주의와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양극단의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이란 말은 아직도 버젓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민족이 오로지 순혈관계로만 이루어진 단일민족이 틀림없는 사실일까? 중학교 과정의 역사만 이해한다면 그 이론이 허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5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외래인들과 숱한 교류가 있었고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어찌 우리 민족이 순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도 우리나라에는 수십 개나 되는 귀화 성씨가 대를 이으면서 살고 있다. 중국 성씨가 대부분이지만 몽골, 여진, 일본은 물론이고 베트남이나 아랍 위구르계 성씨도 있다. 강릉유(劉)씨, 수원백(白)씨, 현풍곽(郭)씨 등이 중국계이고, 조선의 개국공신인 이지란도 여진에서 귀화하여 청해(淸海·지금의 북청)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충렬왕 비인 제국공주를 따라왔던 후라타이는 연안(延安)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고종 때 응웬[元]씨족에 의해 왕좌를 찬탈 당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李龍祥)은 망명 중 표류 끝에 옹진에 도착, 귀화하여 화산(花山)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 부대의 선봉장이었던 김충선(金忠善)은 귀화하여 우록(友鹿)김(金)씨 성을 하사 받았으며 후에 김해(金海)김씨에 편입된 바 있다. 위구르 계로는 경주(慶州)설(薛)씨와 덕수(德水)장(張)씨가 있다. 그 외 귀화 성씨를 다 소개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가 단일민족일 수 없다는 증거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144만 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이 이미 다문화 사회에 돌입했으며, 그 숫자가 늘면 늘지 줄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문화는 곧 국력 신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세계는 이미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서로 너무 가까워져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극우 성향을 띤 유럽인들이 아시아계나 아랍계가 나라를 망친다며 다문화현상을 탓하고 있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재일 한국인을 죽이자는 끔찍한 선동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조짐이 보인다. 일부 외국인들의 범죄와 불법체류자, 국내 정착을 위한 사기결혼 등을 이유로 외국인을 경멸하고 단일민족론을 내세우며 그들을 배척하자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자칫 쇼비니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단일민족론은 적자생존의 냉혹한 국제상황에서 민족의 응집력을 높일 수 있는 이념적 기제라는 장점이 있지만, 혈통적 폐쇄성으로 인해 다문화주의를 포용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반면에 다문화주의는 인간존엄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장점이 있지만, 민족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는 단점이 함께 내재해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려면 어찌해야 옳은가? 역설적 위치에 있는 두 가치체계를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 대안은 너와 내가 둘 아니며 모든 생명체가 나의 가족이라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과 보살정신이다. 불이사상은 인종, 언어, 지역, 문화, 종교 등의 차이를 포용하는 보편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으며, 보살정신은 어려움에 처한 삼라만상을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불행했던 이주의 역사가 있다. 구 소련 땅에 강제 이주 당한 카레이스키(고려인),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떠났던 조선족,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듣도 보도 못했던 카리브해지역에서 애니깽(밧줄 제작용 선인장의 일종) 농사를 지으며 혹사당했던 조선인들, 오로지 가난을 면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 이들 역시 이방인으로서 토착민들에게 수많은 멸시와 압박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당시 이들이 정착했던 나라에도 불이와 보살정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때 미국자리공이나 돼지풀이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하여 잠시 혼란스럽게 했지만, 이제 잠잠하다. 고추가 이 땅에 자리 잡은 지 300년 만에 우리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양념이 되었다. 외래식물이 오로지 스스로 조화해서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게 아니다. 땅이 불이와 보살의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여 함께 살게 했기에 가능했다.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게 된 다문화현상, 땅이 그러했듯이 불이와 보살의 마음으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불이(不二)와 보살정신이야말로 세계평화와 전 인류의 행복의 기저가 되는 부처님의 귀중한 가르침이요, 코스모스의 어원인 조화의 바탕이다. 지금 우리에게 모나지 않고 넓고 크고 둥글며 가득하여 화합하여 섞이고 걸림이 없는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자세와 함께, 다양한 상대적 차별상이 제 기능과 가치를 바람직하게 발휘할 때 조화의 세계가 실현된다는 회당대종사님의 이원사상 즉 다양성의 조화, 이이불이(二而不二)의 실현이 필요한 때이다.

모든 것은(다른 것은) 존재이유와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함이 화합이며 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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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일 정사 / 보원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