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과(因果)의 말씀

밀교신문   
입력 :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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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因) 지어서 과(果) 받음은 우주 만유 법칙이라. 좋은 인(因)을 지은 이는 좋은 과(果)를 받게 되고 나쁜 인을 지은 이는 나쁜 과를 받게 된다 ……. 모든 법은 인연(因緣)으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만약 인연 없게 되면 모든 법도 없느니라.”
 
사람들은 원인과 절차보다는 결과를 중시합니다. 이것은 한 몸으로 원인은 지난 과거요 절차는 현재의 행위요, 결과는 미래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각성존의 깨달음은 삼세의 인과입니다. 처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불공으로 금생인과(今生因果)를 깨달아 병이 완쾌되었습니다. 다시 숙세(夙世) 인과를 깨닫기 위해 정진하였습니다. 정진 중에 관세음보살은 현생의 소리를 관함으로 현생의 공덕은 얻을 수는 있지만, 숙세의 인과를 깨닫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삼세에 통할 수 있는 진언을 찾았습니다.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이 비로자나불의 본심이요, 제불보살의 본심이며, 일체중생의 본심으로 삼세를 다스리는 진언임을 아시고, 농림촌 별도의 수행처에서 육자진언을 관하는 정진에 들었습니다. 7·7일 동안 정진 끝에 삼세인과(三世因果)를 증득하여 육자진언이 지닌 불가사의하고 미묘한 공덕(功德)을 깨달았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중생과 동등하며, 불이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불임을 알려주기 위하여 삼라만상의 작용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삼라만상의 작용은 삼세인과로써 티끌만치도 어긋남이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흙에서 연꽃이 자라지만 연꽃에는 진흙이 없습니다. 부처의 세계에는 중생이 없어도 중생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부처가 있습니다. 불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만물과 시간을 공유하는 동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처는 왜 중생계에 머물까요? 중생은 동업을 버리고 별업(別業)을 지어 삼세를 윤회하는 길을 택하여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중생의 우둔함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화신의 몸으로 출현하여 인과 이치를 설하였던 것입니다.
 
중생이 되는 몸과 입과 생각의 삼업(三業)을 부처가 되는 삼밀(三密)로 바꾸도록 하였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믿음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지혜를, 욕심 많은 사람에게는 보시를, 성내는 사람에게는 인욕을, 게으름 사람에게는 부지런함을, 아픈 자에게는 묘약을, 고통받는 자에게는 해탈의 법을 설하였습니다.
 
설법의 중심은 인과 이치를 스스로 증득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마음을 모으면 깨달을 수 있는 법입니다. 상대와 조화를 이루고 만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법입니다. 중생은 어리석고 단순하므로 모든 기준점을 자신이 이롭고 유익한 쪽으로만 생각하여 상대와의 조화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나타나는 좋고 나쁜 현상에서는 인과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억울함과 불행이 나타날 때는 인과를 부정하며 불평과 원망의 잘못을 행하고 있습니다. 인과에 순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을 부정하고 인륜을 부정하고 세월을 부정하면서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기중심의 아집을 가진 고집불통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과 이치를 자기 편리할 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인은 믿지 않고 과만 믿기도 하고, 인은 믿고 과는 믿지 않기도 하며, 인도 과도 믿지 않기도 하고, 인도 과도 모두 믿기도 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인은 믿고 과는 믿지 않는 사람이요, 불평과 원망심이 많은 사람은 인은 믿지 않고 과만을 믿는 사람이며, 고집스럽고 집착이 강한 사람은 인도 과도 믿지 않는 사람이요, 지혜로운 자는 인과를 모두 믿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과는 상대성이며 평등한 법입니다. 나 혼자 지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와 함께 짓고 함께 받는 것입니다. 상대가 미워하고 질투하면 나 자신이 상대가 질투하도록 한 원인을 찾아 참회해야 합니다. 상대가 싫어하고 미워하며 질투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자신의 이익을 침범하거나 방해하거나 뺏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이러한 마음을 이해한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즐거움이 상대의 괴로움이 되고, 나의 잘함이 상대의 질투심을 유발하여 고통을 받게 한다면, 자신의 잘함은 진정한 잘함이 아니요, 자신의 영광 또한 진정한 영광이 아니므로 누구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비한 마음으로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고통받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과 말과 생각을 살피면서 상대가 좋아한다면, 손해를 보고 불편함이 있어도 양보하고 참으면서 희생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상대가 고통을 받을 때 자신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동업의 인과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참화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인과 이치를 깨닫는 것은 자기가 당하고 있는 것의 원인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타난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원인을 깨닫는 길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생활 중에 각하라.”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생활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정도 생활하는 사람이요, 깨달음이 어려운 사람은 바르지 못한 생활자입니다. 이 말씀에 덧붙여 “각(覺)보다도 체득(體得)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원인을 깨달은 연후에는 반드시 실천하여야 묘득(妙得)이 있다는 뜻입니다.
 
서원을 보면,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서원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이 있고, 모자라는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서원 정진 결과는 모자라는 원인, 없는 원인, 잘 안되는 원인, 장애 되는 원인, 고통의 원인이 먼저 나타나게 됩니다. 원인을 깨달은 다음, 고칠 것은 고치고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면 서원은 저절로 성취됩니다. 인과 이치를 깨닫고 실천한 공덕에는 일시적인 공덕과 영원한 공덕이 있습니다. 의뢰하고 기복으로 얻은 공덕은 일시적인 공덕으로 받은 뒤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지만, 자주적인 정법 수행의 공덕은 솟아나는 샘처럼 영원합니다.
 
자주적 정법 수행은 인연과 결과를 조정하기 위한 수행입니다. 인을 짓는 자는 곧 나 자신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지어 받는 것이지 남에게 의뢰하여 인을 지어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즉신 성불하기를 바란다면,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거나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주인인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없다면 돌 한 조각도 풀 한 포기도 없을 것입니다. 만물과 뭇 생명이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와서 준비하고 나를 맞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에 열(熱)이 필요하면 열을 만들고, 냉(冷)이 필요하면 냉을 만들면서 운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나를 위하여 정법을 남겼습니다. 선각자들도 나를 위해 먼저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내가 생활하는데 쉽고, 편리하고, 편안한 삶을 살도록 남겨놓았습니다.
 
내가 활동하기 좋도록 잘 꾸며진 무대입니다. 참으로 크나큰 은혜를 풀어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만이 것이 아닙니다. 동업으로 함께 인을 지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업은 부모요, 형제요, 부부요, 자녀이며, 이웃이요, 도반들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부처님의 정법을 만난 소중한 인연을 생각한다면, 세월을 어영부영 헛되이 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어리석게 부처의 본성인 자성의 잃고 무명에 가리어 고락이 상반하는 세상으로 떨어져 은혜도 모르고, 불평하고 불만을 일으키면서 게으름으로 수행하지 않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입니다.
 
황금의 본존과 노란 승복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순결과 평온과 평화의 뜻을 지닌 노란 법의를 걸친 것은 무엇에 대한 맹세였습니까? 내 모양을 보는 모든 이가 증오와 분노와 악한 마음이 사라지고 평화와 안온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함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 본분의 자리에서 너와 나의 경계를 풀고 인과 이치를 바르게 깨닫는 참 수행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여 영원히 윤회하지 해탈의 참맛을 볼 그날까지 바른 마음과 바른 언어와 바른 생각의 좋은 인을 짓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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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