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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본 회당사상 4
[2013-11-01 14:05]

구덩이를 파다


대종사의 7세시의 시작(詩作)은 앞길을 예견하는 심비한 메시지이다. 대종사의 사고의 바탕에는 '밝게 사는 원리'가 깔려 있었다. 이것은 '금강정경'의 중심사상이기도 하다. 세상을 어두운 눈으로 보면 어둡게 보이지만 밝은 눈으로 보면 모두가 밝게 보인다. 진각행자가 늘 예참하는 '삼십칠존의 세계'는 밝은 사회건설의 틀을 보여 준다. 그러나 대종사는 이를 "흰 바탕에 단청을 그린다"는 말씀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철학적, 이론적인 언어를 빌려 종조님의 말씀을 조감하여 보면 "마음 하나 천만을 당적한다"는 실상(實相) 반야적[공·空]인 면을 암시하고, '대일경'적인 본유(本有)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흰 바탕에 단청을 그린다"는 연기(緣起) 유식유가적(唯識瑜伽的)[유·有]인 면을 암시하고 '금강정경'적인 수생(修生)의 사상을 담고 있다. 이 본유와 수생은 실질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불이(不二)이며, 하나로 통일된다. 이것이 진실의 경지를 실지로 체감하는 실천의 길이다. 자성법신의 말씀 "비로자나부처님은 시방삼세 하나이라, 온 우주에 충만하여 없는 곳이 없으므로"는 "마음 하나 천만을 당적한다"의 연장이며 "가까이 곧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먼저 알라"는 "흰 바탕에 단청을 그린다"의 연장된 말씀이다. '그린다' '알라'는 실천(체득) 행위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시구가 서당공부 시절의 작품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시구가 머금고 있는 경지가 이미 어린시절부터 대종사의 심경에 싹트고 있었던 사실이 중요하다. 소년 덕상의 마음에는 이처럼 우주 진실의 경지를 향하여 사색의 나래를 젓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배움이 더 절실하였다. 대종사는 울릉도에 근대교육기관으로서 울릉보통학교가 설립되자 14세(1915)에 입학한다. 울릉도에 근대교육기관 설립은 1901년에 시작한다. 1901년 황성신문(皇城新聞) 2월 27일자 잡보에 "울릉군수 배계주(裵季周)씨가 해군인민(該郡人民)의 교육차로 학교를 설시(設始)하고 학부에 인허(認許)를 칭하얏더라"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울릉군수 배계주가 울릉도가 울릉군으로 승격된 것을 계기로 1901년 1월 울릉도에 처음으로 근대학교를 설립하고 학부에 인허를 신청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그 후 1908년 군수 심능익(沈能益)이 관어학교(觀於學校)를 건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교원은 조현우(趙鉉禹)와 일본인 요시다 히츠지(吉田未藏) 등 2인이고, 학생수는 12∼13명이었다. 교과목은 일어 산수 한문 등 서당식으로 수업하고, 수업년한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정적 문제로 이듬해 1909년 휴교하였다.

관어학교가 휴교하자 관어학교를 이용하여 사립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에 옥류서당(玉流書堂·사동서당)의 훈장 김광호를 초빙하였다. 교원은 진형호(陳衡浩)와 일본인 타카야 레이메이(高谷靈明)였다. 교과는 예과(豫科)와 본과(本科)를 두었다. 예과에는 한문 습자, 본과에는 일어 산술 체조 한문 습자 등을 가르쳤다. 수업년한은 예과 1년, 본과 3년이고 총 26명의 학생이 공부하였다. 그런데 1911년 '사림학교법규칙'이 공포되자 신명학교는 울릉사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교장은 일본인 마노(眞野威光)가 맡았다. 교과목은 종전과 같고, 학생수는 36명이었다. 1913년 3월 13일 울릉사립보통학교는 다시 울릉보통학교로 인가되어 울릉도에서 첫 공립학교로 4월 1일 문을 열었다. 그 후 울릉도에는 일본인 전용학교, 또한 중요 지역에 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종사가 입학한 울릉보통학교는 1913년에 설립되었고, 대종사는 2년 후인 14(1915)세에 입학하였다. 대종사의 학적부에 따르면 이름은 덕상(德祥)으로 1915년 4월 2일에 입학하였다. 본적과 주거지는 울릉군 남면 옥천동이고, 생년월일은 6월 10일로 잘못 기술하고 있다. 호적은 5월 10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호자의 직업은 농업으로, 입학 전 경력으로 가주학(家住學) 천자문(千字文)으로 적고 있다. 가정에서 천자문을 공부했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입학할 때 서당에서 공부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교과목은 1∼2학년 때는 조신(條身), 국어(일본어), 조선어 및 한문, 산술, 과학, 도화(圖畵), 체조, 창가 등이고, 3∼4학년은 여기에 이과(理科)와 농업초보가 들어 있다. 성적은 평균 9점(10점 만점)을 받아서 평점 갑(甲)(2학년 을·乙)을 받았다. 학적부에는 신장(4.56), 체중(9.50), 융위(2.30)이며 체격(강·强)이라는 재미있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18세(1919년) 3월 25일에 졸업하였다. 따라서 대종사는 보통학교 재학시절 공부를 열심히 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년 덕상은 입학하여 6개월만에 학교를 쉬게 되었다. 할머니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뚜렷이 모른다. 다만 집안의 전언(傳言)이 신빙성을 가진다. 첫째는 동갑내기 삼촌[억조·億兆(정섭·正燮)·1902∼1955]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아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데 손자만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마땅하게 학교에 못 가게 할 명분은 되지 못하였다. 여기서 또한 교과서에 고모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집에서 교과서를 읽으면 늘 고모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할머니는 손자가 늘 고모 이름을 부르는 것이 못 마땅하였다. 당시 상황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고모가 누군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대종사의 고모는 세분이었다. 그 중에서 셋째 고모의 이름(순남·順南)은 알 수 있을 뿐 다른 사람의 이름은 모른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어머니가 학교를 쉬게 하였다.

본의 아니게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 덕상은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왔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와 밭을 메로 갔다. 어머니가 밭을 메든 중 밭 메는 아이가 없는 사실을 알았다. 잠시 일을 쉴 겸 밭 주위를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던 아이가 밭머리에 깊은 웅덩이를 파 놓고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깜짝 놀라서 여기서 무엇 하느냐고 나무라듯 물었다. 아들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못하게 하는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버티며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사실을 할머니에게 상의하여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배움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마는 의지력을 볼 수 있다.

소년 덕상은 학교에 다니면서 가끔씩 산에 가 귀버섯 등 나물을 해다 판돈으로 달걀을 사 선생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선물은 꼭 해가 저물어 땅거미가 져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때 가져갔다. 선생님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다. 누군가가 일본 선생님께 선물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 때 "일본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 선물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은혜를 생각하고 갚으려는 심성이 싹튼 것으로 보인다. 귀버섯(Crepidotus mollis)은 대는 없고 갓은 1∼5cm 정도로 부채형의 버섯이다. 목이(木耳)버섯이라고도 하는데 담자균류 주름버섯목 귀버섯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갓 표면은 초기에 백색이나 성장하면서 연한 황갈색 또는 갈색이 되고 편평하고 매끄러우며 습하면 점성을 가진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숲 속 고목에서 군생한다. 그 당시 울릉도에도 자생한 것으로 보인다. 

대종사는 서당시절과 보통학교 시절에 공부를 하면서 집안 어른들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학적부에 보호자의 직업이 농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 부친이 한의에 관심이 많고 농사일을 할 만큼 건강하지 못한 까닭도 있었다. 대종사 또한 자연히 한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계속)



경정 정사 / 진각종 전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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