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1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11-29  | 수정 : 200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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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과 호부 護符) 1. 밀교 호부의 형성 우리나라의 불교는 고려시대 중기부터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티베트적인 요소를 띤 불교문화들이 몽골(원)이나 청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그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상징문자가 전용된 호부(護符)의 전래이다. 원래 상징문양은 불교의 교리를 하나의 문자에 함축시키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노력은 티베트 불교문화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들이 티베트를 여행하다 보면 흔히 보주문양과 십상자재(十相自在)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티베트를 중심으로 그 문화적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티베트 본토는 물론 티베트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네팔에서는 쿠타크샤라(kutaksara)로 불리는 상징문자가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부적에 쓰이는 상징문양과 닮은 문자이다. 그 뿐만 아니라 부탄, 시킴 등지에서도 이 문양은 흔히 발견되며, 청나라 때 건축된 중국내의 사찰들이나 내외몽골지역의 사찰들에서도 이 문양이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밀교적 교리가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남추방덴(rnam bcu dbang ldan)은 티베트어로 열 종류의 힘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십상자재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문자는 원래 인도에서 성립된 시륜탄트라의 우주관에 상징적 원리를 도입하여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상징문자는 티베트 사원의 벽면이나 경전의 표지장식, 부적, 티베트 점성술도(圖)등에 널리 활용되면서 그 용도가 전용되었던 것이다. 이 상징문자에는 달과 태양과 허공과 물과 불과 바람과 땅과 색계와 무색계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물과 불은 지혜와 복덕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남추방덴의 양 측면에는 지혜와 복덕을 상징하는 밤(vam)자와 람(ram)자가 쓰여 있다. 그리고 지수화풍공의 오대를 의미하는 아바라하카의 다섯 개 문자는 다섯 가지 색상으로 나타냈다. 이와 같은 호부문화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고려중기 이후부터 조선시대에 조성된 불보살상의 복장에서 발견되고 있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육자진언신앙이 활발했던 조선시대의 중·후기에 이르게 되면 이 열 자로 이루어져 있던 상징문자는 여섯 자로 줄어들면서 육자진언 상징호부(象徵護符)로 전개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대구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 복장에서는 1703년에 제작된 많은 종류의 호부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13세기 말 이후에 유행하던 티베트 전래 호부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2. 진언과 호부의 실재 우리들은 호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호부가 샤머니즘적인 믿음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호부는 원래 샤머니즘적인 상징문양이 아니라 불보살의 가르침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종자진언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진언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진언(眞言)과 호부(護符)를 밀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것은 신구의 삼밀 중에서 구(口)와 의(意)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호부는 진언종자의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에 불보살상의 복장에 호부를 봉안했을 경우 신(身)에 해당하는 존상과 구(口)에 해당하는 진언과 의(意)에 해당하는 삼매야형이 두루 구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나 티베트에서는 불보살상의 복장에 구밀과 의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된 다양한 종류의 진언과 호부들을 봉안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봉안된 불보살상에서는 십중팔구 진언과 호부들로 이루어진 형태의 복장유물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오대산 상원사 문수보살 복장유물에서는 진언류의 유물과 호부의 성격을 띤 종자만다라가 발견되었고, 속리산 복천암에서는 보주형상의 문양과 진언류, 경북 기림사에서는 종자만다라와 진언류, 서울 봉은사의 사천왕상에서는 진언류, 팔공산 파계사에서는 호부와 진언으로 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복장유물 중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진언이며, 경우에 따라서 상징문양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들은 내용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발원의 종류에 따라서 진언의 배열순서와 상징문양의 종류에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팔공산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의 복장에서는 호부와 상징문양과 진언종자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조선 숙종 29(1703)년에 판각된 것이며, 내용적으로 1746년(건륭11)에 제작된 봉은사의 것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진언의 배열순서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즉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봉안된 복장진언종자의 전례를 답습하고 있으나 세부적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발원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여기서는 오륜종자와 진심종자와 사방종자를 통해서 지수화풍공으로 이루어진 우주법계와 오불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비밀실지와 입실지와 출실지진언을 통해서 법계를 체득하려는 자에게 법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면서 그 체에 들어 가야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이어서 그 법을 체득하고 나서 법의 홍포를 위해서 활동해야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준제진언과 육자진언을 통해서 정법계의 공덕을 이루어야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복장진언과 호부와 상징문양은 단순히 구복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교리를 상징적으로 응용한 밀교문화의 한 형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