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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8
나이를 먹다
[2017-12-28 09:38]

나이 든다는 것의 열다섯 가지 비유

인도땅 바라나시에 대부호가 살고 있었습니다. 대부호에게는 마하다나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하다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평생을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부모는 마하다나에게 일을 가르쳐주지 않고 어떤 기술이나 학문조차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한편, 같은 도시에 마하다나 집안만큼 부유한 대부호가 또 한 집 있었는데, 그 집에는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딸에게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두 집안의 아들과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갓 결혼한 부부는 세상 물정 모르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양가 부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 부부는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이내 잊었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즐기기만 해도 인생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재산이란 것은 덧없었습니다. 평생을 써도 못다 쓸 정도로 많다고 여겼지만 이들 부부는 돈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자 그들의 돈을 노리는 자들이 접근했고, 순식간에 전재산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집안을 채우고 있던 가재도구까지 다 팔아치웠고, 끝내 살던 집마저 비워줘야 했습니다.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제 손으로 돈을 벌 줄 몰랐고, 부부는 밥을 빌어서 허기를 때우며 근근이 연명했습니다. 그렇게 늙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탁발에 나섰던 부처님은 이 늙은 부부를 보셨습니다. 이들은 추레한 행색으로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서 얻어온 밥을 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부처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큰소리로 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늘 평온한 표정으로 지내시지만 아주 짧은 순간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 경우가 이따금 있습니다. 부처님의 미소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인연을 살펴보셨다는 뜻입니다.

아난존자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불쌍한 걸인 부부를 보시더니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아난아, 저 부부가 보이느냐? 저들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혹은 장년이 되었을 때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몰랐고 재산을 모으는 방법은 물론이요 지키는 법도 몰랐다. 결국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만일 저들이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더라면 깨달음을 이루어서 세상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 모든 기회를 다 놓치고 말았다. 저렇게 아무 일도 이뤄놓지 않고 버려진 인생이 되고 말았구나.”

부처님은 하릴 없이 인생을 낭비해버린 노부부를 가리켜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젊었을 때 수행자의 길도 걷지 않고
재물도 모으지 않았다면
물고기 한 마리 살지 않는 연못가에서
늙은 왜가리처럼 죽어갈 것이다.
부러져 쓸모없는 화살처럼
옛일이나 그리워하며 세월을 낭비할 뿐이다.(법구경)

젊어서는 젊음 그 자체가 재산입니다. 하지만 젊음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부지런히 평생의 양식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냈다면 그 노후의 삶은 안 봐도 빤합니다. 나이만 먹고 살집만 불렸을 뿐, 머리는 텅 빈 걸인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옵니다. 당연히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집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쇠퇴해가는 것입니다. 노쇠라는 말은 음미해보면 해볼수록 서럽게 다가옵니다.

나이 들고 늙어지면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온갖 병마가 찾아오고 언제나 몸 여기저기가 아픕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전과 다름없이 움직여보지만 굼뜨고 실수 연발이라 세상의 비웃음 받기 십상입니다. 늙으면 다 그렇다며 세상을 향해 이해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세상은 나이든 사람의 굼뜬 모습을 곱게 봐주지 않습니다. 결국 “너는 늙어봤니, 난 젊어봤다”라는 노래가사까지 나오게 됐지만 이 역시 나이든 나를 좀 봐달라는 안타까운 하소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늙음을 바라보는 세상의 이런 시선을 열다섯 가지 비유로 들려줍니다.
첫째, 늙음은 우박을 맞은 연꽃과 같습니다. 아무리 연못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연꽃이라 해도 우박을 맞으면 시드는 것처럼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장성하던 기색이 시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강대한 이웃나라 신하에게 붙잡혀 그 나라 왕에게 끌려가는 임금과 같습니다. 늙음은 사람의 푸르른 청춘 모습을 붙잡아서 죽음이라는 왕에게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꺾어져 쓸모없어진 차축과 같습니다. 늙음도 그와 같으니 세상에 쓰이지 못합니다.

넷째,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보석더미를 도둑떼에게 다 빼앗긴 부잣집과 같습니다. 늙음도 그와 같으니 장성하던 기색을 어느 결엔가 도둑에게 빼앗긴 것과도 같습니다.

다섯째, 가난한 사람이 값비싼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바라더라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늙음도 그와 같으니 부귀와 쾌락을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합니다.

여섯째, 뭍에 있는 거북이 항상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도 나이 들어 시들면 언제나 젊었을 때 누리던 쾌락을 그리워합니다.

일곱째, 갓 피어나면 누구나 좋아하지만 일단 시들면 모두에게 천대받는 연꽃과 같습니다. 늙음도 그와 같으니 장성한 때 사람들이 사랑했던 모습도 늙어지면 모두들 꺼립니다.

여덟째, 즙을 다 짜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사탕수수와도 같으니, 늙으면 세 가지 맛이 없어집니다. 즉, 출가하는 맛과 경외는 맛과 참선하는 맛입니다.

아홉째, 밤에는 찬란하게 빛나더라도 한낮에는 빛을 내지 못하는 보름달과 같습니다. 장성했을 때에는 잘 생기고 아름답다 칭찬을 듣더라도 나이 들면 쭈그러지고 주름지고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열째, 어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다가 적국에게 패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치면, 그 나라 사람들이 ‘대왕께서 지난날에는 나라를 잘 다스리더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하며 애석해합니다. 늙는 것도 그와 같으니, 노쇠함에 져버리면 젊었을 때의 일을 그리워만 합니다.

열한째, 기름에만 의지하는 등불 심지는 기름이 사라지면 불이 꺼집니다. 사람도 그와 같으니 젊음이라는 기름에 의지하며 지내지만 그 기름이 다하면 노쇠의 심지가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열두째, 사람이나 동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말라버린 강처럼, 사람도 늙으면 어떤 일을 하여도 세상에 이익을 줄 수 없습니다.

열셋째,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선 나무는 폭풍을 만나면 쓰러집니다. 사람도 그와 같으니 늙음의 언덕에 이르고 나서 죽음의 폭풍이 불면 버티고 서 있지 못합니다.

열넷째, 수레의 굴대가 꺾어지면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 사람도 늙으면 그 어떤 선한 법도 받아 지닐 수 없습니다.

열다섯째, 어린 아이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듯이, 사람도 늙으면 항상 세상의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대반열반경>에서 일러주고 있는 늙음의 비유는 너무나 생생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연장자를 존경하고 존중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정작 나이든 당사자에게는 늙음이란 이런 것인 줄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설마 내가 이 열다섯 가지 비유의 삶을 살게 될까 싶지만 누구라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태어났다면 모두가 걸어가야 할 인생길입니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 추레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비관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원래 그러니까요. 그 대신 그저 쇠함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무르익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노쇠의 삶을 살 것인가, 성숙의 삶을 살 것인가.

어쩌면 바로 오늘이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겠지요. 그러니 더 미룰 수 없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며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넉넉한 노후를 대비하는 일도 지금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생계가 해결됐다면 뜻 깊은 곳에 보시를 하는 일도 지금 해야 합니다. 죽은 뒤 다음 세상에 재물을 가져갈 수 없지만 재물로 지은 선업은 그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마음공부도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나이만 먹는 것을 가리켜서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배운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은
숲에 버려진 황소처럼 늙어 가리니
살덩이와 살가죽이나 기를 뿐
지혜는 절대로 늘어나지 않는다.

‘배운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은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에서의 공부가 아니라 마음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나이 드는 것이 몸이 쇠하는 길이더라도 마음이 무르익어간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겠습니까.
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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