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육바라밀(六波羅密)을 실천

밀교신문   
입력 : 2020-06-22  | 수정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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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결과 되는 육행 단시불공(檀施佛供) 정계불공(淨戒佛供) 안인불공(安忍佛供) 정진불공(精進佛供) 정려불공(靜廬佛供) 지혜불공(智慧佛供) 이 육행을 실천하여 저 안락에 이르도다.”

 
이 세상[법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ㆍ보살ㆍ천신ㆍ인간ㆍ 동물ㆍ식물의 마음은 본래 같습니다. 불보살이 자비를 지녔으면 중생들도 자비를 지니고 있고, 중생이 탐진치를 지녔으면, 불보살도 탐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탐진치를 지니고 있으면, 동식물도 탐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이 세계는 형성되지 않고, 생명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마음을 지녔으나 다르게 부르는 것은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며, 모양이 다른 것은 마음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며, 마음작용이 다른 것은 쓰임과 용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작용에서 부처는 부동의 자비심으로 존재하고, 보살은 유동의 자비심으로 존재하며, 성문과 연각은 자기의 안락만으로 존재하고 사람은 탐진치만의(貪瞋癡慢疑)와 오욕칠정(五欲七情)으로 존재하며, 축생은 우둔함으로 존재하고, 아귀는 식탐(食貪)으로 존재하며, 지옥은 고통으로 존재하고, 식물은 생존심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같은 물을 보고도 물고기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는 불꽃으로 보이고, 지옥은 뜨거운 쇳물로 보이고, 식물은 생명수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내 마음에 미루어 생각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는 형상이 없습니다. 마음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만 빛이요, 진리요, 보리요, 지혜라 이름하며 법신이라 부를 뿐입니다. 법신불이 중생을 위해 빛을 나눌 대리자로 보낸 분이 화신불과 보살들입니다. 법계의 국토는 부처를 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업무를 돕기도 하고 대신하기도 하는 분이 보살입니다.
 
현재 이곳은 석가모니불 세상입니다. 보살로는 보현·문수·관음·세지·준제 등 영원한 보살과 출가 보살로 지장보살이 있습니다. 출가 보살은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교화[下化衆生]를 목적으로 공덕을 쌓고 있습니다. 상구보리는 부처가 되는 방편을 보이신 것이며, 하화중생은 육바라밀을 수행하여 32상과 80종호를 쌓기 위한 자비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보시하는 모습, 범행의 모습, 인욕 하는 모습, 고행하는 모습, 선정의 모습, 슬기로운 모습을 실천을 보여 우리들로 하여금 중생의 여섯 가지 마음을 보살의 마음으로 바꾸는 법을 설하면서 불도를 닦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 마음을 지닌 중생이 조금만 노력하면 실천할 수 있는 법이 육바라밀입니다.
 
진각성존은 “세간사람 누구라도 아끼고 탐하는 마음이 있고, 악독한 마음이 있고, 성을 내는 마음이 있고, 게으른 마음이 있고, 어지러운 마음이 있고, 어리석은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은 영원한 마음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사라질 마음입니다. 비유하면, 땅속에 묻혀 있던 도자기와 같습니다. 물로 씻고 닦으면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도자기에 새겨진 문양은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으로 생긴 여섯 마음은 흙과 먼지와 같아서 닦아 없앨 수 있지만, 본래의 불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중생의 마음은 성불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주변은 나를 닮은 중생들이 모여듭니다. 자석에 쇠붙이가 붙듯이 모여듭니다.
 
욕심이 있으면 욕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시기 질투심이 많으면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성냄이 많으면 성 잘 내는 사람이 모이고, 게으르면 게으른 사람이 모이고, 마음이 산란하면 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모입니다. 여섯의 중생심을 육바라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아끼고 탐하는 마음은 베푸는 마음으로 다스리고, 악독한 마음은 청결한 마음으로 다스리며, 성내는 마음은 하심으로 다스리고, 게으른 마음은 부지런함으로 다스리고, 어지러운 마음은 고요한 마음으로 다스리고, 어리석은 마음은 슬기로운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자비 활동입니다.
 
육행 실천하는 방법은 쉽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번뇌를 버리는 것이 보시가 되고, 망심에 물들지 않음이 정계가 되고, 정법을 손상하지 않음이 인욕이 되고, 법의 상을 가지지 않음이 정진이 되고, 법에 집착하지 않음이 정려가 되고, 모든 희론을 여의는 것이 지혜가 됩니다.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주위에 좋은 기운이 모이기를 서원하면서 여섯 방향으로 예[육방예경(六方禮經)]를 하는 수행법도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단시바라밀’ 성취로 희사의 빛이 비치기를 서원함이요, 남쪽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정계바라밀’ 성취로 순수하고 맑은 빛이 비치기를 서원함이요, 서쪽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안인바라밀’ 성취로 인욕의 온화한 빛이 비치기를 서원함이요, 북쪽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정진바라밀’ 성취로 불퇴전의 빛이 비치기를 서원함이요, 땅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정려바라밀’ 성취로 화합의 빛이 비치기를 서원함이요, 하늘을 향하여 예를 하는 것은 ‘지혜바라밀’ 성취로 반야의 밝은 빛이 비치기를 서원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육방예’를 올리는 것이 새벽 염송정진입니다.
 
육행 실천은 의뢰하는 마음이 있으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의뢰하는 마음으로 육행을 행하면 일회성의 공덕을 얻게 되지만, 자주성으로 육행을 실천하면 그 공덕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육행 실천은 연결고리로 되어있어 여섯이 모두 모여야 완전한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보시 잘하는 사람은 계행도 잘 지키게 되고, 계행 잘 지키는 사람은 인욕도 잘하게 되고, 인욕 잘하는 사람은 정진도 잘하고, 정진 잘하는 사람은 선정에도 잘 들고, 선정에 잘 드는 사람은 지혜도 잘 일깨워서 쉽게 불과 상응하게 됩니다.
 
육바라밀은 어느 하나가 부족하여도 완전한 묘득을 얻지 못합니다. 부분적인 묘득은 육행 중에 하나만 행하여도 이루어집니다. 보시를 행하여 성불하는 자도 있고, 계행을 지켜 성불하는 자도 있고, 인욕을 행하여 성불하는 자도 있고, 정진만으로도 성불하는 자고 있고, 선정을 닦아 성불하는 자도 있고, 지혜를 닦아 성불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때의 성불은 응공으로 아라한 적인 성불입니다. 즉 여래 십호 중에 하나의 경지를 얻게 된 성불입니다.
 
밀교의 육행 실천, 진각승의 육행 실천은 응공이 되려는 수행이 아닙니다. 불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수행이며, 본래의 부처기 지닌 지혜를 일깨우기 위한 수행입니다. 이를 육행불공이라 합니다.
 
육행 불공은 환경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에 항상 자비롭고 맑고 순수하며, 온화하고 물러섬이 없이 용맹하며, 화합하고 슬기로운 밝은 빛이 감도는 공덕으로 비로자나불의 본마음을 일깨움을 말합니다. 본래의 지혜를 일깨운 연후에 진언으로 맹세를 합니다. ‘옴’의 청정성(자비), ‘마’의 진실성(정계), ‘니’의 유화성(인욕), ‘반’의 용맹성(정진), ‘메’의 안정성(선정), ‘훔’의 관찰성(지혜)을 원만하게 하겠다는 실천의 맹세입니다. 밝음이 나타나면 어두움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어둠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밝음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흡수된 어둠은 언제든지 밝음이 사라지면 다시 나타납니다.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밝음과 어둠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을 일으키면 나쁜 것은 자연히 물러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원칙입니다.
 
육행불공 중에 ‘단시불공’, ‘정계불공’, ‘인욕불공’은 상대를 위한 불공이요, ‘정진불공’, ‘정려불공’, ‘지혜불공’은 자신을 위한 불공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중생계는 자신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이타자리(利他自利)’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자가 법보시를 행하여 시은(施恩)을 갚음으로 육행 실천이 시작됩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육행 실천하면 그 공덕이 되고, 두 사람을 위하면 공덕이 10배가 되고, 세 사람을 위하면 공덕이 100배가 되고, 네 사람을 위하면 공덕이 천배가 되고, 다섯 사람을 위하면 공덕이 만 배가 되는 것입니다. 만 배의 공덕이 쌓인다는 증거는 초전법륜에서 5비구를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게 하였고, 중국에 전한 달마 선법이 5대에서 흥왕하였고, 진각 성존의 5인을 제도로 심인당을 개설하였고, 전국 교화법으로 5도 파견 불사를 하신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심의 수 5에서 상승의 첫수가 6입니다. 이제 육바라밀과 육도를 벗어나는 공덕을 쌓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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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