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한국 밀교 전개사

한국밀교전개사 17
고려의 오륜탑 신앙 1. 고려의 밀교와 오륜탑 오륜탑은 밀교경전이 성립된 이후부터 등장하는 밀교 우주관의 상징적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일경이 성립된 이후부터 그 계통의 논소나 찬술집 등에서 오륜을 근간으로 한 교리가 확립되고, 수행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행자와 오륜을 일체화시키는 행법으로 정형화되었다. 나아가서 대일경이 유포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탑을 건립하거나 사리함, 묘탑을 조성할 때, 오륜의 교리를 널리 활용함으로써 문화적이나 신앙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오륜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수행법이나 탑의 건립이 일반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륜탑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오륜탑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일본에서 도래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 묘탑형 오륜을 근간으로 한 수행법이나 탑의 건립이 일반화되지 못한 가운데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오륜탑 양식이 묘...
2001-09-27 15:56:04
한국밀교전개사 16
고려의 진언다라니신앙 1.다라니 신앙의 형성 고려시대의 불교는 4종수법도량이 개설되고, 오불만다라신앙이 전개되는 등, 밀교적 신앙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진언다라니만을 도립시켜 독송및 관법, 법구의 조성, 복장안치등에 활용하는 일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것은 육자진언관련 찬술집의 편찬이나 범종, 복장유물에 새겨 넣은 다양한 형태의 진언다라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세간적인 소원성취를 도외시 하지 않은 고려불교의 특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진언다라니 신앙은 불보살상과 같은 유형적인 신앙대상에 대한 예배가 아닌 음성이라는 무형적 방편을 통한 신앙형태이기 때문에 한층 신비감을 더해준다. 다시 말해서 유상존격에 대한 신앙이 지극정성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신앙대상과 자신을 일체화시켜 가는 방법이 주된 목적이라면 진언다라니신앙은 자신의 내면세계로부터 잠재의식을 일깨워서 신앙의 대상이 떠 오르도록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 원래 진언다라니는 그...
2001-09-17 13:29:41
한국밀교전개사 15
고려의 만다라와 오불신앙 1. 고려의 만다라신앙 현재 우리 나라에는 밀교경전의 가르침에 따라서 만들어진 만다라가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통일신라시대부터 밀교승들에 의해서 만다라가 그려지고, 수행의 법구로써 활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찰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만다라를 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행스럽게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보살상 복장유물 중에서 귀중한 만다라 한 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조선시대에 봉안된 보살상속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고려시대의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만다라에는 고려시대에 생존했던 시주자의 이름과 조성연대가 새겨져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것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이 만다라는 문자로 된 금강계만다라로 그 둘레에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를 비롯한 금강계 대일여래의 진언과 육자진언을 새겨 넣은 독특한 형태로 ...
2001-09-03 15:48:09
한국밀교전개사 14
경애도량과 증익도량 1. 경애와 증익도량의 성격 경애와 증익도량은 식재나 항복도량과는 달리 기도를 통하여 발생하는 위신력으로 상대방으로부터 항복 받거나 사악한 것들을 퇴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원을 통해서 경애심을 불러일으키고, 증익을 도모하는 형태의 수법을 근간으로 삼는다. 여기서는 호마기도법의 기본 틀인 제존의 봉청, 찬탄, 서원, 봉송의 형식을 취하여 의식을 집행한다. 특히 이 도량에서는 온 우주에 편만해 있는 제존을 위무하여 의식단에 봉청하고, 그들의 공덕을 찬탄하며, 의식집행자 자신의 서원을 나타낸 다음, 제존이 편안하게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서 경애도량은 항복도량과는 반대로 만인들로부터 스스로 경애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도량이다. 따라서 이 도량은 수법자와 수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간에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리고 증익도...
2001-08-17 22:53:57
한국밀교전개사 13
고려의 식재도량 1. 식재도량의 성격 고려시대 식재도량의 성격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엄습해오는 재해와 고난을 잠재우는 세간적 실지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도량과 내적으로 축적되는 번뇌와 죄업을 소멸시키기 위한 출세간적 실지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도량이다. 칠구지불모소설준제다라니경에서는 죄업을 소멸시키고, 장애를 제거하며, 재해를 물리치고, 질병을 막는 것을 식재라고 정의한다. 나아가서 실혜의 호마법약초에서는 식재의 종류를 멸죄식재, 멸고식재, 제난식재, 실지식재 등 4종류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실지식재는 출세간적 실지성취이며, 그 나머지는 세간적 실지성취에 해당한다. 이 도량은 고려시대 가장 보편적으로 개설된 기도도량이며, 그 대표적인 예로 소재도량, 불정도량, 공작명왕도량, 마리지천도량 등을 들 수 있다. 이 도량들은 크게는 국가적인 천재지변을 없애고, 작게는 개인의 질병, 재앙 등을 소멸시켜 복지구족의 불국토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2001-07-28 21:58:54
한국밀교전개사 11
고려 밀종의 활동과 행법 1. 밀종의 활동 고려시대 밀교종파의 활동 중 두드러지는 것은 항복, 식재, 경애, 증익의 4종수법 도량의 개설이다. 이들 수법도량이 고려시대에 개설된 것은 고려왕조의 안녕과 통치기반을 불교에서 찾으려고 했던 국왕과 집권자들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출세간적 성취와 세간적 성취를 모두 추구하는 밀교의 행법 중에서 세간적 성취에 해당하는 4종수법을 주로 행한 것을 보면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하여튼 이 시대에 밀교적 성격의 4종 수법도량이 개설된 것은 삼국시대이래 이 땅에 각종 밀교행법이 수용되었다는 증거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악귀잡신들을 퇴치하기 위한 백고좌회, 팔관회등의 호국법회가 개설된 일은 있으나 고려시대와 같이 대대적인 사종수법 도량이 개설된 일은 없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밀교가 수법도량중심의 특색을 지니게 된 것은 총지종이나 신인종과 같은 밀교종파의 성립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이들 밀교종파...
2001-07-05 11:52:54
한국밀교전개사 10
고려시대 밀교종파의 성립 1. 밀종의 성립배경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기를 거치는 동안 밀교승으로 전해지고 있는 인물들의 성격을 분류해보면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밀본과 같이 독경의식을 통하여 구병법을 행한 부류, 두 번째로 명랑과 같이 신인비법을 통해서 국난극복에 진력한 부류, 세 번째로 혜통과 같이 주력을 통하여 구병법을 행한 부류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현초, 의림, 불가사의와 같이 대일경계 밀교를 전승한 부류, 다섯 번째로 혜초와 같이 금강정경계 밀교를 전승한 부류이다. 이들 중에서 고려시대까지 그 맥이 이어져서 종파로까지 발전한 것은 혜통과 명랑계통의 밀교이고, 이 두 인물을 개조로하여 성립된 종파로 총지종과 신인종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는 다양한 부류의 밀교승들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현존하고 있는 자료상으로 보면 그들의 활동영역은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즉 그들의 활동은 왕실과 귀족사회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특...
2001-07-05 11:50:29
한국밀교전개사 9
현초와 의림 1. 생애와 법맥의 전승 현초와 의림 아사리의 생몰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대략 8세기초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무외삼장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서기726년부터 735년 사이에 복선사(福先寺)에서 대일경법과 소실지법, 허공장구문지법을 전수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제자의 양성에도 힘써 당나라의 혜과와 순효에게 각각 선무외삼장으로부터 전승 받은 법을 전하여 중국 밀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선무외삼장이 인도 중기 밀교의 중국 전래자라면 현초와 의림은 스승의 가르침을 당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이웃의 우리 나라와 일본에 그 법이 전해지게 한 인물이다. 이들의 제자인 혜과와 순효는 일본의 밀교종파를 세운 공해와 최징을 길러 냈고, 법맥은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진언종과 천태종을 통하여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한편 현초의 손제자이자 혜과의 제자였던 신라의 혜일과 오진은 본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한 행적을 알 수 없고, 오진은 인도로 구법...
2001-05-31 16:47:09
한국밀교전개사 8
동아시아 밀교유포 큰 업적 1. 생애와 업적 혜초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는 왕오천축국전에 실려 있는 내용과 그가 번역한 경전의 서문, 불공삼장의 유서 등에 의해서 파악될 뿐 별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생몰연대는 주변자료를 통하여 대략 700년경에 태어나서 78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그가 남긴 교훈은 인도구법 순례여행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불교도들에게 불굴의 구도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인도 유가부 밀교의 전승자로서 동아시아 밀교의 전개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통일신라 불교 발전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던 구법승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구도열정은 중국에 그치지 않고, 불법의 본고장인 인도에까지 가서 당시 인도불교의 사정을 몸소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720년경부터 728년경까지 인도와 서역을 구법 순례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이것은 당대 그 지역의 불교계 상황과 지리 환경, 그...
2001-05-21 10:04:31
한국밀교전개사 7
불가사의 아사리 1. 입당의 목적 오늘날 불가사의 아사리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주변 자료들을 통하여 그가 통일된 후인 신문왕(681)때부터 경덕왕(764)때에 걸쳐서 생존했던 인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신라가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추면서 체제에 대한 통합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생활하던 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하여 국가화합을 이루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던 때였다. 아울러 자연재해도 빈번하여 황룡사에 유성이 떨어지고(673),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674),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고(703), 미륵사가 지진으로 파괴(719)되는 등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이와 같이 대내적으로 어수선한 시기 불교계에서도 자리(自利)적인 수행이나 불경공부만 하고 있을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동했던 원효, 경흥, 태현 같은 스님들은 진호국가도량의 근간을 이루는 금광명경, 인왕경 등의 연구서 들을 저술하고 있다....
2001-05-07 09:02:49
한국밀교전개사 6
정착기의 신라밀교 구법연구활동 신라불교가 정착기에 접어들면서 내적으로는 경전의 연구가 진행되고, 외적으로는 구법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인도와 당나라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유학승려들이 나타났으며, 일부에서는 일본에 불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 때 원효, 의상, 경흥, 태현 등은 경전을 연구하여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고, 혜업, 현태, 구본, 현락, 혜륜 등은 인도로 구법의 길을 떠났다. 또한 의상, 원측, 도증, 승장, 신방, 무상, 지장, 무루 등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불법을 연구하고 귀국하거나 그곳에 머물면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무상은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티베트불교의 지도자들과 접촉하였고, 지붕, 지만, 지웅, 번상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일본에 불법을 전하였다. 그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밀교계에서도 국내외적으로 밀교의식의 봉행과 구법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7세기에 접어들면서 구복적인 밀교의식이 봉행되었고, 한편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
2001-04-09 08:5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