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죽비소리

마장이 공덕의 씨앗이 될 때

편집부   
입력 : 2018-04-30  | 수정 : 2018-04-30
+ -

몇 달 전 노보살님들과 함께 기장 장안사에 다녀왔다. 그날따라 봄이 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 듯 잔뜩 흐른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불었다. 3월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장안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대웅전을 돌아 막 내려오려는데 한 보살님께서 법당근처 계단에서 주었다며 꽤 많은 돈을 내게 건넸다. 얼결에 받아들기는 했지만 순간 난감했다. 심인당과 장안사 대웅전 법당을 오가며 심리적 갈등에 휩싸였다. 어디다 넣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불상 바로 밑 복 밭이라고 쓰여져 있는 글자를 보는 순간 순식간에 싹 사라져 버렸다. 대웅전 복 밭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흔쾌히 넣었다. 대웅전에는 주로 보시함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통상적인데 장안사의 보시함들은 한결같이 복 밭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법당에 앉자 순간 심인당의 희사고와 동시에 부모님이 떠올랐다. 흔히 심인당의 진언행자들은 스승님들로부터 무수히 들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복전(福田)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희사고가 복 밭이라는 생각까지는 못 미쳤을 것이다. 잠시 더듬어 복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정신과 물질의 풍요로움이 복과 행복의 절대적 가치는 아니지만 출발점이 될 수 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됐다. 예컨대 마트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지 않은가. 행복, 건강, 올곧은 믿음, 사랑, 우정, 환대, 감사 등등 정신의 복 밭을 가꾸는 것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는 이따금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지 없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소박한 일상의 정신적 즐거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기장 장안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가 창건할 당시 사찰명은 쌍계사였으나, 애장왕 때 장안사로 개칭되었다 한다. 임진왜란 당시 불탔던 것을 인조 16년 태의대사에 의해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날 장안사 경내를 도는 내내 나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장안사가 위치한 천성산에 집중되었다. 

어느 날 원효대사가 척판암을 창건하여 주석할 때의 일이다. 원효대사는 바다 건너 중국 종남산 운제사의 천 명의 대중스님들이 장마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운제사 대웅전이 무너져 매몰 될 것을 미리 도력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원효대사는 ‘해동원효척판구중’(신라의 원효가 송판을 던져 대중을 구한다)이라고 쓴 큰 송판을 종남산 운제사에 날려 보냈다. 대중스님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송판이 공중에 떠다니기에 신기해하며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자, 천 명의 대중스님들이 송판을 붙잡으러 일제히 뛰어나왔다. 그 순간 뒷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운제사 큰 절을 덮치게 되었다. 원효대사가 던진 송판의 인연으로 목숨을 구한 중국 스님들은 신라 척판암으로 건너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대사는 중국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 내원사를 창건하고 89개의 암자를 세워 천 명의 스님들이 머무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원효대사는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을 설하자, 천 명의 중국스님들이 원효의 설법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에서 연유되어 천명의 성인이 산다는 천성산이 되었다고 한다.

천성산의 유래처럼 천 명의 중국 스님이 원효대사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천 명의 성인이 되었듯, 우리도 날마다 당체법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종조께서는 “시방삼세 나타나는 일체 모든 사실들과 내가 체험하고 있는 좋고 나쁜 모든 일은 법신불의 당체로써 활동하는 설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설령 성인이나 성불은 요원할지라도 일신의 해탈 즉, 가난고, 병고, 불화고의 해탈만이라도 삼밀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일생 동안 즐거운 복 밭으로 부지런히 가꾸어 갈 수도 있다. 한낱 미물도 정해진 것 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다가올 자연재해나 재앙을 미리 알고 준비하며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탐욕에 어두워 닥쳐올 미래의 자연재해나 재앙을 알지 못 할 뿐이다.

지금 온 나라 전체가 미투 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누구나 미투를 가장한 옳고 그름의 시비를 따지고 말하고 싶을 때가 순간순간 너무 많다. 삼국유사에 어느 날 이발사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처럼 생긴 것을 본 후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 할 수 없어 병을 얻었듯, 어찌 삶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겠는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마장이 공덕의 씨앗이 될 때가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기장 장안사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어쩌면 마장이 공덕의 출발점이 될 수 도 있다.”라고.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