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24-법시(法施)와 재시(財施)

밀교신문   
입력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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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에 법시와 재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재시(財施)는 몸을 윤택하게 하고, 법시(法施)는 정신(精神)을 바르게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생활하면서 상부상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상부상조는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받을 때 대가성 없는 도움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상부상조는 불교의 자비희사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근원으로 하는 생활 실천입니다. 자무랑심(慈無量心)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끝없음을 뜻하며, 비무량심(悲無量心)은 모든 생명이 고통을 받을 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끝없음을 말하며, 희무량심(喜無量心)은 모든 생명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함이 끝없음을 말하며,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모든 생명에게 나누어주는 마음이 끝없음을 말합니다. 전자의 자비는 마음가짐이요, 후자의 희사는 행동의 실행을 말합니다. 자비심은 마음의 덕을 쌓는 보이지 않은 공덕이요, 희사심은 몸으로 실천의 덕을 쌓는 보이는 행위입니다.
 
희사심을 보시하는 마음이라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시는 재물을 베푼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시를 크게 둘로 나누어 마음으로 베푸는 보시와 물질을 베푸는 보시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으로 행하는 보시를 법시(法施)라 하고, 물질로 행하는 보시를 재시(財施)라 합니다. 이외에도 보시의 종류와 방법이 다양하게 많지만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 없어 이 장에서는 재시와 법시만 말하는 것입니다. 재시는 재가인이 주로 행하는 것이며 자리(自利)의 보시가 되고, 법시는 출가인이 주로 행하는 이타(利他)의 보시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하는 자비행입니다. 재시와 법시를 행할 때 유상(有相)의 보시가 있고 무상(無相)의 보시가 있습니다. 유상시는 일회성으로 공덕이 한계가 있으며 현생에 나타나고, 무상시는 공덕이 무한하며 삼세에 관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작함을 모르는 때부터 현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은혜를 입고 태어났습니다. 입은 은혜를 갚지 못하여 수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윤회하는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시은(施恩)을 갚아야 합니다. 시은을 갚는 법 중에 가장 좋은 법이 보은(報恩)의 보시행입니다. 현생의 복과 지혜를 얻기 위하여 행하는 보시는 대가를 바라는 유상의 보시입니다. 은혜 갚음의 보시는 대가성을 바라지 않는 무상의 법시가 됩니다. 그러므로 복과 명을 바라는 서원의 보시보다 보은의 보시를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나와 인연 있는 중생들이 다 함께 해탈하는 보은의 희사는 재시를 법시로 변화 바꿔면서 작복 희사도 되고, 해탈의 희사도 되며, 바라밀의 희사도 되는 것입니다.
 
재시를 법시로 바꾸는 보은의 희사로 일어나는 공덕의 유무를 살펴보면, 평소에 염송과 희사를 잘하지 않은 사람이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희사하고 염송하여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평소에 열심히 희사하고 염송하던 사람이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희사하고 염송하여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원이 있어 불공할 때도 서원성취가 되지 않는 경우, 몇 년을 열심히 불공하였는데도 해탈하지 못한 경우, 스승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불사에 동참하였는데도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평소에 불공을 열심히 하지 않은 자가 잠시 불공하여 공덕을 보는 경우, 희사는 하지 않고 염송만 하고도 생각대로 물질이 일어나는 경우, 염송은 하지 않고 희사만 하고도 어려운 일들이 사라지고 서원성취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시은을 갚는 보은의 희사와 보은의 염송에 있습니다.
 
수행자는 먼저 시은을 갚는 보은의 희사를 하여야 합니다. 시은이 있으면 깨달음도 서원성취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원을 위하여 용맹정진하고 정성으로 행한 보시의 공덕은 시은 갚는 것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산기슭의 물이 바다까지 흐르는 중에 얕은 곳을 메우면서 흘러갑니다. 물은 얕음이 있으면 피하지 않고 그곳을 수평으로 채운 연후에 넘쳐흐릅니다. 산기슭의 물이 많다 하여도 낮은 웅덩이가 그보다 더 많다면, 물은 바다까지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평평한 벌판으로 흐르는 물은 적은 양으로도 바다에 이를 것입니다. 보시와 염송도 이와 같습니다. 은혜 입고 갚지 않은 것은 웅덩이와 같습니다. 정진하고 희사하여 일어난 공덕이 시은 갚는 곳에 먼저 흘러들기 때문에 서원성취로 돌아갈 공덕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의 지중함과 시은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깨어있는 종교나 밝은 종교는 이 이치를 알기 때문에 4대 은혜를 가르치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먼저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각성존은 은혜 갚음을 쉽게 하는 참회법을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서원, 모든 정진, 모든 불공은 참회로 시작하고 참회로 회향하도록 하였습니다. 참회는 패인 허물의 웅덩이를 미리 메꾸는 불사입니다. 해탈의 바다까지 펼쳐진 수없이 많은 장애와 고통의 웅덩이를 미리 메꾼다면 적은 물로도 바다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가져온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잘못의 웅덩이를 평소에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희사하고 염송하고 참회하면서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중생의 몸을 법신으로 바꾸고, 재시를 법시로 바뀔 때 해탈의 몸과 해탈의 국토가 성취되어 구경에는 육도 윤회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재시가 법시로 바뀌는 비유가 있습니다.
 
걸인 부부를 해탈시키는 가섭존자의 이야기입니다. 집도 없어 어느 집 대문 밖 헛간에서 생활하는 거지 부부입니다. 가진 것은 담요 1장과 쪽박 하나뿐입니다. 한사람이 구걸나가면 남은 사람은 발가벗은 채 벽을 향해 앉아있어야 합니다. 거지 부부는 어느 날 밥을 얻지 못하고 쪽박에 쌀뜨물을 가져와 두 부부가 먹으려는 순간에 가섭존자는 헛간의 거적을 밀고 들어와 공양을 청하였습니다. 난색을 한 부부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양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부부는 송구한 마음으로 쌀뜨물을 보시하였습니다. 가섭은 즉석에서 쌀뜨물을 공양하고 18 변천을 보였습니다. 가섭존자는 다시 보시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부부는 18변천 하는 가섭존자를 보고 환희심이 생겨 하나뿐인 담요를 보시하였습니다. 부부는 금생을 포기한 보시였습니다. 가섭존자는 냄새나는 담요를 가사 위에 수하고 부처님회상에 갔습니다. 가섭이 지나갈 때 대중들이 코를 막고 피하는 것을 본 부처님은 가섭에게 물었습니다. 가섭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있던 국왕은 신하를 명하여 거지 부부를 궁으로 모셔다가 목욕시키고 평생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가섭존자에게 담요 한 장의 재시가 법시로 변하여 시은의 빚을 모두 갚아진 공덕담입니다.
 
시은에 관한 또 하나의 법이 있습니다. 탐욕심으로 베풀지 않은 응보로 받은 아귀는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면 불꽃으로 변합니다. 음식이 입에 닿으면 불꽃으로 변하는 것은 시은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아귀는 이러한 기회가 흔하지 않습니다. 뉘가 아귀에게 공양하겠습니까? 다만 청정 승가에서 발우공양 후 발우 씻은 물을 공양받을 뿐입니다. 이 공양물은 시은을 갚지 않아도 되는 공양물입니다. 그 이유는 발우 씻은 물은 처음 받은 물과 같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승가는 상주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아 시은을 입지 않은 청정수인 것입니다. 만일 발우 씻은 물에 부서진 밥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공양 자가 그 물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은을 갚을 기회가 온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보은의 희사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뺏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험담함이 있을 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은을 갚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원망하지 말고, 그를 위해 보은의 희사를 하고 잘되기를 서원해야 할 것입니다.
 
재시를 법시로 바꾸는 법이 진각성존의 삼종시 법입니다. 단시(檀施)는 부처님에 공양하여 법시로 전환하고, 경시(經施)는 법에 공양하여 법시로 전환하고, 제시(濟施)는 승에 공양하여 법시로 전환하게 하는 희사법입니다. 이 법을 실천하게 하고자 상주물로 생활하는 교화승에게 수입의 2/10를 희사하여 시은을 입지 않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서원의 희사를 하기 전에 시은을 갚는 보은의 희사법을 생활화하여 참회하고 정진하고 희사하면서 다시 한번 재시가 법시가 되는 희사법을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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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