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을 찍는 사진포교사

편집부   
입력 : 2007-09-01  | 수정 : 200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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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대명심인당 수정 각자

우리들 마음에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차곡차곡 새겨진 기억들이 가득하다. 웃음 짓던 순간, 아픔을 토해내던 숱한 기억들. 그 시절 함께했던 만남, 장소, 물건 하나라도 스칠 때면 어느새 추억에 젖어드는 자신과 만나게 되는데, 추억을 부여잡은 물건 중 가장 선명하고 아련함을 주는 것은 아마 사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사진을 찍어주는 직업을 지닌 사진사는 추억의 전달자이던가? 사진의 세계에 매료돼 추억의 전달자가 된 대명심인당 수정(이상태) 각자는 진언행자의 인연을 맺으면서 불교계 각종 행사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일명 사진포교사로 활동 중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8월 대명심인당(주교 보훈 정사, 지혜훈 전수·대구시 남구 대명3동)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간판 없는 사진관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찾은 대명심인당. 보훈 정사가 먼저 반겨주며 사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일러주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인기척이 없다. 혹 약속이 어긋나지 않았을까 염려하던 중 심인당에서 염송하고 있다는 말이 뒤에서 들려온다. 어떤 분일까? 잠시 뒤에 머리를 묶은 모습이 인상적인 한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예술가의 내면은 겉모습으로도 자연스레 드러나는 법.

"이쪽입니다"라고 하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들어간 곳에는 여느 사진관에서 볼 수 있는 사진장비며, 벽면에 걸린 커다란 사진액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밀화원이 아닌 비밀사진관이었다. 간판은 없지만 그 사진관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색을 그대로 담아내려는 수정 각자의 뜻을 담은 '삼천리스튜디오'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간판도 없는 '삼천리스튜디오' 주인공

   금강회장 맡아 신행 생활에도 앞장서


포항제철에서 근무하며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직장을 그만 두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사진포교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인연을 주제로 한 한편의 영화였다.

어느 날 박태준 회장의 전속 사진사가 서울에서 내려와 포항제철에 사진동호회가 결성되면서 처음 사진의 매력을 알게된 그는 취미생활로 사진을 찍다가 회사까지 그만 두게 된다. 좋아하는 사진을 찍기도 해야 했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었던 그는 생계를 위해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진관을 1982년 9월 시작하게 된다.

사진관을 하면서 대명심인당과 인연을 맺은 수정 각자는 20여 년 진언행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된 것이다. 사진관을 하면서 틈틈이 작품사진을 찍으러 다녔지만, 작품의 눈과 영업의 눈은 달랐기에 작품사진 활동을 한동안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첫째를 대학에 보내고 둘째가 수능시험을 치른 후 가족들에게 "이제 자식들도 성장할 만큼 성장했으니 지금부터 작품세계에 눈 뜨기 위해 머리 기르고 할 생각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본격적으로 잠시 접어둔 작품사진 활동을 시작했다.

  불교계 행사장 누비며 '찰칵찰칵'

마음 비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찍어야



그가 찍는 사진은 단순히 풍경을 담아내는 사진보다 불교계 각종 행사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그 경이로운 역사를 흔적으로 남기듯 사진포교사의 모습으로 꽃을 피워갔다.

지난해 10월부터 대명심인당 금강회장을 맡아 신행생활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불법을 알면서 봉사하는 삶을 자신의 삶 하나하나 접목해 가고 있다는 진언행자이자 사진포교사다.

"찬란한 불교문화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그는 불교와 관련한 문화 전반을 찍어 오던 중 부처님오신날을 주제로 사진전시를 계획하고,5년 전부터 작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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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날 수정각자가 사진에 담은 대구 연등축제 한장면


그간 해오고 있는 봉사활동에 대해 들어내진 않았던 그가 "기로원에 계시는 스승님들께서 갑자기 열반에 드셨을 때 영정사진이 마땅하지 않았던 일이 안타까워 기로원과 수도원을 방문해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자 몇 년간 뜻을 전했지만 스승님들께서 빚지고 가신다며 극구 사양을 하셔서 아직 그 일은 하질 못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사양하신 스승님과 그걸 안타까워하는 수정 각자의 마음이 참 훈훈하게 전해졌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그는 사진의 어떤 모습이 그토록 마음에 다가온 것일까? "사진 속에는 풍경이 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가 담기게 됩니다"고 한다.

경치 사진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처음 작품사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했었는데 신행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마음을 비우며 그저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마음을 비워내기 위해 그가 한 것은 사진찍기 전엔 꼭 염송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 것. 어느 순간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있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현상된 사진에, 가슴에 와 닿았던 그 느낌이 그대로 담겨진 것을 보고 '아! 이거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같은 풍경사진, 일출사진을 찍더라도 사진에 담겨지는 느낌이 달랐다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 한점 한점에 담겨진 넉넉함은 그가 비워낸 마음의 깊이를 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밀사진관에는 수정 각자와 함께한 골동품이 될 법한 수동카메라가 여러 대 눈에 들어왔다.

"디카가 대중화되면서 사진을 현상해 주고 받았던 미담이 사라져 가고 있어요. 그만큼 정이 메말라 간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네요."

처음 사진에 매료됐던 그 시절 사진으로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정을 나눈 기억을 그리워하는 그의 모습에 경험하지 못했던 추억이 더욱 짙게 공유되는 듯 했다.

"사진 찍을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을 찍을 때 그 애가 카메라를 의식하면 그 천진함은 금새 사라져 버리듯 찍고자 하는 주제가 있으면 욕심 없이 마음 비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찍으려 노력합니다"라고 하는 그는 작품사진 활동과 병행해 졸업앨범 작업을 맡고 있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게된 인연은 사진에 대한 순수한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사진대회에서 수상경험도 많은 그였지만, 조작되어지는 대회 실태를 알고 사진을 통해 바라본 아름다운 세상과 사진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펼 수 있는 순수한 길을 택한 것이다.

"본심(本心)을 되찾은 느낌이었다"는 그의 말이 참 아름답게 들렸다.

삶이 힘겨울 때 카메라를 둘러매고 여행을 떠나는 그에게 카메라는 언제나 든든한 친구다. 카메라 덕분에 소소한 것들의 움직임과 형상의 경이로움을 늘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본다는 그.

몇 십 년간 사진을 찍어온 그는 이제작품이 되겠다는 느낌이 온단다. 하지만 언제나 욕심을 가지면 작품사진을 찍긴 힘들다는 불변의 공식을 아는 그는 "조작은 절대 작품사진을 만들지 못합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럼 그에게 작품사진은 어떤 종류, 어떤 모습의 사진이 될까? "가족, 친구들의 모습을 담는 것은 순수사진이고, 작품사진은 남들이 인정해주는 사진으로, 내가 좋다고 무조건 작품사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순수하게 찍어가는 사진과 작품사진과는 다르기에 사진은 모두가 찍을 수 있고 누구나 작가도 될 수 있다는 그는 "사진 자체를 할 수 있다는 마음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일을 누구나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진이 좋아, 사진을 통해 선택한 수정 각자의 제2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서 하고 싶다는 열정에서 욕심을 꺼낸 결실이 있었기에 궁극에는 사진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꽃피워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5년 간 불교문화를 카메라에 담아온 그의 근사한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언제쯤 만나게 될지는 아직 기약이 없지만, 그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그의 순수한 열정이 누른 카메라 셔터의 결실은 이미 마음으로 짐작해 담겨져 온 듯 하다.

다가오는 2008년 부처님오신날 대구의 봉축행렬 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수정 각자의 모습은 여느 사진작가보다도 멋지게 비춰질 것이다.

대구= 백근영 기자 mu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