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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전사원 봉성사지 첫 확인

허미정 기자   
입력 : 2003-03-06  | 수정 : 200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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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박물관 명문뚜껑 판독 옛 경주교육청 일대로 지명 통일신라시대 8개의 성전사원 중 그 동안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었던 봉성사지가 처음으로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위덕대 박물관(관장 경정)은 2월 25일 '영태이년 봉성사 명'이 기록된 납석제 뚜껑 파편을 판독한 결과 봉성사지의 옛터가 경주시 인왕동 구 경주교육청 일대라고 밝혔다. 봉성사지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 납석제 뚜껑 파편은 박정호 신라문화진흥원 전문위원이 지난해 구 경주교육청 앞의 가로수를 뽑아 낸 자리에서 발견해 위덕대 박물관에 판독과 연구를 의뢰한 것이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명문 납석제 뚜껑 파편은 지름이 7.9㎝, 두께 2.1㎝, 높이 4.1㎝로 반 정도가 깨어져 나간 상태이며, 탑이나 불당에 봉안했던 사리호의 뚜껑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또 "판독된 명문은 고졸(古拙)한 해서체로 '영태이년(永泰, 二年) 칠월(七月) 일?(一?) △,‥‥‥북방(北方) 봉성(奉聖) 사야(寺也) (?)' 등 13글자인데, 원래는 26∼28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짐작되며, 영태이년(永泰二年)은 신라 혜공왕 2년으로 서기 766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봉성사는 신라 신문왕 5년(서기 685년)에 창건된 사찰로 성전(成典)이라는 관청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중요한 사원이었다. 성전사원은 왕실의 조상 숭배를 위한 원당(願堂)이자 국가가 불교를 통제하던 관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전이 있었던 사원은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황룡사 등 8개로, 이 중 사천왕사, 감은사, 영묘사, 황룡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원은 학계에서 이제까지 그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조선왕조시대 중종 25년(서기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봉성사는 부(府)의 동쪽 4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납석제 명문 뚜껑의 수습 지점과 일치한다고 밝힌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 유물은 8세기대의 금석문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하거니와 사지가 실전(失傳)된 성전사원의 위치를 찾아주어 불교사 및 신라 왕경(王京)과 관련한 역사지리연구에 결정적인 자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정 기자 hapum@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