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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96호)

편집부   
입력 : 2013-02-18  | 수정 :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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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40주년 맞은 밀교신문


밀교신문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1973년인 진기 27년 1월 1일자로 창간된 밀교신문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4월 15일자로 지령 600호를 맞이하기도 한다. 제호가 진각종보에서 밀교신문으로 바뀌고, 간별도 월간지에서 격주간지로 전환됐을 뿐만 아니라 판형도 타블로이드(콤팩트)판과 타블로이드배판을 번갈아 오가면서 지금의 자리를 잡았던 밀교신문이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역사 속에서 밀교신문은 발행주체인 진각종의 소식을 대내외적으로 신속히 전하면서 종단사를 담아내는 언초사초(言草史草)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아울러 종단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 소통하는 창구의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본다. 밀교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제1대 발행인을 역임했던 진각성사 원정각 전 총인예하를 비롯해 수많은 편집인은 물론 임직원들의 노력과 열정, 정신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창간 40주년을 맞이한 밀교신문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 보다 역동적이고 진언행자를 비롯해 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기획물을 준비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다짐한다.

이번 호부터 신설되는 새로운 기획 '프라이드 진언행자'면은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밀교신문은 앞으로도 진언행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는 기획물을 중점적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더불어 새로 위촉하는 만다라 필자 세 분 외에도 생활의 활력소이자 삶의 감로수 같은 법문을 전해줄 역량 있는 필자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자 한다. 진언행자와 독자 여러분의 변함 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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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음보살좌상의 본귀환처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부석사에 봉안돼 있어야 마땅하다.

최근 절도범들에 의해 일본에서 반입됐다가 회수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논란의 중심은 본귀환처냐, 반환이냐는 문제다.

문화재청 등은 문화재보호법과 유네스코 조약, 외교문제 등을 들어 반환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민간단체와 불교계 등의 반환저지 목소리에 따라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조계종 제7교구본사 수덕사는 성명서를 내고 금동관음보살좌상 반환운동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면서 부석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신도회도 최근 '금동관세음보살님 제자리 모시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환수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추진위는 "일본 관음사가 소장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복장품 기록을 통해 이미 1330년 부석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금동관세음보살님이 본래의 자리인 부석사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불자들과 스님들, 그리고 서산지역민들이 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바란다"고 쐬기를 박았다. 여기에 조계종 총무원도 논평을 내고 진상파악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부당한 절차로 유출됐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동국대 문명대(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 소장) 명예교수는 최근 '서산문화춘추' 제8집에 발표한 글에서 "불상의 조성시기, 조성된 역사적 상황 등을 살펴 볼 때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약탈됐던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는 것이 순리요, 정도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문화재가 불자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기까지 한 성보라면 본귀환처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반드시 부석사로 되돌아 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