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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된 연등

허미정 기자   
입력 : 2005-03-24  | 수정 : 200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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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이 한 달 여를 훌쩍 넘긴 어느 날 한 사찰에 들른 적이 있었다. 빛이 바래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렸거나 먼지가 소복이 쌓인 갖가지 연등이 철거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하는 연등이 인부들의 손놀림에 의해 '툭툭'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땅에 나뒹구는 등은 이제 다른 인부에 의해 포대자루에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러다 몇몇 인부들이 철거 작업이 지겨웠는지 등을 축구공 삼아 발길질을 시작했다. 축구선수처럼 강한 슛팅 자세로 연등을 차고 막는 등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가히 꼴불견이었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아무리 높았다지만 축구공의 둥근 모양이 어찌 연등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인부는 큰 빗자루로 연등을 쳐서 포대자루 근처로 날렸다. 그 모습은 마치 골프 선수를 연상케 했다. 가족건강이나 합격기원 등 각자의 소원을 가득 담아 이웃과 사회에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넘실대기를 염원하며 내걸었던 연등이 어느새 축구공과 골프공으로 전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등에서 이름표가 떼어지고, 그동안 매달렸던 전선줄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연등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으로 불을 밝히는 것이다. 이렇듯 불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연등이기에 철거과정에서도 보다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hapum@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