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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18-옷을 입다①
빛깔을 무너뜨린 옷 세 벌
[2018-07-02 09:29]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싯다르타 태자였을 때 어머니는 마하파자파티입니다. 비록 생모는 아니었지만,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태어난 지 7일 만에 생모인 마야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갓난아기 싯다르타 태자를 제 자식보다 더 정성들여 키운 어머니입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고,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스승이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붓다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 감동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후 부처님을 향한 마하파자파티의 애정은 세속 어머니의 자식사랑과는 결이 다른 방향으로 깊어졌습니다. 번뇌를 없애는 길을 일러주는 스승을 향한 흠모의 마음이 더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그녀는 결심합니다. 직접 옷감을 짜서 부처님께 올리기로 한 것이지요.

인도 전통복장은 긴 옷감을 몸에 둘둘 말아서 입는 방식이었으므로 경전에는 부처님에게 ‘옷’을 올렸다고 하기 보다는 ‘옷감’을 올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왕비는 제 손으로 한 올 한 올 짜 올려 옷감을 완성해서 부처님에게 올립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당신 개인에게 올리지 말고 승가에 올리기를 권합니다. 서운해 하는 마하파자파티를 대신해서 아난다 존자가 받아 주십사 부처님에게 간청하기도 한다는 일화가 초기경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귀천을 가라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귀의했습니다. 가르침을 청해 듣고 행복해진 그들은 어떻게든 마음을 담은 선물로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체의 소유물을 지니지 않은 부처님에게 딱히 필요한 물건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옷은 입어야 하니까 재가자의 시주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옷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부유층 사람들이 값비싼 옷감을 공양올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속을 떠났다 해도 부처님에게는 이처럼 비싸고 좋은 옷감이 늘 선물로 주어졌던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세생생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요, 절망하지 않았고, 말을 많이 하더라도 비난하지 않았고, 악의를 가지지 않았고, 공격적이지 않았고, 분노와 증오와 후회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상대방에게 언제나 부드럽고 포근한 옷감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 생에 부처님은 자마금(紫磨金) 빛깔의 피부를 지녔습니다. 자마금이란 붉은 빛깔이 감도는 최상급의 금을 말합니다. 절에 가면 만나는 불상이 금빛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 온몸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바로 “아주 부드러운 질감의 옷감을 얻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초기경전에서는 말합니다.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말하는 32상 가운데 황금빛 피부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불상을 조성하면서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귀한 옷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어쩌면 좋은 빛깔을 상징하는 황금빛으로 부처님 피부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도 해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신자들의 마음이 담긴 좋은 옷감을 그대로 입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염료로 염색된 그 옷감을 굳이 다시 물들이거나 선명하고 빛깔 고운 염료를 빼서 이도저도 아닌 빛깔의 가사로 다시 만들어 입었습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의 법복을 뜻하는 말인 가사는 카사야(Kasaya)라는 인도말을 음역한 것으로, 선명하지 않다, 곱지 않다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어떤 특정한 옷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선명한 빛깔의 옷감에서 그 염료를 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문으로는 괴색(壞色)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선명한 빛깔의 옷이 아니라 한 톤 다운이 된 빛깔의 옷을 걸쳐야 하는데, 옷을 입는 목적이 속세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속세 사람들은 옷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옷으로 자신의 재력을 자랑합니다. 옷은 권위를 나타내기에 다시 없이 좋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좋은 옷을 마련하는 것이 속세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권력과 부와 명예가 부질없음을 갈파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 옷이란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품이 지나지 않습니다. <십주비바사론>에는 수행자가 법복(가사)를 입어서 얻는 열 가지 이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몸을 가려 주어 부끄럽지 않게 해줍니다. 둘째, 추위와 더위, 모기나 독충을 막아줍니다. 셋째, 수행자로서의 행동거지를 드러내고, 진리를 숭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넷째,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보고서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게 해줍니다.  다섯째, 선명한 빛깔의 옷감을 다른 빛깔로 물들임으로써 세속의 물건들에 대해 싫증내고 떠나려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며, 나아가 좋은 것을 탐내지 않게 해줍니다. 여섯째, 고요한 해탈열반의 경지를 얻어서 번뇌에 불타지 않게 해줍니다. 여덟째, 법복을 입는 것으로 족할 뿐 몸을 치장할 다른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게 해줍니다. 아홉째, 법복을 입고서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따르며 닦게 해줍니다. 열째, 힘써 수행하고 도를 닦으며, 아주 잠깐이라도 번뇌에 물든 마음으로 법복을 입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해줍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서 수행자의 옷을 부르는 이름들이 생겨나는데, 가령 법답게 지은 옷이란 뜻으로 여법의(如法衣),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란 뜻에서 해탈의(解脫衣), 번뇌라는 때를 씻어내려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요, 그래서 이 옷을 입으면 번뇌가 사라지기 때문에 무구의(無垢衣),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훌륭한 복을 낳게 하는 옷이라는 뜻에서 복전의(福田衣), 이 법복을 입으면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길한 일이 생기도록 해준다는 뜻에서 길상복(吉祥服)이란 이름으로 불립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이런 생각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입장입니다. 재력 있는 신자들은 부처님과 승가에 값비싼 옷감을 공양 올렸지만 정작 그 옷감을 탈색해서 입었습니다. 수행자 자신은 옷으로 인해 탐욕을 줄이고 수행에 방해를 받지 않았으며, 그 오래 전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스님들이 입던 옷을 내놓아도 아무도 탐내거나 훔칠 마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뜻에서 당시 수행자의 옷을 분소의라고도 부릅니다. 분소의란 세상 사람들이 입다가 버린 헌 옷가지로 만든 법복입니다. 수행자가 입을 수 있는 옷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즉, 소가 씹거나 쥐가 갉아 먹은 옷감, 여인의 생리혈이 묻어 버려진 옷감, 출산하던 여인이 온몸의 불순물을 다 묻힌 바람에 버린 옷감, 죽은 사람을 감쌌던 옷감, 무덤가에 버려진 옷감 등입니다. 이런 옷감들은 당시 인도 사회에서 부정 탔다고 해서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무소유를 원칙으로 한 수행자들은 기꺼이 이런 옷감을 주워서 자신의 법복으로 삼았습니다.

게다가 부처님은 딱 세 벌의 옷만 지니도록 규칙을 세웠습니다.
“내가 초저녁에 한데에 앉을 때는 옷 하나를 입었고, 밤중이 되어 추위를 느껴 두 번째 옷을 입었고, 새벽이 되어 더욱 추위를 느껴 세 번째 옷을 입었다. 그러므로 오는 세상에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든 세 벌의 옷만을 갖게 하면 족할 것이다. 나는 이제 비구들에게 세 가지 옷만을 가지도록 규칙을 정하겠다.”(<사분율>)

아무리 값비싼 옷감을 선물 받았다 해도 일부러 그 옷의 빛깔을 무너뜨려 옷을 공양올린 자의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이 떠오르지 않게 했을 뿐더러 받는 자들 역시 옷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가짓수마저도 세 벌로 한정해서 소유에 따른 번뇌와 갈등을 없앴습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옷 입는 방법까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으시되, 그 옷이 몸에 꽉 끼거나 너무 느슨하지 않게 입으며, 너무 높게 걸치거나 너무 낮게 걸치지 않으며, 바람이 불 때 나부낄 정도로 헐렁하게 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소박한 빛깔의 법복을 단정하고도 편안하게 입고서 천천히 마을을 향해 탁발을 하러 내려옵니다. 부처님과 당시 승가는 이렇게 옷을 입었습니다.

패스트푸드 시대에 걸맞게 요즘은 패스트패션 시대라고 합니다. 값싸게 옷을 사서 한 철 입고 내다 버린 뒤에 다시 옷을 사 입는 것입니다. 옷값이 싸진 것은 고맙지만 옷장에 넘쳐나는 옷, 그리고 헌옷수거함에 가득 쌓인 옷들을 볼 때마다 저 또한 욕심과 번뇌의 찌꺼기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납니다.(계속)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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