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 29-생활취사

밀교신문   
입력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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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私私)로서 공중(公衆)일에 방해되게 하지 말며, 공중법(公衆法)을 어기고서 질서문란(秩序紊亂)하게 말며, 자기 의견 고집하여 윗사람에 대항 말고, 부귀인과 권력인에 간사(奸邪)하고 아첨(阿諂) 말며, 빈천인(貧賤人)과 아랫사람 거만(倨慢)하게 경만 말라.
 
진각(眞覺)의 진(眞)은 법신 비로자나불의 진실의 진이며 진언의 진이요, 각(覺)은 생활지중각(生活之中覺)을 뜻합니다. 즉 비로자나불의 진실법을 품은 진언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가르치는 종입니다. 중생 생활을 떠난 진언이 없으며, 생활을 벗어난 설법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불의 8만 장경의 말씀과 비로자나불의 당체설법이 모두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생활(生活)의 생(生)은 출생, 존재, 만들어짐을 뜻하며, 활(活)은 삶, 변화, 이어감을 뜻합니다. 태어났으면 살아야 하고,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만들어진 것은 이어가는 것입니다. 불(佛)은 무상하여 존재하지 않으므로 변화가 없지만, 중생은 유상으로 존재하므로 변화가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뭇 생명은 출생하여 존재하며 변화하고 이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누구도 이러한 생활을 벗어날 수는 없으며, 다만 어떻게 출생하고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변하는가가 다를 뿐입니다. 한평생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왕 인간으로 태어나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물건을 이용하면서 굳이 괴로움으로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출생과 존재와 변화로 이어지는 가운데 좋은 것보다 괴로움이 많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각이 있는 인간은 괴로움을 받고만 살 수 없습니다. 괴로움을 최소한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자성을 찾는 진언수행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출생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항상 상대가 있습니다. 태(胎)로 태어나면 부모가 있고, 알[卵]로 태어나도 어미가 있고, 습생(濕生)도 화생(化生)도 자연환경이라는 상대가 있습니다. 삶에도 자연과 시간과 인간이라는 상대가 있습니다. 상대로 인하여 출생하고, 상대와 더불어 살아가며, 상대의 관심 가운데 죽음을 맞이합니다. 윤회로 돌아갈 곳도 상대가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람쥐가 한번 쳇바퀴에 들어가면 달려도 달려도 쳇바퀴를 떠날 수 없듯이, 중생은 한번 출생하고 변화하면서 죽음으로 옮겨가되 윤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곳에는 천상처럼 즐거움만 있는 곳도 있고, 투쟁을 좋아하는 세상, 우둔한 세상, 굶주림의 세상, 고통만 받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이 사는 세상은 즐거움과 고통이 반반인 세상입니다. 반반씩인 세상에서 천상의 낙을 받는 사람이 있고, 시기 질투 욕망으로 투쟁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굶주림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고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흙에서 자란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피고 익으면서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의 은은함을 열매도 함께 누리면서 존재합니다. 이것은 인과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因)치고 자신이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법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수저, 흙수저의 출생도 자신의 인이요, 존비귀천도 자신의 인이요, 아름다움과 추한 변화도 자신의 인이요, 장단의 이어짐도 자신의 지은 인(因)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으면서 왜 즐거움을 만들지 않고 괴로움을 만들어 고통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렵다는데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고통받는다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이제 두 번 다시 괴로움의 인을 짓지 않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종류의 법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쉽게 접하는 법을 일상생활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좋으면 그대로 하면 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바꿔야 합니다. 중생계는 자신이 중심인듯하지만, 인을 짓는 것에 최대의 도움을 주는 자는 상대입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는 괴로움에 관하여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찾고 선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우둔하여 취사(取捨)하는 법을 모른다면 선지식을 찾아 가르침을 받으면 됩니다.
 
선지식 또한 상대입니다. 상대의 모습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취사(取捨)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상대가 괴로우면 나 또한 괴롭습니다.
 
진각 성존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마음 둔 것 먼저 알아, 내 마음에 미루어서 생각하여 볼지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사사(私私)로서 공중(公衆) 일에 방해(妨害)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상대도 좋아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상대방도 싫어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적은 일에 투쟁(鬪爭)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공중법(公衆法)을 어기고서 질서문란(秩序紊亂)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인욕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은 9년을 면벽하면서 혜가(慧可)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중국 선종의 발달이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자기 의견 고집하여 윗사람에 대항하지 않아야 합니다. 항상 은혜롭게 생각하면서 수순하는 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이듯이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그 속에 담긴 진의를 이해하고자 하여야 합니다. 넷째, 부귀인과 권력인에 간사(奸邪)하고 아첨(阿諂)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잘함을 자랑하며 특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쟁자를 험담(險談)하는 것과 노력하지 않고 기회만 보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째 빈천인(貧賤人)과 아랫사람을 거만(倨慢)하게 경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의 잘함과 부모 형제 자녀들을 자랑하면서 뽐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비로자나불로부터 화현한 부모요, 형제이며, 선지식이요, 도반이요, 동행자입니다.
 
이것이 생활화로 불국정토를 만드는 법입니다.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의 기본은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는 자비심과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마음가짐입니다. 평등함은 적을 만들지 않으며, 차별하지 않으며, 비겁하지 않으며, 모두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선한 일과 악한 일, 옳고 그릇됨,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할 일, 근본과 지말, 장점과 단점, 삿된 일과 바른 일, 길한 것과 흉한 것, 재앙과 복, 이익과 손해, 얻음과 잃음 등을 잘 살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살펴서 실천함이란 좋은 것은 가지고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나쁜 것을 모두 버린다면 생활할 수 없습니다. 나쁘고 재앙 되는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취사는 전화위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쁜 줄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약점과 좋은 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습관과 애착 때문입니다. 놀음하는 사람이 손을 자르니, 발로써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험악한 고통을 겪을 때는 충격으로 발심하여 중단하지만, 편안한 시절이 오면, 습관이 되살아나서 고통받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다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였는데 홀연히 어느 때였는지 모르지만 중생이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윤회하면서 익힌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고통은 계속되며 윤회도 계속될 것입니다.
 
8만 4천의 바꾸는 법 가운데 하나가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쉽게 바꿀 수 있는 몇 가지를 말하면, 외도에 잘 현혹되던 습관, 약한 자신의 힘을 보강하려 하지 않고 붕당(朋黨)을 만든 습관, 진리를 배반하고 현실을 선호하던 습관, 노력하지 않고 대가만 바라던 습관, 남의 이익과 자리를 탈취하던 습관,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던 습관, 횡재와 요행을 바라던 습관 등을 바꿔 비로자나불의 청정심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고 부처님 법도 만났으며, 특히 진언 수행법을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것을 만났을 때 바꾸지 않으면 어느 생에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진언 염송을 하면, 자신의 허물은 자신이 제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잘못 하나하나를 참회하면서 청정습관을 익혀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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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