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9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9-14  | 수정 : 200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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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지혜의 밀교적 표현) 1. 보살과 명왕의 역할 자비와 지혜를 본지로 활동하는 보살과 명왕은 밀교가 전파된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한반도를 비롯하여 티베트나 일본지역에 전파된 이들 존격들은 각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어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해안지방에 위치한 사찰들에는 그에 상응한 신앙형태가 전개되었다. 한반도의 서해안으로부터 남해안을 거처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해안과 가까운 사찰들에서는 해수와 관련된 용왕신앙이나 해수관음신앙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신앙형태는 불에서부터 보살과 명왕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 있다. 그 중에서 불과 관련이 있는 해수신앙은 심복사의 어로수호 비로자나불신앙,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불신앙 등이 있고, 해수보살신앙은 강화 석모도 보문사의 관음신앙을 비롯하여 목포 유달산 중턱에 있는 보살신앙 등 각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해수 명왕신앙의 흔적을 목포 유달산의 부동명왕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목포 유달산에는 한국적 해수신앙의 특색을 보여주는 보살상과 외래적 해수신앙의 특색을 지닌 명왕상이 각각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밀교에서 보살과 명왕은 각각 그 역할을 달리한다. 보살은 자비를 근간으로 하여 중생들을 섭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명왕은 지혜로써 불의 교령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보살과 명왕의 역할을 전용하여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만다라상에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보살로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을 찾아서 활동한다. 그리고 그 관세음보살의 구체적인 자비의 활동은 지장보살을 통해서 나타난다. 지장보살은 여섯 가지 형태로 화현하여 육도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장보살을 지장전에 중존으로 봉안한 새로운 형태의 지장신앙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금강역사를 명왕으로 간주하여 수호존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원래 금강역사는 금강수의 이칭으로 간주되고 있다. 만다라에서 금강수는 보살의 몸으로써 지혜력을 가지고 있는 보살로서 간주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활동력은 제개장보살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것은 금강수가 지닌 지혜의 힘으로써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개장보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금강수의 존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그 보살과 동격으로 간주되고 있는 금강역사가 수호존으로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사천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천왕은 사방을 관장하는 명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을 보호하는 수호존의 역할로 전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는 힘을 통한 사마(邪魔)에 대한 강력한 단제보다는 자비와 지혜를 통한 중생의 섭수를 중시하고 있다. 2. 해수신앙의 밀교적 전개 목포의 유달산 산복에 위치하고 있는 보살과 명왕상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전개된 해수신앙의 양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해수신앙는 대부분 해수관음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해수관음신앙의 원류는 인도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 한반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수관음신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남동해안의 포타라산에는 관세음보살이 머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이 해안과 근접한 지역에 머무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바다와 연관성을 가진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티베트지역에서는 관음신앙이 전파되었지만 그 양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티베트에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티베트의 왕이라는 믿음과 관세음보살의 명호보다는 육자진언을 독송하는 진언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서 티베트의 관음신앙은 육자진언독송신앙으로 전개되고, 그것은 밀교의 오불삼십칠존과 습합(習合)하여 독특한 양상의 신행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인도의 관음성지 포타라산의 해수관음신앙을 계승한 해안지역의 사찰들이 여러 군데 현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해수관음신앙의 원류를 인도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신앙적 특징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전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는 관계로 바다와 관련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인도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해수관음신앙과 더불어 티베트적 특색인 육자진언독송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한편 관음신앙이나 육자진언신앙이 우리나라보다 미약한 일본지역에서는 명왕신앙이 바다와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부동명왕은 바다와 직결된 존격으로 해수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부동명왕신앙은 원래 교령륜신이지만 일본열도의 경우, 해양활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수호존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부동명왕이 지니고 있는 검은 파도를 단제하고, 견색은 성난파도를 결박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미치지 못하도록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 많은 것을 취하기 때문에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어로를 비롯한 각종 해상활동에서 장애가 되는 것들은 부동명왕이 제거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밀교에서 보살과 명왕은 확실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지만 해수신앙에서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목포 유달산의 보살상과 명왕상에 나타나있듯이 한반도의 경우는 자비의 구원력을 갖춘 보살신앙이 중심을 이루며, 일본열도의 경우는 지혜의 단제력을 명왕신앙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