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9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6-13  | 수정 : 200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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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수호존과 상징문양) 1. 전각장엄의 상징성 전등사는 고려시대에 융성했던 사찰로 현재의 전각들은 17세기 초반에 건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찰은 규모에 비하여 다양한 상징적 장엄물들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먼저 이 사찰은 정족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어 산성의 문을 통해서 사찰의 안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이 사찰에는 천왕문이나 일주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성이 일종의 결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천왕문이 없는 대신 본당인 대웅보전의 외부장엄에는 수호존의 역할을 하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전각 내부의 수미단을 비롯하여 천정에는 다양한 동물과 어류, 분노형의 상징물들이 장엄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사찰 중에서 이와 같이 다양한 상징 장엄물들이 존재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밀교에서 단과 전각의 수호는 매우 중시되었다. 먼저 불보살을 비롯한 모든 존격들이 각각 그 존격에 합당한 방각에 위치하고 있다. 오불의 경우 각각의 존격들은 오방에 위치하도록 되어 있으며, 그 존격들에 부속된 각각의 보살들도 정해진 방각에 위치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들 불보살을 수호하는 존격들은 그 외곽에서 수호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각의 수호존이 사천왕이다. 여기서 만다라의 예를 들면 사방에 네 개의 문이 있고, 그 문은 사천왕이 수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있는 네 개의 문과 그들 네 개의 문사이의 공간은 천중들이 수호하도록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일천, 월천과 같이 일월성진을 존격화 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마갈어, 쌍어와 같은 물고기나 양, 소와 같은 동물을 존격화한 것들도 있다. 이들은 만다라의 외곽에서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존격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등사 대웅보전의 산성과 대웅보전의 외부를 장엄하고 있는 상징물들은 결국 결계의 의미와 수호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상징물의 표현의미 ◇사자상= 사자상은 원래 백수의 왕인 사자를 석존에 비유하여 석사자라고 하듯이 불교에서 석존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 의미를 가진 사자의 모습은 밀교에 수용되어 만다라의 사문을 수호하는 상징문양으로 전용되었다. 현존하고 있는 티베트의 만다라에는 사방사문의 문루정면에 사슴과 법륜, 그리고 그 아래에 사자의 모습을 그려 넣고, 사자의 수염을 진주장엄으로 상징화하여 문의 아래로 늘어 뜨려 놓은 형태의 장엄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석존이 녹야원에서 초전법륜할 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사자의 형상은 석존의 위엄과 법계의 수호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자의 모습은 전등사 대웅보전의 전각 네 방향에 각각 한 쌍씩 조각되어 있다. 이것은 사방을 수호하는 암숫사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현존하고 있는 전등사의 사자상 조각은 청색으로 채색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원형은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원숭이상= 원숭이상은 전등사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에 장엄되어 있다. 이 사찰의 설화에 의하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원숭이 상에 대해서 석존이 원숭이 왕자로 있을 때 숲에 불이 났고, 이 때 많은 원숭이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숲과 호수를 오가며 몸에 물을 적셔서 화재를 진화함으로써 원숭이들을 구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원숭이는 석존의 본생담과 관련이 있으며, 밀교경전의 성립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상징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밀교경전 중에서 대일경의 성립설화에 의하면 원숭이는 경전의 결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로 전해지고 있다. 즉 대일경이 성립될 당시 수행자 한 사람이 숲을 지나고 있을 때, 그 숲에서 수많은 원숭이들이 장난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들의 손에는 경전의 조각들이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수행자는 원숭이들이 가지고 놀던 경전의 조각들을 모아서 엮어 보았더니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대일경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실재로 대일경소에 전해지는 경전성립설화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일경의 성립이 원숭이 토템을 가지고 있던 종족과 관련이 있다는 설과 원숭이가 많이 사는 지역에서 대일경이 성립되었다는 설들이 혼재하고 있다. 나아가서 티베트의 신화에서는 원숭이가 티베트인들의 시조로 간주되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눈에서 나온 광선에 의해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원숭이는 석존과 관련이 있는 동물임에 틀림이 없으며, 대일경의 성립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또한 티베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직, 간접적으로 받아 온 우리나라의 전각장엄에 자연스런 수용되었는지도 모른다. ◇물고기상= 밀교의 만다라에서 물고기는 쌍어나 마갈어로 나타나 있으며, 이들은 만다라의 외곽에서 수호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각의 장엄에 이들 문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서도 마갈어 문양의 전각장엄은 우리나라의 해안지방 중에서 서해남부와 북부에 걸쳐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원래 마갈어는 인도신화에서 바다의 신인 바루나가 타고 다니는 물고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밀교의 만다라에 수용되어 세상의 온갖 탐착을 먹어 삼키는 상징적 존격으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만다라의 존격 중에서 애금강보살은 마갈어의 모습이 있는 당번을 들어서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여튼 물고기가 전각의 장엄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서해안 사찰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상징장엄이다. 그 외에도 전등사의 전각들에는 오리와 용, 기린, 분노존 등의 다양한 상징물들이 장엄되어 있어 마치 상징 장엄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하여튼 이와 같은 상징 장엄물들은 밀교에 수용되어 수호존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서원의 표치(標幟)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