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53

편집부   
입력 : 2018-03-13  | 수정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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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실천법

“희사는 자비심을 일으킨다. 불법이 참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희사진리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희사하면 된다. 희사해도 안 되는 것은 심인 즉 법신부처님의 본뜻으로 알아야 한다. 염송으로는 오래 가야 번뇌가 없어지고 희사는 속히 진압시키고 가라앉힌다. 마음의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곧 차별희사를 해야 한다. 희사는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고 보시는 현실로 구하되 그 범위가 좁다.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 여러 번 나누어 부모와 스승을 위하여 참회하고 희사하면 공덕과 복덕이 크다. 순익(純益)에는 십일(十一)이고 원리(元利)에는 백일(百一)이다,”(실행론 제3편 제8장 제4절 나)

“희사는 종자를 뿌리는 것”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여느 때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이 마을에서 근 백여 년 간 일어난 일 중에서 아주 특이하거나 이상한 경우만 고르고 골라서 10대 불가사의한 것 중의 하나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바로 사건이었다. 사건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무어라고 할 말조차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황 영감 집 담장 밑이 깨끗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을만 되면 황 영감 집 담장 아래는 늘 풋감이 즐비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감이 꽂힌 그 자리에 심어지기라도 하듯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요지부동이었다. 황 영감의 아버지 때부터 있어온 일이다. 노랑이 중의 상 노랑이로 이름을 날렸던 황 영감 부자가 살던 집 담장 밑으로 줄지어 늘어서는 풋감은 집을 몇 바퀴나 돌고도 남을 양만큼 차고 넘칠 때가 많았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기 시작할 때면 볼 수 있는 희한하면서도 흔한 풍경이었다. 이 모습은 겨울이 닥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하얗게 내리는 흰 눈으로 덮일 때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썩거나 삭아서 문드러진 채로 감이 길바닥을 더럽혀도 그대로 두었다.

집 울타리 안에 촘촘하게 심겨져 있는 감나무에서 설익어 떨어진 감일지라도 어느 누구 하나 함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무심코 하나를 집어가기라도 할양이면 하루 종일 붙잡혀 혼쭐이 났다. 아이의 부모가 황 영감을 찾아가 손이고 발이고 가리지 않고 싹싹 빌면서 애걸복걸 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느닷없이 발길에 채인 풋감을 먼 곳으로 걷어차기라도 할양이면 넉넉하게 이틀 정도는 머슴살이에 다름없는 일을 해주어야 하거나 적잖은 값어치를 치러야 할 정도였다. 황 영감 집안에 심어놓은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은 그냥 감이 아니었다. 황 영감이 애지중지하는 재물이자 재산이었다. 그래서 허락 없이 가져가거나 몰래 발길질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는 것은 소중한 재물과 재산을 훔치거나 강탈하고 훼손한 파렴치 범죄자처럼 취급받았다.

황 영감 부자가 대를 이어 고약한 심술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재산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집안은 넓디넓었다.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정도로 무엇이든지 풍족했다. 심지어 노동을 할 사람조차 집 밖에서 구하는 일이 없었다. 무엇 하나 이웃에게 얻을 것이 없을 정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남아도는 것이나, 썩어서 버려야 할 것도 아무 곳에나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것조차도 집안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심지어 거름 한 톨도 황 영감 허락 없이 집밖으로 내보내거나 내돌리지 않도록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황 영감의 성정이 그러했으니 집안사람들은 물론 마을 사람 어느 누구 하나 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땅 바닥에 떨어진 감일지라도 황 영감 집의 땅기운을 받고 자란 것이었기에 엄연히 임자가 있다는 주장에 달리 할 말조차 없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지라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이 그만큼 많아도 욕심은 끝이 없었다. 없는 것 없을 정도로 많이 가졌어도 늘 더 가지려고 버둥거렸다. 반면에 집안일을 하고 있는 식솔들에게 주는 것은 언제나 인색하기만 했다.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갖은 트집을 잡았다.

“가진 것이 많은데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소?”
“그렇소. 재물을 모으는데 어디 끝이 있겠소.”
“그렇지요.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요만…….”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방도가 있다면 꼭 알려주시오. 돈을 내 놓으라면 얼마든지 내놓겠소.”
“아주 쉬운 방도가 있지요. 누구나 아는 방도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워서 그렇지요.”
“하, 참. 내 반드시 그렇게 할 터이니 그 방도만 일러주시오. 후사는 넉넉하게 하겠소이다.”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요. 돈을 주고 살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지혜라, 지혜가 무엇이요?”
“지혜는 자비입니다.”
“허허, 참. 그 모를 소리만 자꾸 하시는구려. 그렇다면 자비는 또 무엇이요?”
“자비는 희사의 다른 말입니다. 희사를 하면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심이 일어나면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 참 좀 알아듣게 말해보시오. 희사를 하면 다 된다는 것이요? 그러면 희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오?”
“희사는 가진 것을 누구에게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아낌없이 누군가에게 내어주거나 내놓음으로써 자기 안에 고질적으로 들어 있거나 가지고 있는 탐하는 마음, 성 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는 행입니다. 준다는 행위라기보다는 자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행입니다. 그래서 육행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재물을 덜어내는 것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더 큰 부자가 되는 방도란 말인지, 나-원-참.”
“희사는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종자를 뿌리기 위해서는 종자로 내놓는 것이 있어야지요. 하나의 종자가 자라나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만 맺던가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열매를 얻는 이치를 잘 헤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자비심이 일어나고 희사를 할 줄 알아서 넉넉한 마음으로 더 잘 살 수 있는 것이지요.”

황 영감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한 젊은이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사람은 옷도 깨끗하게 차려 입고 걸음걸이도 당당했으며 말씨도 나긋나긋했다. 흠 하나 잡을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초인(超人) 같은 사람으로 비쳐졌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의 풍채며 은연중에 내뿜고 있는 절제된 분위기가 함부로 범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황 영감은 그를 만난 뒤 깨닫는 바가 있었던지 집 모퉁이 여섯 곳에 설치해 두고 바깥의 동태를 살폈던 초소부터 허물어 없애도록 했다. 그리고는 담장을 따라 울타리와 바깥 경계를 깨끗하게 쓸도록 하고는 대문도 활짝 열어두도록 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정유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