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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게 써서 정화(淨化)하라. 옳게 쓰면 팔위(八危)없다.

밀교신문   
입력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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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이 아니라 마음도 말도 몸도 옳게 쓰면 업이 정화되고 팔위가 범접하지 못한다.-

 

또 한해가 깊어가네요. 세월이 날아가는 화살이라더니 어느새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말이니 새해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새털 같은 날들의 연장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그리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요? 아마 앞만 보고 나아가는 인간의 속성을 잠시만이라도 멈추어 주위를 돌아보는 등 마음에 점 하나 찍으라는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부처님이 사위성에 오시자 파사익(파세나디)왕은 석 달 동안 부처님과 그를 따르는 스님들을 정성껏 공양하였으며, 수만 개의 등불을 밝히는 연등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 사위성에는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한 난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을 흠모하던 이 여인도 연등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초라하고 조그마한 등을 정성스럽게 밝혔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한차례 바람이 일더니 여인의 등불만 남긴 채 주위를 밝히던 등불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아난이 새벽에 탁발하러 성안에 들렀다가 꺼지지 않고 있는 조그마한 등불을 끄려 해도 도저히 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부처님께 보고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수기(受記)를 하셨습니다.

 

아난아 그 등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여인이 올린 등불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공덕으로 30억 겁 후에는 수미등광여래로 태어날 것이다.”

파사익왕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부처님을 찾아와서 여쭈었습니다.

 

저는 석 달 동안 부처님 일행을 지극정성으로 공양했으며, 등불도 수만 개나 올렸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수기를 내려주십시오.”

 

부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깨달음이란 하나의 보시로 얻을 수도 있지만 백천의 보시로도 얻기 힘든 경우가 있소. 불법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여러 가지로 베풀어 복을 짓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오.”

 

비로소 왕은 부끄러워하며 물러갔습니다.

 

현우경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파사익왕은 어떤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을까요? 그가 수기를 받지 못하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공양의 대가로 더 넓은 땅과 재물을 원했을 것 같습니다.

 

여인은 복을 지으려 했지만, 파사익왕은 복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짓는 것임을 왕은 알지 못했습니다. 보시와 공양은 밖으로 드러난 물질의 양보다 정성과 청정한 서원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공덕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은 공덕은 참 공덕일 수 없습니다.

 

좋든 싫든 돈의 유통이 곧 사회를 움직이는 동맥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깨끗하지 못한 피가 돌면 심장질환에 걸리듯, 돈 또한 막힘없고 깨끗하게 유통되지 않으면 사회가 병이 듭니다. 그래서 회당대종사님은 일찍이 옳게 써서 정화하라. 옳게 쓰면 팔위(八危)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바르고 옳게 쓰는 수행은 곧 삼밀행입니다. 신구의(삼밀)를 옳게 쓰면 업이 정화되듯이 신구의를 바로 하여 돈을 쓰면 그 돈 또한 깨끗해집니다. 보시든 일상생활을 위해 쓰는 돈이든 삼밀행을 하듯 써야 하는 까닭입니다. 비록 구걸한 돈이지만 여인은 삼밀행으로 씀으로써 불법을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바른 몸가짐으로, 따뜻하고 좋은 말로, 공덕을 바라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돈을 사용하면 그 돈이 맑은 피가 동맥을 타고 흐르듯 세상이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삼밀행으로 쓰는 돈에 어찌 감히 팔위 따위가 다가오겠습니까?

 

(재물)도 옳게 쓰면 정화되듯이 몸과 마음 그리고 말을 옳게 쓰면 지은 업이 정화되고 미래의 복을 짓는 인이 됩니다. 몸을 올바르게 쓰기(신밀) 위해서는 먼저 올바르고 참다운 뜻을 세워 참과 거짓을 구분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올바르고 참다운 말하기(구밀)는 항상 고맙다는 말을 건넬 줄 알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아는 것. 힘든 일을 겪는 이웃을 보면 힘을 북돋우는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올바르고 참된 뜻을 품기(의밀)는 나란 존재가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며, 너 역시 나 못지않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햇빛과 물, 공기와 곡식은 물론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벌레나 짐승들도 소중하다는 바탕에서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연말입니다. 마음에 점 하나 찍을 때가 되었습니다. 이웃들과 나눌 때입니다. 많이 가졌다면 넉넉하게 나누는 것도 괜찮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은 분들도 얼마든지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떡 한 접시에 웃는 낯(), 따뜻한 말(), 함께 잘 되자는 마음()이면 차고 넘칩니다. 신구의를 바로 쓰는 삼밀행은 업을 정화하고 미래의 복을 짓게 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거룩하고 신통한 수행법입니다.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