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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 주고… 밀어 주고… ‘등반 우정’

편집부   
입력 : 2011-01-31  | 수정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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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VIYA 청소년 문화탐방

'설산' 한라산 오르며 친선활동 감동
'믿는형제 함께' 돈독한 신심도 다져 

백발이 성성한 '설산' 한라산(1,950m)에 순간 광풍이 엄습한다. 나무를 수놓았던 눈꽃이 분해되고 하얀 능선에서 눈가루가 흩날린다. 제주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곳에 전국에서 비로자나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사단법인 비로자나청소년협회(회장 덕정 정사)는 1월 17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 일대에서 '2011 VIYA 청소년 문화탐방'을 실시했다. 전국의 청소년 200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최근 새롭게 결성된 대구·경북지부와 경주·포항지부 회원들도 함께 해 소통과 화합의 시간을 가지며 의미를 더했다.

행사 셋째 날인 1월 19일 한라산 산행은 해발 750m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됐다. 예정된 코스 정복을 위해 일행을 태운 버스가 출발점인 성판악에 도착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강추위에 한라산은 이미 온통 눈 천지인데도 끊임없이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려운 일정이 예고됐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신발에 부착할 아이젠을 나눠주니 참가자들은 신기한 듯, 불편한 듯, 신발에 끼웠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코스는 성판악에서 진달래밭대피소까지 7.3km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처음에는 설렘과 긴장감으로 이야기꽃이 끊이지 않았다. 어둠에 몸을 숨긴 나목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이내 눈밭으로 변한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눈밭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음산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참가자들도 점점 말이 없어진다. 이내 참가자들의 이야기소리는 아득해지고, 아이젠 발톱이 눈에 박히는 소리와 등산복 옷깃이 스치는 소리에도 흠칫 놀라게 된다. 키보다 높이 쌓인 눈으로 길이 좁다. 한 줄로 2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늘어서서 설산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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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 참가자 연령은 참으로 다양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수학능력시험을 막 끝낸 예비대학생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참가자들은 한라산을 등반하며 모두 하나가 됐다. 착용이 어설픈 아이젠이 풀리면서 신발에서 떨어져 나가자 뒤따르던 일행이 얼른 주워 들고 챙겨준다. 이제 막 20살이 된 친구는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끌어준다.

성판악에서 출발한지 1시간 반쯤 지났을까. 3.5km 지점에 속밭이 나온다. 삼나무 숲이 울창하다. 삼나무에 하얀 눈이 얹혀져 눈꽃이 장관이나 이미 해발 1000m 고지에 올라선 참가자들은 배고픔과 오르막길의 고통을 참으며 끝없는 인내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것 또한 수행이다. 끝없는 오르막길, 정상은 존재하는 것일까. 진달래밭대피소까지 1.7km 남은 사라오름 입구부터는 고비다. 종아리에 경련이 일고 다리가 떨린다. 숨은 턱까지 차 올라 한 걸음 내딛고 멈춰서 쉬기를 반복한다. 혹시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산악구조대나 헬기가 와야 하는데 이 좁은 길에 올 수 있을까. 그래도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가야 구조되겠지. 이런저런 걱정에 무릎이 꺾일 것 같다는 생각니 들 때쯤 갑자기 하늘이 확 터진다. 앞서 가던 참가자들의 함성도 들린다. 진달래밭대피소다. 3시간 30분 가량의 기나긴 등반 끝에 도착했다.

최연소 참가자 중 한 명인 박소연 학생은 "엄마 때문에 억지로 왔는데, 오길 잘 한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올라오면서 힘들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며 파트너가 되어 자신을 이끌어준 같은 조 고등학생 오빠에게 고마워했다. 해발 1500m 지점에 위치한 진달래밭대피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먹는 김밥 한 줄과 컵라면이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白鹿潭)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정지용의 '백록담' 중에서)

겨울의 한라산 기상변화는 정지용 시인이 올랐던 여름 한라산보다 훨씬 변화무쌍했다. 쾌청하던 서귀포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든다. 어느새 구름이 한라산 해발 1500m 고지에서 운해를 만든다.

한번 뭉친 다리는 쉽게 풀리지 않지만, 다시 힘을 내 굽이굽이 내려오는 하산 길을 모든 등산객들이 한 줄로 내려가니 산행객들과 참가단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하산할 때는 좀 더 자유롭게 내려 가다보니 초등학생들은 눈밭에 뒹굴거나 털썩 주저앉아서는 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저녁은 '제주도 똥돼지'라는 말에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성판악에 다시 도착하자 종일 따라다니던 까마귀마저 날개를 접을 무렵이 됐다. 무거운 어깨 뒤로 붉게 물든 한라산이 아스라하다.

행사 마지막 날, 전 날의 한라산 등반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다. 전날 밤 게임벌칙으로 공항미션을 하는 친구들 때문이다. 삐삐머리를 한 조, 조폭으로 분장한 조, 고양이로 분장한 조 등 공항이용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은 미션을 수행했다. 그 중 가장 이목을 끈 팀은 단연 고양이 벌칙을 한 팀들이다. 정지심인당과 심지심인당 소속 회원들로 이뤄진 고양이 벌칙단은 여장 고양이부터 정동남 점 고양이 등 다양한 변신을 꾀하며 공항을 휩쓸고 분장한 채로 울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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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단순한 한라산 등반이 아닌 새로 출범한 각 지부들과 전국의 비로자나 청소년들이 소통과 화합의 시간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행사 진행자로 참가한 송연경 학생은 "비로자나청소년협회에 참가하면 심인당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자신의 신심도 커지는 것을 느낀다"며 "나보다 어린 자성동이들이 이런 행사에 많이 참여하여 심인당에 대해서도 더 알고 자신처럼 많은 것을 깨닫길 바란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이 하나가 되어 서로 끌고 밀어주며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수행이 아닐까. 그 들도 힘든 산행을 하며 많은 것을 얻고 생각하며 느꼈을 것이다.

제주도=김민지 기자 213minji@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