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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입정(斥邪立正)-섬김의 리더십

밀교신문   
입력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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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왕이 말했습니다.

 

사나운 소가 사람을 들이받으려 할 때 몽둥이를 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매로 다스려야 하는 법.”

 

이에 제석천왕은 이렇게 되받습니다.

 

나는 이치를 관찰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다스리네. 화가 나도 일단 참고 마부가 마구 질주하는 말을 달래서 멈추듯 해야 하네.”

 

이 일을 두고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수라왕의 말은 싸움을 계속 불러일으킬 것이고, 제석천왕의 말은 영원히 싸움을 멈추게 할 것이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사회에 큰 경책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끼리끼리 편을 갈라 자기주장만 너무 강하게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여야(輿野), 아니 때로는 여끼리 야끼리 서로 편을 만들어 핏대를 세우며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이 대립하여 강력하게 자기의 뜻을 펼치며, 심지어는 남녀와 노소가 거리로 나와 서로 제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중심거리는 주말마다 자기주장을 외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할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민주사회의 덕목으로서 그보다 더한 가치는 없습니다. 편을 갈라 자기표현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응당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문제는 서로 주장만 할 뿐 상대편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원히 다툼을 멈추게 하는 제석천왕의 세상이 아닌 갈등만 불러일으키는 아수라왕의 판 즉 아수라장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는 귀는 둘이고 말하는 입은 하나일진대 왜 듣기보다 말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원시시대처럼 오로지 힘으로 상대를 지배할 수 없으니, 말로서라도 우위를 점하고 싶은 지배욕구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의 말은 무시하고 자기 말만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지라도 말만 하는 사람의 말을 진실로 귀담아 듣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있어야 대화가 되고 서로 이해함으로써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쁘고 반갑습니다.

 

현재 자기편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조직의 리더들입니다. 리더란 조직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조직의 의견을 조율하려면 각 구성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의견이 조율되면 결단력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러 실수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때는 바로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수평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 조직의 리더들은 그러한 덕목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근대적인 수직적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가다 보니 상대편은 물론이고 자기 조직 내에서도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정치 선진국에서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리더십과 서번트? 어찌 보면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의 조합처럼 보입니다. ‘서번트란 노예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조합은 매우 지대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섬김의 리더십즉 조직원을 귀하게 섬기면서 조직을 운영해나간다는 뜻이 되니까요. 이미 이 리더십은 마하트마 간디, 슈바이처, 테레사 수녀 등이 실천함으로써 그 가치를 나타낸 바 있습니다. 이 리더십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사랑과 배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번트 리더십의 소유자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를 지배의 대상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봅니다. 섬긴다고 하여 리더가 꼭 하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와 테레사 수녀, 슈바이처 박사가 남을 섬김으로써 하인이 되기는커녕 인류사에서 영원히 위대한 인물로 남지 않았습니까.

 

섬김은 리더에게만 해당되는 덕목이 아닙니다. 리더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수직적 리더를 서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평적 리더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현 사회의 숱한 갈등은 어쩌면 리더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의 허물 찾지 말고 부디 서로 사랑하십시오. 남을 배려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그것이 정심(正心)’을 세우는 길입니다. 남을 배척하고 비난하거나 남의 말에 귀기울이 않는 것은 사심*邪心)’을 키우는 길입니다. 모두가 척사(斥邪) 입정(立正)해야만 우리 사는 세상이 아수라장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세계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는 물리치고 바른 것을 세우자.

사심(邪心)은 물리치고 정심(正心)을 세우자.

사도(邪道)는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세우자.

 

덕일 정사/보원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