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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상(無我相)이 해탈이다

편집부   
입력 : 2014-07-16  | 수정 :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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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초 진각종 총인예하 해탈절 법어

종교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종교가 인간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불교는 현실에 입각한 이상(理想)을 설합니다.

불설(佛說)은 현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토대로 이상을 성취하는 가르침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이상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각종은 현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수행의 하나로 해탈절 불공을 설합니다. 진각종은 715일 우란분절을 앞두고 행하는 불공을 해탈절 불공이라 부릅니다.

해탈절 불공에는 참회를 기본 수행으로 삼습니다. 지극한 참회를 통하여 이승과 저승의 모든 문제들이 해탈되게 하는 진호국가불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탈절 불공을 참회불공이라고 합니다. 인간생활에서 참회는 자기 개선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해탈절 불공은 근기에 따라서 100, 49, 3주간 또는 1주간 참회불공을 합니다. 금년에도 해탈절 불공을 원만하게 회향한 모든 진각행자들에게 큰 공덕이 충만하기를 서원합니다.

진각종에서 새해 49일 불공은 동안거 수행이고 해탈절 불공은 하안거 수행이 되며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수행 불공입니다. 특히 해탈절 불공은 자기 성찰과 참회의 수행을 하여 조상불(祖上佛)을 공양하고 중생의 은혜를 갚은 수행이 됩니다. 또 조상불공은 [볼시()변에 또차(), 다시 볼 분이기 때문에 받들어야 한다] 인간이든 종교든 조상을 잘 받드는 수행입니다. 중생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는 상()이 많습니다. 그리고 상이 많은 사람은 남 탓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남 탓에 돌립니다. 특히 사회의 문제와 자기의 불행을 남에게 미룹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의뢰적인 생각에 젖어서 자주적인 생활을 못합니다. 그러나 자주적인 정신이 두터운 사람은 나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립니다. 그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명법은 삼보와 하나가 되는 수행법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귀명(귀의)처에 불보살을 상징하는 모습을 모시는 방법과 그림을 만들어 모시는 방법과 불보살을 상징하는 보리수 연꽃 탑 인계 등으로 모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수한 문자나 명칭으로써 신행의 중심을 삼습니다. 불보살의 진언자(眞言字·종자(種字))나 명칭 등을 진리체험의 대상으로 합니다.

진각행자들은 불보살의 심인을 상징하여 담고 있는 진언을 진리체험의 중심으로 삼고 다른 표현모습은 보조로 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심인을 밝히는 불공을 기본으로 합니다. 지금 나라가 몹시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문제의 소재를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드러난 문제보다 보이지 않는 요인이 더 큽니다. 보이지 않는 요인이 언제 어디서 무슨 문제로 드러날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 수원심(讐怨心)입니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되갚으려는 마음이 온갖 화()의 근원입니다.

수원심을 다스리는 묘약은 참회와 은혜입니다. 은혜와 수원은 비례하여 은혜가 큰 만큼 수원도 깊어집니다. 따라서 수원이 깊은 곳에는 더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은혜를 잊어서 수원이 깊어진 사실을 참회해야 합니다. 참회하여 은혜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면 마음의 평화와 사회의 화합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우리 모두는 전세(前世), 금세(今世), 내세(來世)도 함께할 인연입니다. 너 탓부터 묻는데서 문제는 더 어려워집니다. 내 탓부터 참회하면 너 탓도 자연스럽게 참회하게 됩니다. 내 탓부터 참회하고 너 탓을 물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이제 모두가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는 말씀의 깊은 뜻을 다시 새겨야 합니다.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종교인은 종교인으로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국민은 국민으로서, 당사자는 당사자로서 내 탓부터 먼저 찾아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이처럼 지극한 참회로써 은혜를 깨닫는 진호국가불사를 하면 문제의 근원은 쉬이 발견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됩니다. 모두 나부터 나를 먼저 내려놓고[무아상(無我相)] 참회하여 해탈하는 사회를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