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흰 호접난 꽃잎 하나에 고운 님 얼굴 떠올리며

입력 : 2026-06-01  | 수정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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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ww.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40528
작성 : 밀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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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눈부시게 푸르고, 천지에 꽃들이 만개해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지난 3월 말, 90살은 족히 사실 것만 같던 엄마가 저혈압으로 쓰러지셨고, 응급실에 들어가신 지 몇 시간 만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평소에도 언젠가는 이별의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 믿었던 우리 형제들에게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너무도 큰 슬픔이었다. 

 

장례식장 진행자의 차분하고 친절한 안내에 따라 낯선 상복을 입고, 나는 한 쪽 벤치에 멍하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날의 하늘은 더 이상 푸르지도 않았고, 만개한 꽃들도 그저 꽃일 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아…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이 먼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분들의 마음이었구나.’ 그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 슬픔이 다가왔다.

 

30년 전, 꼭 이맘때였다. 내게는 아직도 잔인한 계절로 기억되는 어느 4월의 날. 이웃 결혼식에 참석하러 나가셨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스물일곱이었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별이라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그때 지인의 따뜻한 위로에 이끌려 따라갔던 곳이 부산 화친심인당이었다. 성당이나 교회는 익숙했지만, 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일반 사찰은 입구에서부터 마주하는 사천왕상이 왠지 모르게 두렵고 낯설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심인당은 처음 따라갔던 그날부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오대서원가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스승님의 설법은 내 안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조용히 깨우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심인당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 만남은 현생에서 부처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집안에서도, 가족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알지 못했던 ‘심인당’ 이라는 낯선 이름. 때로는 오해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부처님 세상 안으로 어린아이처럼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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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긴 세월이 흐르고 어느새 나도 흰머리 희끗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양산 불일심인당에서 각자님과 아들, 딸 세 자녀와 함께 부처님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 아버지를 심인당과 맺은 인연 속에서 불공으로 보내드렸듯 이제는 엄마를 보내드려야 하는 시간이 왔다.

49일 불공을 올리며 나는 하얀 호접난을 엄마를 바라보듯 매일 마주했다. 불사 시간마다 ‘옴 마니반메훔’을 염송하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런데 5주째에 접어들며 꽃들이 하나둘 시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이제 새로운 몸으로 바꾸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새하얀 호접난을 들여왔다. 조금 더 오래 엄마 곁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올라간 기온 때문이었을까, 물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내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애써 외면해 보려 해도 꽃잎이 하나둘 떨어질 때마다 자꾸 마음이 쓰였다.

 

한 자성 때마다 일어나는 형제간의 오해와 서운함. 물질에 대한 욕심. 진심이 엇갈리며 생겨나는 상처까지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일들을 마주하며 나는 희사하고 염송하고, 그저 인내하며 모든 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엄마의 업식과 내 업식이 함께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마다 하얀 꽃송이가 툭, 툭 떨어졌다. 마치 엄마의 업이, 그리고 내 업이 한 잎씩 내려앉는 것처럼. 

 

언제부터였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꽃은 시든 것이 아니라 제 시간을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엄마 또한 긴 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부처님 품 안으로 가시는 길 위에 계셨다는 것을. 그리고 남겨진 나는 떨어지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미워하고 원망하던 마음마저도 조금씩 내려놓는 수행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하얀 꽃송이에 덜어놓고,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도 내려놓은 채 그동안 함께 서원 정진해주신 정사님, 전수님 그리고 각자님 보살님들의 은혜와 고마움을 가슴에 품고 49일 회향일을 맞이했다.

 

마지막 저녁 불사를 마치고 엄마를 향한 마음으로 49일 동안의 기도와 함께한 화분을 내려놓았다. ‘엄마 감사했습니다. 편안히 잘 가세요.’ 인사를 하고 심인당을 나서려던 순간,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작은 참새 한 마리가 1층 법담실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각자님께서 조심스레 두 손으로 참새를 감싸안으셨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바깥 하늘로 날려 보내주셨다. 나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심인당 마당에 나와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포근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마당의 나무들은 유난히 싱그럽게 느껴졌다. 마치 긴 시간을 지나 엄마도 편안한 자리로 돌아가셨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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