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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이

밀교신문   
입력 : 2018-08-13  | 수정 :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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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센터에서 온 깜이. 유리구슬 같은 눈이 영리하게 생겼는데 누가 버렸을까. 피부병에다 여러 가지 병이 겹쳤지만 이 정도로 치료하면 나아야 하는데 상태가 좋아지다가도 또 재발하곤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데 낫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까. 퇴원해도 딱히 갈 곳이 없으니 병원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일까.
발견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버린 게 분명하다. 외진 곳 마을 앞에서 밤중에 개가 끙끙 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 날 한길가에 이 녀석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오가는 차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차에서 내려놓으니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린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 줘도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가 가끔 물만 조금씩 마셨다. 데려가 돌봐주고 싶어도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아 신고했다고 한다.
유기견 센터 직원도 간호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나만 따른다. 회진 돌 때마다 녀석의 눈길이 나를 붙든다. 치료할 때도 다른 녀석들은 아프다고 난리인데 이 녀석은 웬만해선 찡찡대지도 않는다. 전들 주삿바늘이 왜 아프지 않을까. 제 처지를 알고 그러는가. 그냥 돌아 나올 수 없어 녀석을 쓰다듬는다. 어찌나 떠는지 내 손까지 떨린다. 녀석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을 쏟을 것 같다. 녀석의 슬픔에 끌려가려는 나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깜이의 보호자가 아니라 의사다. 공정하게 대해야지 편애해서 서로에게 이로울 게 없다.’
이런 녀석은 치료가 끝나고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일정 기간 보호하다가 안락사 시킨다. 내가 엄마가 되어주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집은 그저 하숙집 구실밖에 하지 못하니 녀석을 건사할 여력이 없다. 데려가고 싶은 마음과 현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현실의 손을 들고 만다.
“깜이야. 전 주인이 너를 떼어 놓았으면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거야. 힘들겠지만 원망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여.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누군가에게 매달릴 생각도 하지 말고 네 힘으로 적응해. 나만 해도 그래. 네가 사랑스럽고 안타깝지만 사정이 있으니 너를 받아 줄수가 없구나. 너를 아끼던 주인을 생각해서라도 정신 차려. 아마 주인도 너를 내치고 기슴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지금부터라도 홀로서기를 해봐. 우선 아픈 것부터 나아서 병원을 떠나야지. 밖에 나가도 기다리는 현실이 막막하다고? 그렇다고 병원에 계속 있어 본들 뽀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새 주인을 만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네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설령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렴. 너 같은 친구들에 대한 묘책을 우리가 머리 싸매고 궁리해야 하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엔 좋은 주인 만나 오래오래 재롱떨며 살아라.”
목이 잠기는 걸 꾹 참고 녀석을 안는다. 사람도 쉽지 않은 일을 녀석에게 강요하고 있는 내꼴이 우습다. 늦었지만 극약 처방이 필요할 것 같아 이성적으로 몰아붙인다. 다음날부턴 의식적으로 덤덤하게 대한다.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오그린다. 차마 못 할 짓이다. 다른 선생님께 맡기는 게 낫겠다. 유기견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닌데 이 녀석은 특히 여리고 예민하다. 아마도전 주인이 응석받이로 키웠으리라.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키운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님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요. 주인님과 저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로 지냈는데 이런 날벼락을 맞았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덮어두기엔 제 사정이 절박합니다. 친구도 없어요. 주인님 근처에서만 맴돌았거든요. 제발 살려주세요.’
꿈속까지 깜이가 따라붙는다며 이야기를 끝낸 딸아이가 눈시울을 붉힌다.
‘사랑에 흠뻑 길들여 놓고 영하 10도의 강추위 어둠 속에 사정없이 던져버리고 간 얼굴을 감춘 저것은 분명 사람이다.’ 김애자의 시 ‘유기견’ 중에서.
사람이 저지른 일인데 무슨 말을 하랴.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