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7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4-14  | 수정 : 200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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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주변국과 한반도 밀교의 관계) 1. 신라와 당나라 밀교 한반도의 밀교는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로부터 티베트와 몽골, 그리고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흥망성쇄를 거듭한 주변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풍요로움을 더했다. 한반도는 마치 밀교문화의 바다와도 같이 각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문화와 종교적 특장점이 한 곳에 모이고, 그것이 어우러져서 한반도적 밀교문화를 창출하는 곳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자생적 밀교가 움텄다. 그것은 구복적이며, 제재초복을 위한 기도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경전의 독송공덕, 다라니의 지송공덕, 존상 조성에 의한 공덕성취 등은 당시 밀교문화의 주류를 이루었다. 내용적으로는 지극히 소박한 개인의 소원성취나 국가적 안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 형태의 밀교는 신라시대의 밀본, 혜통 등에 의한 치병과 제재초복법, 명랑의 문두루법으로 대변된다. 이어서 한반도 밀교의 한 획을 긋는 것은 당나라에 유학한 승려들이 대일경이나 금강정경과 같은 인도의 법맥상승 밀교경전을 습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때에는 신라에서 현초, 불가사의, 의림 등이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떠났고, 선무외삼장으로부터 대일경을 중심으로 한 밀교의 교리와 의식과 행법을 전수 받았다. 그들 중에서 불가사의는 대일경의 비로자나공양차제법에 대한 소를 남겼으며, 귀국하여 영묘사에서 활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는 금강지삼장의 제자가 되어 금강정경의 교리와 행법을 전수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인도로 구법순례를 떠나서 현지의 불교계 사정을 몸소 체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입당 구법승들은 인도에서 당나라에 들어와 전법활동을 하던 스승들로부터 대일경과 금강정경계통의 경전과 그 행법들을 전수 받았다. 그것은 인도에서 7세기 중반부터 8세기 초에 융성하던 교리와 수행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경전들로 사자상승의 전통을 통해서 계승된 것이다. 이것은 훗날 신라 현초아사리의 제자인 당나라의 혜과화상이 전수 받고, 이어서 신라의 혜일과 오진이 전승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적과 그들이 남긴 궤적은 오늘날 우리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상태이다. 2. 고려와 티베트, 몽골밀교 한반도의 불교에서 티베트와 몽골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은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이루어진 피동적인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불교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당나라의 한족불교와는 다른 형태의 불교문화가 한반도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티베트계통의 밀교문화는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법구류와 시륜경의 상징문양, 그리고 티베트문 사경류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진언문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육자진언신앙은 티베트 및 몽골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육자진언을 독송하는 것으로써 뿐만이 아니라 그 여섯 자의 진언 속에 함장된 의미를 염송하는 방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관음신앙이 전파되어 각지에 관음도량이 개설되고, 민간들의 호응을 받으며,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권에 전해진 관음신앙은 대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전파되어 관음의 명호를 독송하는 방식이며, 또 하나는 티베트로부터 몽골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파된 관세음보살 본심미묘진언인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을 독송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들의 관심사는 훗날 이 육자진언이 관세음보살의 진언으로써가 아니라 존격화된 육자대명왕진언으로써 불교의 다양한 교리와 수행법을 함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자진언에 팔만사천법문이 함장되어 있다는 믿음은 티베트에서 찬술된 마니칸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찬술집에 의하면 육자진언은 대승의 모든 법문과 밀교의 제불보살의 공덕을 함장하고 있다고 설한다. 특히 대일경의 공성체득과 금강정경의 오불묘행성취 등이 육자진언수행에 수용되어 밀교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강계만다라와 육자진언간의 관련성을 보여 주는 유물이 여러 종류 현존하고 있다. 또한 대일경의 오륜종자와 육자진언간의 관련성을 담은 유적도 발견되었다. 한편 이와 같은 마니칸붐의 가르침은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육자구수선정이라는 육자진언 의궤집으로 편찬되면서 육자진언과 오불간의 관련성이 확립되고, 수행법이 정형화되었다. 이것은 훗날 조선시대를 거처 최근에까지 그 맥을 이어 가고 있다. 3. 조선과 청나라 밀교 현존하고 있는 밀교 관련 자료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고 있는 것이 조선시대의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전란 속에서 고려시대까지의 밀교적 건축물이나 유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무형의 행법들마저 전승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조선의 불교문화유산 중에는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밀교적 진언관련 문화재와 유물들이 상당량 현존하고 있다. 특히 청나라와 공유하는 진언문화들이 온전한 상태로 다수 전해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조선시대의 사찰들은 단청에서 티베트적 요소를 수용하고, 진언장엄에서 청나라적 특징을 흡수한 특특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청나라의 밀교가 수용된 것에 대해서는 당시 많은 분야에서 직, 간접적으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팡첸라마와 티베트불교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사정을 읽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반도의 밀교는 풍부하고, 다양한 과거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점 우리들이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