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사이버가수 ‘산모(産母)’

편집부   
입력 : 2007-09-17  | 수정 :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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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원심인당 선재군

세계 최초 100% 사이버가수 ‘사이아트(SciArt)’. 사이버 외모에 사이버 보컬을 접목시킨 새로운 스타일의 사이버가수를 탄생시킨 29살 마니주엔터테인먼트 대표 유태훈씨.

그는 대원심인당(주교 덕일 정사, 이행정 전수․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에서 자성학교부터 신행생활을 해온 신심돈독한 인재로 ‘선재’란 불명을 받은 진언행자다.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그를 만났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곳에는 각종 캐릭터사업, 녹음실 등 낯선 느낌의 공간들로 가득했다.

사람은 흔히 자신이 즐겨하는 일에 걸맞는 외모를 가지게 되는데 로비에서 만난 그는 만화 속 캐릭터가 주는 신비한 느낌에, 열정이 가득한 힘찬 모습이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녹음실과 흡사한 기계장비들이 즐비한 공간을 상상했었던 것과는 달리 사무실에는 컴퓨터와 회의용 탁자, 의자 외에 특별히 놓여진 것들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혼자 일을 한다는 그의 말이 의외로 들렸다.

신심으로 무장 세계무대 노크
고교시절 때 발명대회 수상경력 ‘인재’
혼자서 하는 발명 찾던중 작곡과 인연

29살의 나이에 세계를 향해 문화콘텐츠사업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는 그는 어렸을 적부터 발명에 관심과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규모의 발명대회에서 장려상을 2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혼자서 발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작곡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명가의 삶에서 방향을 살짝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발명과 작곡의 연결성을 찾은 그의 이야기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생각 하나의 신선한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의 결실을 하루아침에 이뤄낸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에게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발명대회 특채로 타 대학에 입학할 법도 했지만 종립대학인 위덕대 전자공학과 98학번으로 입학하게 된다.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입시에 관해 그가 한 말이다. 인연. 발명가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작곡을 꾸준히 해나갔다.

군복무 관계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한 사이 작곡했던 곡 가운데 ‘행복하기만을’이란 곡을 클럽소올이 불러 제1회 진주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복학을 잠시 미뤄두고 3년간 모바일 콘텐츠 팀장으로 근무하던 중 멜로디와 가사를 입력하면 사람처럼 노래하는 보컬로이드(vocaloid)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사이버 외모에 노래까지 컴퓨터가 하는 100% 사이버 가수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자신의 인생행로를 탐색해가는 시간이 될 그 시간 그는 열정을 일찍 불태워갔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은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을 자극하며 호기심을 발동시켰던 것.

“사이버 음성이 정교하지 못해 코러스로 빈공간을 채웠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생긴 노하우로 다음 앨범은 더 근사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열중해서 마무리 짓고 난 뒤에 복학을 생각하고 있는 그는 사이아트를 세계적으로 알릴 계획으로 하루를 빈틈없이 보내고 있다. 그리고 복학을 하게 되면 사업을 꾸려가면서 경영학과 언어의 필요성을 많이 느껴 그쪽 공부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이기에 지금까지 일궈낸 일들을 바탕으로 힘차게 가지를 뻗어갈 것 같은 확고한 믿음이 들었다.

휴학하고 회사에 다닐 무렵 서울 삼매야계단에서 수계를 받고 ‘선재’란 불명을 받은 그.

문득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을 구하는 선재동자가 떠올랐다. 그의 열정이 선재동자의 불타는 구법행과 흡사하다는 느낌이었다.

세간에는 마니주엔터테인먼트 대표 유태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름이 알려져 가는 가운데도 순수한 눈빛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청년일 수 있는 이유는 ‘선재’란 불명을 지닌 진언행자의 삶이 버팀이 되어 준 것은 아닐까? 그의 책상에 놓인 컴퓨터 외에 자리한 육자진언 본존 액자가 물음의 답을 확고히 전해주고 있었다.

어머니 적선원 보살이 철 들기 전부터 하게한 정시, 정송은 지금까지도 일상의 시작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은혜경의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은혜경 속에 깃든 효도의 말씀 덕분에 부모님께 큰 효도는 아니어도 그릇된 자식으로 살아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불교의 궁극 목표점인 해탈 혹은 성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그. 언젠가 회사에서 근무를 할 때 직장 상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떤 오해였는지 크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상사를 이해하려 했었고, 그날 저녁 그 상사에게 몇 배는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보고 문득 자신이 과거에 지은 잘못을 오늘 자신이 받았고 그 순간 마음을 다독였던 것이 잘못된 업의 반복을 없앤 것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공부하면서 잘못된 업을 소멸해가면 그때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바탕이 맑고, 맑은 마음을 실천으로 닦아갔던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리의 삶에서 제약된 일들을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게된 것만 해도 복된 삶이구나 싶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느낄만한 것들을 저는 좀 더 이른 나이에 느꼈던 것 같아 오히려 좋다”며 환하게 웃음 짓는 29살의 선재군. 그동안 기획, 홍보 등을 총괄해 가면서 밑바닥에서 위까지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겪었던 갖은 고생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세계의 무대에 진출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시작은 도전이다”는 것이 바로 저의 모토예요. 훗날 보다 큰 회사의 사장이 되면 사훈으로 걸어 둘 꺼예요.”

남들이 쉽게 잘 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시도를 많이 해볼 생각인 그는 지난 시간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한 그렇게 시도해 갈 것이다.

그의 뒤에는 늘 하고 싶은 것 하라고 일러주신 부모님이 계셨다. 몇 해 전 열반에 드신 아버지께서 학창시절 밴드부 활동과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두셨다고 한다. 작곡과 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그런 아버지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인 듯 하다. 이번에 사이아트 그래픽을 맡아준 동생 보은군 역시 재주가 남다른 청년이다.

지난번 종단에서 한 창종 60주년 기념 서원가 공모에서 선정된 서원가 3곡의 작곡을 의뢰받아서 작곡을 하기도 했는데 그중 ‘어둠에서 밝음으로’는 어머니 적선원 보살의 작사에 아들 선재군이 작곡을 붙인 창작서원가이기도 하다.

작사와 작곡을 두루 하고 있는 그는 걸어 다니는 중에 멜로디가 자주 떠올라 기록을 해둔다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대외적인 사업뿐 아니라 서원가도 인연이 닿으면 주저없이 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기복적이 아니라 자신을 바로 닦아가는 것이 심인진리인 것 같다”며 “이렇게 좋은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 있는데 작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포교에 앞장설 마음이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목표로 하는지 묻자 “심인당에 희사를 많이 할 수 있을 정도의 결실을 거두는 성공을 하고 싶은데요”라는 답변에서 젊은이의 열정에 보태어진 신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이라면 세계무대는 머지않아 그의 무대가 되지 않을까?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문화창의산업전시회에서 해외 바이어들과도 만나며 세계로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 그는 “아직은 갈 길이 멀어요.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더욱 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끊임없는 노력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과 겸손 그리고 무엇보다 견고한 신심을 지닌 아름다운 청년이다.

백근영 기자 mu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