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 26-척사입정(斥邪立正)

밀교신문   
입력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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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邪)는 물리치고 바른 것을 세우자. 사심(邪心)은 물리치고 정심(正心)을 세우자. 사도(邪道)는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세우자.”
 
척사입정(斥邪立正)과 사필귀정(事必歸正)은 다릅니다. 사필귀정은 모든 현실은 반드시 올바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며, 정적(靜的)인 진리를 중심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간섭도 판단도 상관없이 자연은 본래 자리인 정리(正理)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선을 상주고 악을 벌주는 과정에서 착한 사람이 비록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때 자연의 힘, 보이지 않는 진리의 힘이 반드시 도움을 준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선악구분을 가르치면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까지 가르치는 사필귀정의 법입니다.
 
척사입정(斥邪立正)은 불교의 용어로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바른 정신을 세운다는 동적(動的)인 것을 말합니다. 척사입정을 파사현정(破邪顯正=顯正破邪)이라고도 합니다. 두 용어는 사를 물리친다는 뜻은 같으나 활동의 방법은 다릅니다. 척사입정은 사(邪)를 배척하여 흔적조차 없이 쳐부수어 완전한 자리에서 정(正)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털끝만큼의 사(邪)도 용납하지 아니하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파사현정[顯正破邪]은 사(邪)를 변화시켜 정(正)으로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와 정을 하나로 보고 잠시 사에 물든 마음이나 행동을 정의로 돌아가도록 자비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척사입정이 외부로부터 일어나는 현실적인 법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파사현정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삿된 기운을 청정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밀교의 수행법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견물생심(見物生心)으로 삿됨에 쉽게 물들게 됩니다. 또 간사한 마음으로 조금만 틈이 생기면 나태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달콤한 말에 유혹당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도 어느 순간에 게으름이 일어나 편안함에 머물면서 힘이 드는 일을 만나면 쉽게 포기하며,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하여 긍정하는 마음보다 부정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중생의 마음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정(正)은 날개가 달린 듯 멀리 날아가고 그 자리에 삿된 마음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바른 행동, 바른 언어, 바른 마음인지를 살피고 챙겨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끝없이 연습하고, 학문하는 사람이 끝없이 익히며, 재주 부리는 사람이 반복적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사(邪)는 가만히 있어도 생겨나 주변을 점령합니다. 새로 지은 집에 사람이 살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아두면, 집안에는 먼지가 쌓이고 비치한 살림살이는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부패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리석고 욕심 많은 사람이 부지런한 이웃 사람이 시장에서 호미구입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호미를 구입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옆집 호미를 빌려서 쓰고 내 호미는 아껴야겠다. 그러면 닳지 않아 내년에 다시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지혜에 흐뭇해하였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호미를 사용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집 호미를 빌려서 사용하였습니다. 한해 농사일이 끝나 호미를 손보려고 헛간에 걸어둔 호미를 보는 순간 욕심쟁이는 그만 놀랬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호미가 녹 쓸어 있었습니다. 옆집 호미는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사용하기 좋게 되었는데 자신의 호미는 녹 쓸어 반쪽호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삿된 생각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삿되다는 것이 귀신을 섬기고 귀신에 비는 것만 생각합니다. 마음과 언어와 행동을 자신의 이익과 명예만을 생각하면, 이것이 삿된 행동이요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는 점점 어눌해지고, 행동은 점점 둔화하며, 마음은 점점 어두우면서 좁아질 것입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가 주역(周易=易經)입니다. 역(易)은 ‘바꾼다.’, ‘새롭게 한다.’ 하는 뜻으로 현재보다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이치를 알려주는 경입니다. 공자(孔子)도 주역을 소가죽 끈을 3번이나 바꾸면서 독송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흔히 주역은 점보는 책으로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만일 점보는 책이라면 공자는 그렇게까지 독송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역은 단순하게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점을 보는 경이 아닙니다. 자연의 운행 섭리를 알고 행하면 자연과 충돌하지 않고, 사람과 배은하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순리를 따라 성취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경입니다. 나와 남이 모두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의 좋은 지침서입니다. 봄이 되면 봄꽃이 피고, 여름이면 비가 오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면 눈이 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걸림 없고 장애 없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면서 혹 잘못된 생각이나 방법이 있으면 고치게 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면서 기다리는 법과 준비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내일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에 충실하면 내일은 자연히 뜻과 같이 이루어질 것인데, 동으로 서로 찾아다니면서 점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오늘의 게으름과 나태와 안일함으로 내일은 헐벗고 굶주림으로 밀려온다는 이치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을 바라며, 자기만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 하고,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간섭한다면, 얻고자 하는 것은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에게 배척까지 당하게 되어 가진 수명을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은 마음에서 쉽게 잊어버리고, 나쁜 일과 해침을 당한 일은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특히 원수 맺은 일은 두고두고 기억하여 후손에게까지 미루어주기도 합니다. 정(正)은 자연과 한 몸으로 영원하지만, 사(邪)는 일시적인 것으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변에 귀신의 접신으로 점을 보아주는 족집게란 별명까지 붙은 점쟁이가 있습니다. 족집게의 신력(神力)은 3~5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정도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것은 신도 세월의 나이를 먹고, 접신자도 유명세를 타면서 재물에 집착하여 용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다만 정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 못할 뿐입니다. 정도는 물맛과 같아서 항상 마셔도 거슬리지 않지만, 사도는 꿀맛과 같아 오래도록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솔깃한 말에 속지 말며, 달콤한 말에 유혹당하지 말고, 항상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언제나 정도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리심론’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노력하여 찾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주술(呪術)이나 약물로써 삶을 돕거나 그 어떤 힘이나 모양에 의지하여 찾으려는 것은 모두 사도(邪道)요 외도(外道)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성을 찾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아는 것이 최고라 착각하는 교만한 마음, 남의 잘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상대의 하는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업신여기는 마음, 요행을 바라고 횡재를 기다리는 마음, 지혜를 닦고 재주를 익히지 않는 우둔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사도입니다.
 
이러한 삿됨을 없애려면, 자연에서 사회에서 이웃에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심하고 겸양하면서 선지식을 찾아야 합니다. 길을 도(道)라 합니다. 하나의 길에서 정도와 사도와 외도의 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범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성인이 갔던 길[聖道], 부처님이 갔던 길[佛道], 진각성존이 갔던 길[正道], 선지식이 갔던 길[善道]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귀신을 숭상하지 않고, 타에 의뢰하지 않는 자주(自主)의 길이며 정도의 길입니다. 우리가 배척해야 할 길은 외도의 길이며, 사도의 길입니다. 생활의 외도, 인륜의 외도, 종지(宗旨)의 외도에 빠지지 않은 정도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정도의 길은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며, 입은 은혜를 갚고, 자성의 본래 지혜를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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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