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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대도 4

편집부   
입력 : 2013-12-03  | 수정 :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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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개혁역사의 새로운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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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없는 실천은 무량한 과보를 낳으며
심인을 깨달아 성불하는 양식이 되고
상 있는 실천은 유한한 과보만을 낳으며
성불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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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육자관념도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 이 육자관념도에 대해서는 육자진언을 설한 경전을 살펴볼 때 다시금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금부터는 창종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각종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대승불교정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진각종단의 역사를 기록한 교사(敎史) 맨 첫 장에 언급되어 있는 최초의 교화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손 회당님의 창설로서 육자심인 및 금강경사구게 무주상법과 법화경 십악참회 등의 국역한 원해인으로서 공부한 결과 여하한 병환자라도 다 낫게 되는 방편을 만들어서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 속가에서 교화에 착수하였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교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초기 종단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적 내용은 육자심인 즉 종조님께서 육자진언을 통한 심인을 깨달으신 내용과 함께 '금강경'의 사구게와 무주상법, '법화경', 신구의 삼업을 참회하는 십악참회 등 대승경전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종문을 열었다는 내용이다. 교사에서 언급하는 초기 종단은 소의하는 바 경전들의 내용을 본다면 명실공히 대승불교를 표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불교종단의 모습을 보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결혼은 하였으되 그 모습은 출가승의 모습을 한 분들이 많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출가승의 모습을 가진 완전출가종을 지향한 조계종이 이어서 등장하게 되었으므로, 종조님과 같이 수행자의 모습과 내용이 완전히 대승적인 모습인 재가보살종으로 종문을 연 것은 한국불교 개혁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으며, 이것은 출가와 재가의 이원종파로써 불교를 대 발전하게 하고자 하신 뜻이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교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승경전의 내용을 통해 종조님의 뜻을 알아보기로 하자.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정신적 지주가 된 반야사상을 담은 경전이며, 사구게는 '금강경'의 핵심사상을 담고있는 4구절로 되어있는 게송을 말한다. 이 사구게는 '금강경'에서 5품, 10품, 26품, 32품에 4번 나오고 있으나 교사에서 말하는 사구게는 5품인 '여리실견분'의 "무릇 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모든 상을 상으로써 보지 않으면 바로 부처를 볼 것이다"(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구절을 가리키신 것이다.

이 사구게를 언급하신 이유는 '금강경' 5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냐?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 몸의 형상이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라고 설하고, 이어서 위의 사구게가 언급되고 있다.

모든 (연기와 인과의 법칙으로 나타난)현상적인 상[相, 모습]은 변하고 영원하지 않으니, 만약 모든 현상의 모습이 비상[연기적이고 인과적이며 영원하지 않음의 진리]이라는 것을 본다면 곧바로 법신의 당체로서 여래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32상의 위의로 드러난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형상적인 모습에 집착해서 보아서는 참 부처님을 볼 수 없고, 오직 그 모습 속의 인과적 진리성을 보아야만 참으로 부처님을 보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말은 바로 종조님께서 이 사구게로써 당체로서의 법신을 알아야 함을 설하신 것이며, 이 사구게는 바로 법신설법의 근거가 된다. 이것을 통해 현불(顯佛)인 석가불의 설법을 들어서 깨닫는 현교와는 다르게 법신설법인 당체법문을 보아 법신불의 설법을 듣고 깨달아 가는 불법인 밀교의 진리가 성립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종조님께서 깨달으신 법계에 계신 법신불은 형상적이지 않으며, 오직 현상(좋고 나쁜 일) 속에서 드러나는 인과(와 연기)의 진리 속에서 당체로써 설법함을 보아야 진리를 몸으로 하고 있는 법신불을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각종단에서는 형상을 가진 등상불을 모시지 않고 법신불의 설법인 당체법문을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좋고 나쁜 일 그 자체가 법신불의 당체설법임을 알아, 그 속에서 인과를 깨닫게 되고 모든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원하므로 나쁜 길을 버리고 좋은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당체법문을 체득해 가는데 무진의 인과의 법문을 알게 되므로 우주법계의 진리성을 완전히 깨달아 성불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금강경'의 핵심사상인 무주상법은 육조 혜능대사가 '금강경육조해' 서문에서 언급한 바 "대저 금강경은 무상(無相)으로서 으뜸(宗)으로 삼고, 무주(無住)로써 근본(體)으로 삼고, 묘유(妙有)로써 작용(用)을 삼는다"라고 하신 것처럼, 무상 즉 상(相) 없음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하는 반야지혜로써 그 마음에 집착된 머무름이 없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행을 실천하는 묘유의 작용을 나투는 것을 설하는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 '금강경'의 무주와 묘유의 내용을 표현하는 말로써 "마땅히 집착된 바 없이 마음을 써라"(응무소주 이생기심)라는 말이 있다. 

이 같은 상(相)없는 실천을 하는 까닭에 대하여 "범부의 보시는 몸의 모습이 단정하며 엄숙함과 오욕 쾌락을 구하는 까닭으로 과보가 다하면 도로 삼도(三途)에 떨어질 것이므로, 세존이 큰 자비로 무상(無相) 보시를 행하는 것을 가르치심은 몸의 모습이 단정함과 오욕 쾌락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안으로 인색하고 탐내는 간탐심을 없애버리고 밖으로는 일체의 중생을 이익하게 하시니 이와 같이 상응함이 그 이름을 색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이다"('금강경' 육조해 4품)라고 말씀하고 있다.

상 없는 실천은 오직 우리들의 마음을 잘 닦아 불도(佛道)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이며, 상 있는 실천은 좋은 과보는 있으나 그 과보가 다하면 다시 지옥, 아귀, 축생의 삼도에 떨어지게 된다. 상 없는 실천은 무량한 과보를 낳으며 심인을 깨달아 성불하는 양식이 되고, 상 있는 실천은 유한한 과보만을 낳으며 성불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무상(無相)을 최고의 진리로 하는 이유이며, 바로 종조님께서 종단초기에 '금강경'의 사구게와 무주상법으로 법신불의 교법을 세우시고, 무상으로써 육바라밀의 보살도를 실천해야 하는 그 까닭을 설명하여 밝히신 것이라 할 수 있다.(계속)

bupkyung.jpg 법경 정사 / 시복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