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식탁 위 팔꿈치

입력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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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ww.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40523
작성 : 밀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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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떠나기 전, 용산 미군기지에 살던 어떤 분의 초대로 식사하러 간 적이 있다. 미국 생활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 갔던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그분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들은 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미국에서 밥 먹을 때는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미국에는 그런 식사 예절이 있구나정도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 들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근데 팔꿈치가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팔꿈치가 미국인 식탁에서는 매너의 기준이라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가 좀 더 크면서 문화 차이라는 세련된 표현으로 이해하긴 했지만, 청소년이었던 당시 나에게 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으로 내가 매너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한동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팔꿈치 하나로도 문화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사는 모습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게다가 세상에는 문화 차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설령 같은 나라에서 자랐더라도 자란 시대가 다르고,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생업이 다르고, 마음속으로 믿는 세계가 다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 이 사람과 저 사람 간의 차이만 있는가? 나라는 한 사람을 두고도 10년 전의 나와 1년 전의 나, 일주일 후의 내가 다르다. 이렇게 많은 것이 상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엔 변한다.

 

나는 이렇게 같은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무엇이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을 그 언젠가 불교책을 읽으며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일련의 조건들이 만나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시간이 지나 조건들이 달라지면 처음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라는 끊임없이 변하는 조건이 있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미국인의 팔꿈치는 미국의 역사를 거쳐오며 식탁 위 불청객이 된 반면에 한국에서는 어른들이 먼저 젓가락을 들어야 아이들도 식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언제, 어디에, 누구로 존재하는가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과 질서가 달라진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고,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만 이해하고 있어도, , 숨통이 좀 트인다. 내가 씨름하는 문제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도 어쩌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광활한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러니 우리, 힘 좀 빼고 숨 좀 더 쉬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한다.

 

전소현/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