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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 그릇은 그 크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편집부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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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도구를 통틀어 그릇이라고 한다. 인테리어를 위해 보기 좋은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생존을 위한 식량을 담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이처럼 그릇의 모양과 종류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이지만 용도는 무엇인가를 담는 것으로 공통되고 있다. 가끔 그릇에 들어갈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해 넘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주변을 정리해야하는 수고가 동반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수고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보면 이런 실수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릇의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들어갈 내용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언뜻 들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경험이 포함하고 있는 반성의 과정이 지난 4월 22일 자성일(自性日) 불사 이후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의 마음은 그 크기나 모양을 수치화하거나 도식화하기 어렵다. 심리학(心理學)에서는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여 복잡한 통계과정을 거쳐 과학적인 결과를 도출해내지만 여전히 인간의 마음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그래서 가끔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 정도를 그릇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이날 회성(悔省) 정사님의 설법(說法)은 마음의 그릇에 따른 삶의 질을 주제로 시작하였다. 언젠가 정사님께서 참석하신 공식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발표 중 언급된 표현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불쾌감을 표현할 때, 왜 핵심적인 내용도 아닌 것이 집착하는지, 설령 그 말이 중요한 실수라 하더라도 우리도 늘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데 왜 그리 비난하는지, 한때 유행했던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로 불편한 상황을 정리한 경험을 말씀하셨다. 맞다. 인간관계는 이같은 마음의 소리로 인해 갈등과 시기, 질투로 연결된다. 부모 자식 간에도 따뜻한 사랑의 말보다 차가운 잔소리에 더 집착하고 반응하여 마음의 문이 닫히는 경우가 많다.

“뭣이 중헌디…” 핵심은 놓치고 껍데기에 집착한 결과이다. 회성 정사님의 경험담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고, 나의 경험과 삶을 돌이켜보니 이내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를 잘하는,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가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출제자의 의도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해하고 알아야할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내공이 쌓이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려도 흔들리지 않고 풀어낼 수 있다. 설령 틀리더라도 원인을 분석하여 다음을 대비하니, 좋은 결과와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성실히 노력하는데 비해 결과가 아쉬운 학생들의 경우 십중팔구 문제의 핵심보다는 주변에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주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수식관계에 흔들리니 이는 출제자의 의도는커녕 비효율적인 학습 습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비록 마음의 그릇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 인과관계도 약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觀點)을 생각해본다면,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중요한 것들만 담아내 마음의 그릇을 채울 수 있다면, 더욱 건강한 관계와 보다 효율적인 학습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종조님께서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 말고, 수원(讐怨)은 일시라도 두지 말라’고 하셨다. 성인이 되어 나름의 가치관과 인격이 형성되어 마음속 그릇의 크기가 이미 정해져버렸다면, 이제부터는 중요한 것은 담아내고, 불필요한 것은 넘치기 전에 비워버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래야 보다 좋은 사람으로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평생을 함께할 가족들부터 일터에서 만나는 성장기의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까지 좋은 향기를 풍기는 가장(家長)이자 교사(敎師)가 되고 싶다. 이날의 설법(說法)이 유독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끝으로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물어본다. ‘과연 나의 마음 그릇은 크기가 얼마나 될까?’

손성훈/진선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