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3-23  | 수정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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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교의 연원과 법맥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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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교의 의미

진각종은 회당대종사(이하 ‘대종사’라 칭함)가 진각을 성취하여 창교한 불교종단이다. 대종사는 불법의 심수인 밀교정신을 자내증(自內證)하고 진각을 이루었다. 나아가 그 자내증의 교설을 종지로 삼아서 교법을 창립하고 진각종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진각종은 대종사의 자증교설을 시대에 맞는 교화이념과 방편으로 펴면서 널리 전하였다. 

 

즉, 진각종은 “불법의 심수인 밀교정신을 본지로 하고 밀교의 법맥을 심인으로 전수한 대종사의 자증교설을 종지로 삼아서 교법을 세우고 종문을 열어서 시대에 맞는 교화이념과 방편을 펴는 불교종단”이다.

진각종은 창교의 근본취지로서 밀교정신을 본지로 하고 있다. 대종사는 밀교의 가르침을 자내증하고 진각을 얻어서 진각종을 열었다. 그리고 진각종을 일으킨 사실을 창교라고 일컬었다. 창교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창교에서 ‘교’가 종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교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종사가 교화를 시작할 즈음 창교의 뜻은 종교의 의미에 무게를 두었으며, 전래의 불교를 마치 이교(異敎)처럼 혁신하여 교화하려는 뜻을 가졌다. 

 

불교의 정신을 내면에 지닌 새로운 종교를 세우는 창교의 의도를 가진 것이다. 그리고 자내증의 교설을 중심에 세우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방편으로 삼아서 새 종교를 세우려 한 것이다. 참회원이라는 명칭에는 그 뜻이 숨어 있었다.

대종사가 참회원을 세워서 교화를 하여도 불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불교 내에서 마치 이교처럼 성격이 분명한 종파를 열어서 교화하는 방안을 생각하였다. 불법이라는 보편성과 종파라는 특수성이 조화를 이루는 종파를 구상한 것이다. 불교 내에서 성격이 분명한 종파를 열어서 전문적인 교화를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불교에서 종파성이 분명한 종파가 많이 분화하면 종파간의 분열을 막고 상호반영하고 영향을 받아서 불교가 대발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화단체의 최초 명칭을 심인불교라고 하였다. 그러나 ‘심인불교’라는 명칭이 자칫 종파아(宗派我)적인 배타적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입장에서 ‘진각종’이라 개명하였다. 여기서 창교는 새로운 교법의 창립을 의미하게 된다. 진각종은 마치 이교와 같이 새로운 교법을 창립하여 세운 불교종파이다.


2) 교법의 보편성과 특수성

대종사는 교화 중에 불교의 전적(典籍)을 두루 섭렵하고 밀교의 교설이 바로 자신이 내증한 교설과 상응하는 사실을 체득하였다. 밀교의 전적에서 자내증의 교설과 상응하는 교설을 찾아서 교법의 보편성을 마련하여 전통 밀교의 교설을 보편적인 날줄로 하고 자내증의 교설을 특수한 씨줄로 삼아서 새로운 교법을 짜서 종파성이 분명한 진각종을 세운 것이었다.

 

따라서 진각종은 밀교의 교설을 보편적 본지로 하고 있는 점에서 밀교이다. 그러면서 대종사의 자내증의 교설에 따라서 특수한 교법을 세우고 있는 면에서 전통 밀교와 다른 점이 많았다. 따라서 진각종은 밀교라는 보편성과 자증교설이라는 특수성이 조화를 이루는 성격이 분명한 불교종파이다. 그리고 종지가 분명한 진각종의 교법을 전통 밀교와 구별하여 진각밀교라 부른다. 대종사는 ‘불교는 종지가 분명한 종파로서 분화하고 다시 불교라는 보편성으로 협동하면서 큰 발달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3) 법신 비로자나불과 당체설법

대종사는 “법계의 성은 하나이라”라고 설하고, 이어서 “비로나자부처님은 시방삼세 하나이라”라는 교설을 남겼다. 법계의 성, 즉 법성을 비로자나부처님으로 바꾸고 있다. 

이 말씀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아니하든 법성은 상주하다”는 경전의 교설과 맥을 같이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단지 상주하는 법, 즉 진리 그 자체를 깨달아서 붓다가 되었을 뿐이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출현과 관계없이 법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불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법을 법신, 또는 법신부처님이라 부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법 그 자체가 그대로 깨달음의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처럼 누구든 이법을 깨달아서 성불, 곧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불교는 법, 곧 진리는 오직 추상적인 개념이고 법신은 진리인 법의 보편적 총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추상성의 법신이 밀교에서는 현실세계에서 구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존재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진리는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현실세계 그 자체로서 활동하고 있고, 현실세계의 모든 현상은 본질적으로 법신이 구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밀교는 현실세계에서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법신을 비로자나불이라 일컫는다. 선무외 삼장은 비로자나불을 태양에 비견하여 대일여래라 번역하였다. 태양이 세상을 밝히고 뭇 생명을 양육하면서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처럼 비로자나불은 더 크게 세상을 밝히고 뭇 생명을 생성 양육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밀교의 눈으로 보면 비로자나불은 현실세계의 모든 존재를 생명내용으로 하고, 현실세계의 모든 현상은 비로자나불의 구체적인 활동 모습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시방삼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존재, 즉 전일(全一)의 생명존재이다. 전일의 생명존재인 비로자나부처님은 언제 어디서나 생명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시공에 걸림이 없는 비로자나부처님의 활동은 또한 그대로 세간을 향해서 설법하는 모습이다. 현실세계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비로자나부처님의 설법상이다. 

대종사는 “시방삼세 나타나는 일체 모든 사실들과 내가 체험하고 있는 좋고 나쁜 모든 일은 법신불의 당체로서 활동하는 설법이라”는 교설을 남긴다. 세간의 모든 일과사실이 설법이고, 이 설법이 진실로 활동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의 이러한 설법을 대종사는 당체설법이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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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강살타와 당체설법의 체험

대종사는 “체험이 곧 법문이다”라고 설한다. 세간의 모든 일과 사실이 곧 설법이고 경전이라도 이를 체험하면 의미가 있는 가르침인 법문이 되고, 체험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는 뜻이다. 법신불의 설법은 어디서나 항상 하고 있어도 누구든지 그 설법을 체험할 수 없다. 

용수보살은 “태양이 떠올라도 눈먼 자는 보지 못하고 천둥이 쳐도 귀먹은 자는 듣지 못하듯이, 법신불이 광명을 놓아 비추어도 중생이 우몽하여 보지도 듣지도 못 한다”고 일러준다. 그런데 밀교는 법신불의 설법을 체험할 수 있는 인물을 금강살타라고 일컫는다. 

 

대종사는 밀교경은 대일여래가 삼밀로써 설하여서 “오직 삼밀행자만이 이 법문을 본다”라고 설한다. 삼밀은 부처님의 행위 활동을 가리킨다. 부처님의 전인격적 행위인 몸·입·뜻의 활동은 아무나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세 가지 비밀한 활동, 즉 삼밀이라한다. 

법신불은 삼밀 활동으로써 늘 설법을 한다. 따라서 법신불의 설법을 체험하려면 법신불의 삼밀 활동과 상응하는 체험이 필요하다. 밀교는 법신불의 삼밀활동에 감응하여 소통하는 인물을 금강살타라고 부른다. 밀교경전에는 금강살타가 비로자나불의 당체설법을 듣는 대고중(對告衆)의 대표로서 세간에 전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금강살타는 비로자바불의 경지에 합일하고 상응하여 소통하는 인물이다. 중생이 어리석고 몽매함을 벗어나서 비로자나불과 상응하여 소통하면 누구든 금강살타가 될 수 있다. 금강살타는 특정의 인물이 아니라 법신불의 삼밀에 상응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금강살타의 금강은 영원불멸의 뜻이고, 살타는 살아 있는 존재, 중생을 가리킨다. 금강살타는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법신불의 삼밀에 상응하는 금강살타는 영원한 생명존재로서 법신불의 설법을 중생의 세간에 전한다.


5) 당체설법의 전수상승

밀교는 법신불의 비밀한 삼밀설법은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설법을 듣고 전하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법신불의 삼밀설법을 전하고 계승하는 사실을 부법(付法)이라 하고, 부법의 과정을 물이나 혈액이 흐르는 사실에 비견하여 법맥이라 한다. 법맥의 과정이 마치 사람의 몸에 혈액이 흐르는 것만큼 중요하기에 혈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법은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부촉하여 전하는 것이어서 부법상승, 또는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도구로 삼는다는 뜻에서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 부르기도 한다. 

 

밀교가 전파된 나라와 전통에 따라서 법맥상승도 많은 부류가 있다. 불공삼장은 밀교의 교법이 비로자나여래에서 시작하여 자신에 이르기까지 7조의 부법의 과정이었음을 열거하고 있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이 비로자나부처님에게 법을 받아서 금강살타에게 전하고, 금강살타에서 용맹보살→용지보살→금강지삼장→불공삼장으로 법맥이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곧 금강살타로서 비로자나부처님에게 법을 받은 것으로 보아서 6조의 상승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명랑이 용맹으로부터 법을 받은 9조라는 삼국유사의 내용이 있으나, 그 자세한 상승의 과정을 알 수 없다. 밀교의 종파로서 신인종과총지종이 고려를 거쳐서 조선시대의 세종 시기에 각기 교종과 선종에 통합되면서 법맥의 상승을 밝힐 수가 없다. 일본 진언종은 역사상 여러 법맥도의 전승을 밝히고 있다.

 

부법은 스승이 제자의 면전에서 법을 주고받는 사자상승이 기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서 사자상승의 부법의 과정을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 다만 종교적 교의상에서 사자상승의 법맥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종교적 수행의 체험으로 역사적 사실을 초월하는 경지를 증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법의 과정에는 법을 받는 제자의 법기가 가장 중요하다. 법을 받을 수 있는 법기를 갖춘 제자는 언제든지 스승의 법을 받을 수 있다. 사자상승은 스승과 제자가 법성의 경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는 오직 법을 증득한 경지로써 서로 감응하고 상응하는 것이다. 법성의 체험은 오직 자신의 마음 내에서 증득되는 자심내증의 경지이다. 스승과 제자가 자심내증의 경지를 교류하는 과정이 사자상승이다. 이처럼 자심내증의 경지를 주고받는 사실을 이심전심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맥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자심내증의 경지가 소통하고 흘러서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자상승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의발이나 관정의 의식을 통하여 징표로서 상징하기도 하였다.


6) 회당대종사의 심인상승

그런데 법성은 오로지 자심내증의 경지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다. 법성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자심으로 내증할 수 있다. 부법은 스승과 제자의 면전에서 뿐만 아니라, 법성의 자내증으로 할 수도 있다. 더욱이 스승과 제자의 면전은 자심내증의 경지가 만나고 상응하는 시점의 구체적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대종사는 “옛날에는 의발이요 이제는 심인법이라”고 설한다. 법성을 증득할 수 있는 경지의 청정한 본래 마음이 심인이다. 심인과 의발은 안과 밖의 관계이다. 심인을 통하여 사자상승하는 구체적 징표가 의발이다. 사자상승에서 심인의 소통은 본질이고 의발의 전수는 드러난 상징 형식이다. 의발의 전수가 없어도 부법은 이루어진다. 옛날에도 심인법이 근본이고 이제도 의발의 전수는 할 수 있다. 

회당대종사는 예나 이제나 심인법이 부법의 본질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형식은 내용의 그릇이고 내용은 형식의 본질이다. 그러나 형식에 치우치면 내용이 부실해 진다. 대종사는 전통 밀교의 교법을 심인으로 전수하고 자증교설을 널리 펴서 밀교를 중흥하려 하였다. 밀교의 교법을 자심으로 내증한 대종사는 금강살타의 경지에서 교법을 전수하여 세간에 널리 깨우치려 한 것이다.

 

대종사는 “자기의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 먼저 행하고 지비용을 세워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심인을 스승으로 삼고 밝혀서 지혜와 자비 그리고 용맹심을 일으켜서 생활하라는 말씀이다. 심인은 나의 특수한 입장에서 자성법신이고 법계는 보편적인 면에서 법계법신인 비로자나불이다. 부법에서 스승은 역사적 인물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승의 자내증의 경지가 되기도 하다. 금강살타가 비로자나불의 교법을 세간에 전수한 후 법맥을 상승한 스승들도 모두 금강살타의 경지에서 밀교의 교법을 사자상승하였다.

 

대종사는 수행정진을 통하여 금강살타의 경지를 터득하고 전통 밀교의 교법을 자내증으로 전수하여 진각의 교법을 창립하고 진각종을 세웠다.

진각종은 전통 밀교의 가르침을 대종사의 자내증의 교설로써 특수한 교법과 방편을 세워서 세간을 널리 일깨우고 있다.


경정 총인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