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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칠존이야기-1.비로자나여래(毘盧遮那如來)
내마음에서 항상 빛나는 부처님-비로자나
[2017-12-14 09:50]

법신불 비로자나(毘盧遮那)라고 하면 우선 󰡔화엄경󰡕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로자나는 화엄경의 교주로서 이 경에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상이 없어서 볼 수도 취할 수도 없는 법신불이건만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은 중생을 교화하려 무수한 화신으로 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화엄경에서는 법신 비로자나여래가 직접 법문을 설하는 묘사는 볼 수 없다. 그 대신 빛을 냄으로써 수없는 보살대중을 깨우친다고 한다.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은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큰 광명을 놓으니 그 이름을 여래출현이라 한다. 다시 입으로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의 온 허공과 같은 법계에 있는 세계들을 비추며 오른쪽으로 열 번 돌아서 여래의 가지가지 자유자재함을 나타내고 한량없는 보살 대중을 깨우치며, 보현보살의 입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빛으로부터 출발했던 여래의 출현이 보현보살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법문으로 이어져 중생들이 한량없는 이익을 이룬다는 것이 상징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이 화엄경에서는 여래가 빛으로 출현한다고 하지만 설법은 다른 보살을 통해서 할 뿐이다. 법신불이 형상도 없으며 몸도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으나 밀교경전이 성립함에 이르러 무형의 법신관은 수용법신 비로자나로 일대 변혁을 겪는다. 형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비로자나불과 중생 사이의 감응이 필요하다. 대일경소 「주심품」에는 중생의 마음을 감(感)이라 하고 불심(佛心)을 응(應)이라 하는 감응(感應)의 인연으로, 즉시에 비로자나부처님의 중생들이 보기 좋아할 몸을 나타내어 듣기에 알맞은 법을 설한다고 한다.

진리 그 자체인 비로자나부처님은 시방삼세 역시 진리로서 하나이므로 평등하게 온 우주에 충만하여 없는 곳이 없다. 따라서 감응이 있는 곳은 어디나 화신으로 현현하게 되는데 다만 감응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열리는 것에 따라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설하는 연기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관계 가운데의 삶을 알려준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원인이 있으면 조건이 있고 두 가지 이상이 만나서 지어가는 것을 관계 속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것들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중생의 입장에서 설한 것일 뿐, 관계 가운데의 삶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앎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일정한 형상을 갖지 않는 하늘의 구름을 보고 구름이 흘러간다고 알지만 구름은 실체가 없고 실제로는 흘러감이 구름인 것이다. 중생이란 생각을 싣고 나르는 구름일 뿐이다. 그 구름이 아래쪽 땅을 보면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나무도 있다고 여기지만 위쪽 하늘을 보면 태양의 광명뿐이다. 분별의 견해를 넘어 열린 마음으로 비로자나불을 향할 때에 중생이라는 고정된 틀을 벗어나 밝은 지혜의 흐름, 비로자나를 감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자나불이 가까이 곧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흐름을 고정된 틀로써 착각했던 중생의 앎이 아니라 틀이란 없고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뿐임을 알아가는 것으로써 이것을 빛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로자나라는 명칭도 빛과 관련된다.

비로자나여래는 범어로 Vairocana-tathāgata이며 그 뜻을 풀이하면 모든 장소에 두루함ㆍ광명이 두루 비춤·두루 비추는 여래라고 한다. 밀교경전에서 보통 칭하는 대일여래라는 명칭은 마하바이로자나여래를 의역한 것이다. 마하에는 크고, 많고, 훌륭하다는 의미가 있고 비로자나에는 두루 밝게 비추는 광명, 즉 태양의 의미가 있다.

금강정경에는 비로자나여래와 마하비로자나여래의 구별이 명확하게 설해져 있는데 비로자나여래는 경의 교주이며 만다라의 중심에 위치하는 주존이다. 마하비로자나여래는 만다라 그 자체, 즉 금강계만다라를 예로 들면 비로자나여래를 포함한 5불·4바라밀·16대보살·8공양·4섭·현겁천불·항삼세명왕 등 만다라 전체 존들의 본성이고 일체 현현하는 것들의 배후에 있는 원동력, 또는 생명의 부여자라고도 말할 수 있는 편재자이다. 이것을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일체여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마하비로자나여래를 대일여래라고 번역한 것은 선무외(善無畏)삼장이 최초이다. 선무외의 제자 일행(一行)이 기록한 대일경소에는 ‘범음으로 비로자나는 태양[日]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하여, 대일여래라는 명칭을 준 이유를 설하고 있다. 태양이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양의 에너지를 그 근원으로 하기에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위대하고 절대적인 것이고, 그러한 존재에 여래를 결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태양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다. 단지 그 적은 부분의 상만을 취하는 까닭에 대(大)의 명칭을 더하여 마하비로자나라 한다고 하여, 상대적인 현실계의 태양과는 다른 절대적인 광명의 특질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계의 태양에 없는 세 가지 특성이 대일여래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어둠을 없애어 두루 밝은 뜻[除暗遍明]이다.

세간의 해는 방향을 나눔이 있어 만약 바깥을 비추면 안은 밝게 하지 못하여 한쪽에만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오직 낮에만 빛날 뿐 밤에는 빛을 내지 못한다. 여래의 지혜의 햇빛은 이와 같지 않아 모든 곳에 두루하여 크게 밝음을 비춘다. 안과 밖의 차별이 없고 낮과 밤의 다름이 없다. 또한 해는 염부제로 가서 일체의 풀과 나무, 수풀이 그 성분을 따라 각각 자라나니 세간의 온갖 일이 이로 인하여 성장한다. 여래의 해의 빛은 법계를 두루 비추어 평등하게 무량한 중생들의 갖가지 선근 내지는 세간 출세간의 수승한 사업을 개발시키므로 이로 인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다[能成衆務]. 또한 두터운 어두움과 혼미함이 태양을 가리나 이 또한 맹풍이 구름을 불어 태양의 빛이 드러남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처음 생겨남이 아닌 것처럼 불심의 태양도 또한 이와 같다. 오직 무명과 번뇌와 희론의 겹겹 구름이 덮힌다 해도 이로써 구경의 제법실상삼매를 줄일 수 없으며, 원만하고 밝아 끝이 없으므로 더할 바도 없는 것이다[光無生滅]. 이것은 대일여래의 보편적인 성격, 자비방편과 지혜반야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금강지(金剛智)삼장은 금강정경의결에서 비로자나를 최고로 높이 드러난 광대한 눈의 뜻이라 하였으며, 또한 제불보살이 이를 의지하여 밝게 보며, 제불보살이 이 가운데에서 출생하며, 일체의 현성이 이 가운데 머문다고 표현하여 일체불보살의 근본인 비로자나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주석가의 명칭 외에 두루 비추는 금강, 장애가 없는 금강이라 하는 밀호가 있으며 관정명으로 금강계여래가 있다.

금강정경에서 일체의성취보살은 일체여래 즉 대일여래의 각성된 가르침에 의해 선정의 경지에서 오상성신관을 수행하여 그에 의해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하는데, 그때 일체여래에 의해서 관정을 받아 ‘금강계’라는 관정명을 수여받는다. 일체의보살마하살이 일체여래로부터 받는 금강계의 관정은 금강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여래의 절대의 경지를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금강계란 다섯 가지 지혜를 원만구족한 부처님이다. 일체여래의 신밀·구밀·의밀의 세계, 금강계를 현증한 일체의성취보살은 금강계라고 하는 명호로써 관정되고, 금강계보살이라 불린다. 일체허공계에 편만한 일체여래와 동등한 위를 얻은 보살은 일체여래에 대해 자신에게 일체여래의 금강신을 현증하는 뜻을 선언한다. 일체여래의 경계를 얻고 부처의 몸을 원만히 하고, 다시 일체여래의 가지를 입어 모든 지혜를 갖추고 금강계여래로 되는 것이다. 금강계여래가 머무는 도량은 대우주 그 자체로서 모든 경계가 그대로 여래의 세계로써 신·구·의 삼밀의 작용으로서 구현되는 세계가 금강계이다. 그것을 깨달아 알고 모든 곳에 무애자재하게 머무는 것이 금강계여래라는 명칭이다.

따라서 금강계여래, 즉 비로자나여래가 머무는 자리는 어느 곳이나 금강좌이며, 동시에 사자좌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자가 온갖 짐승들의 왕으로서 모든 동물 가운데에서 두려움없이 다니는 것을 비로자나불이 제법의 왕으로서 제법 가운데 변화무애한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색은 흰 거위와 같고 형태는 맑은 달과 같다.

일체의 상호가 모두 다 원만하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머리털을 늘어뜨리며, 비단같은 묘한 천의를 허리에 두르고 소매를 끌어서 웃옷으로 삼는다‘고 그 형상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석가여래와는 다른 보살의 모습이다. 비로자나여래의 인계는 지권인(智拳印)으로서 보리인·여래권인이라고도 한다. 지권인에서 왼손은 소우주, 오른손은 대우주를 상징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합하는 것에 의해서 ‘이(理)와 지(智)가 둘이 아님’·‘중생과 부처가 동일함’·‘미혹과 깨달음이 한몸인 이치’를 나타낸다. 삼매야형은 금강계자재인이라고 이름되는 탑인(塔印)이다. 삼매야회에서는 가로로 누운 오고저 위에 탑을 놓고 있다. 대일여래의 상징을 탑으로 한 것은 전통적인 불타의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영덕/위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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