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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데서 배우고 깨친다 4
[2013-11-16 13:50]

산들바람 혁명-빈 곳 채워주기


하늘이 유달리 높아 보이고 투명에 가까운 푸른빛을 띠면서 숲 내음을 품은 산들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온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징조다. 두메산골 중학교 때 풍금 반주에 맞추어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저절로 생각이 나서 흥얼거려본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누나."

바람에 관한 노래는 가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꽃향기가 얼굴을 간질이는 듯한 봄날의 실바람, 여름 한낮 농부들의 땀을 식혀주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의 시원한 남실바람, 살을 엘 듯 매서운 겨울날의 된바람에 대한 노래도 있다. 바람은 동서고금을 떠나 예부터 시인과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소재이다. 그들은 순기능으로서의 바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바람의 이름 또한 예쁘기만 하다. 순우리말로 동풍을 샛바람, 서풍을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 남풍을 마파람. 북풍을 된바람 또는 높새바람이라 한다.

하지만 바람에게 항상 순기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름철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인근 해역에서 해마다 한두 차례 발생하는 태풍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불러온다. 이런 광풍은 발생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 쪽으로 불어오는 것을 태풍, 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것을 허리케인,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사이클론,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윌리윌리라 한단다. 미국 중남부에서 자주 발생하는 소용돌이 바람 토네이도는 태풍이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피해를 발생시킨다. 

바람이란 무엇인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서 공기가 움직이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공기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움직이려는 자연현상이다. 즉 빈 곳을 채워 평형을 유지하려는 우주의 심오한 움직임인 것이다. 빈 곳 즉 결핍이 사소하면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같이 상쾌한 바람이 불게 되고, 빈자리가 커지면 태풍, 사이클론, 허리케인 같은 무시무시한 바람이 발생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는 끊임없는 진화(evolution)와 혁명(revolution)에 의해 발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진화는 속도가 느리지만 큰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 반대로 혁명은 속도는 빠르지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류는 혁명에 의해서가 아닌 진화에 의해서 발전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의 역사는 혁명으로 점철되어 있을까? 그 답을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빈곤은 혁명과 범죄의 부모이다.'(Poverty is the parent of revolution and crime.) 빈 곳이 워낙 크다보니 큰 희생이 따르는 혁명이 태풍처럼 밀려온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거(T.R. Gurr)는 기대상승과 현실악화의 개념을 그의 '상대적 박탈이론'과 결합시켰다. 이 이론은 사회로부터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사회성원들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할 때 혁명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사진=보장 각자 / 보정심인당 신교도

우리 역사에서 보더라도 거의 실패했지만 혁명이라 할 수 각종 민란이 빈곤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사상가들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보는 프랑스혁명 역시 정치적인 의도로 빈곤층을 부추기어 일으킨 혁명이었다. 볼셰비키혁명 또한 빈곤노동자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일어난 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이나 볼셰비키혁명은 당시 성공한 혁명이었지만, 그에 따른 폐해 또한 막대하였다. 서로 편을 갈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상처를 입었고, 사회는 뒤숭숭하여 모든 시민들이 숨을 죽이며 지냈다. 혁명이 완성되기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고, 끝난 후에는 뒤처리를 위해 천문학적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혁명에는 진화에 비해 마치 태풍처럼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요컨대 혁명이란 극단적인 선택이며, 그래서 사회가 건강하려면 극단적 선택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혁명은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혁명이란 용어 자체부터 정의해보자. 혁명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제도, 경제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둘째,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세우는 일.

앞에서의 예들은 첫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불만을 가진 이들을 부추겨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이 일으킨 정치적 혁명이었으며 희생자 대부분이 빈곤층들이었다. 불의와 불평등에 저항하여 피를 흘렸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파이의 양은 턱없이 미미했다. 큰 조각은 부추긴 이들의 몫일 뿐이었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혁명은 아니었다. 다만 프랑스혁명의 경우 왕정체제에서 민주정치체제를 확립시켰다는 데에 대한 가치는 매우 크다. 우리의 정치적 혁명 4·19혁명은 이와 또 다르다. 불의에 대한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저항이었으며, 숱한 희생자를 냈지만 가치가 매우 큰 혁명이었다. 어떤 정치적 세력의 부추김 없이 스스로 일어나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자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온 세계에 빈곤층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빈곤의 원인을 외국인들의 유입 때문이라 하여 이주외국인들을 테러하는 일이 빈번해졌으며 정부의 이주정책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가정이 파괴되고 노숙자로 전락한 중산층이 많아졌으며 범죄율이 급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점점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빈자리가 많아지니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생활범죄 또한 증가하고 있는 편이다. 그 목소리가 커지면 사회가 불안해진다. 그 목소리를 이용하려는 세력도 생겨날 수 있다. 어찌해야 옳은가?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카빌라바투에 있는 니그로다승원에 계실 때였다. 석가족 마하마나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재가 신도가 보시를 갖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마하마나여, 재가 신도들은 마음속에서 인색의 때를 제거하고 시여를 베풀 것이며, 손을 정화하여 보내버림을 기뻐하고, 구걸에 응하여 보시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지낸다. 마하마나여, 재가 신도들은 이렇게 하여 보시를 성취하느니라."

회당대종사님은 '실행론'에서 "나의 재물 남을 주면 주는 그때 줄었지만, 도로 돌아 불어옴은 우주자연 법칙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보시의 정신을 강조하신 말씀들이다.

바로 산들바람 혁명이다. 산들바람은 늘 빈 곳을 찾아 살랑살랑 돌아다니며 그곳을 채운다. 결핍된 곳을 찾아 채워 가는 산들바람은 보살의 마음이요, 부처의 마음이다. 이전의 관습, 앞과 안만 바라보며 살아온 삶에서 뒤와 좌우, 밖을 바라보며 빈 곳을 채워주어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사회적 혁명인 산들바람 혁명은 부처님과 회당대종사님의 뜻이다. 빈곤에 허덕이는 이웃을 위로하고 배려하여 그들이 태풍이 되지 않고 함께 살아감으로써 희생을 부르지 않고, 정치적 세력에 이용당하지 않는 산들바람 같은 혁명이 태풍의 혁명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덕일 정사  / 보원심인당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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