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 31-해탈 방법

밀교신문   
입력 : 2021-01-25  | 수정 :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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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하려 하는 사람 마(魔)를 먼저 알 것이니 마(魔)는 생사 좋아하여 사람 지혜 잘 끊으며 착한 법을파괴하고 오욕락(五欲樂)에 탐착(貪着)한다.
 
해탈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머무르는 해탈과 벗어남의 해탈과 사라짐의 해탈입니다. 머무름의 해탈은 중생계 해탈이며, 벗어남의 해탈은 중생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함이요 사라짐의 해탈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감을 뜻합니다. 머무름의 해탈은 윤회하는 가운데 이루어짐을 말함이요 벗어남의 해탈은 중생계를 벗어나는 열반의 경지를 말하며, 사라짐의 해탈은 성불을 뜻하는 것으로 성불의 자리는 중생이 아닌 부처의 자리며 이때의 부처는 본래 없는 비로자나불을 말합니다.
 
중생은 본래 부처인 비로자나불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실지로는 요원한 일입니다. 윤회의 자리를 벗어나는 열반을 얻은 연후에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열반의 자리는 중생을 벗어난 자리이므로 이 자리 또한 돌아가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고락이 머무는 윤회에서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수라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인간으로 환생하기도 하면서 윤회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윤회를 하는 한, 장소가 바뀌고 형상만 다를 뿐 고락을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루살이의 하루나 나비의 일생이나 축생의 10년이나 인간의 100이나 천상의 천년이나 모두 잠시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긴 고통을 받으면서 끝없이 윤회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윤회하면서 천상에 태어나 즐거움도 누려보았고, 수라도에 머물면서 투쟁도 해 보았고, 축생에 머물면서 약육강식의 삶도 살아보았고, 아귀로 머물면서 굶주림의 고통도 겪었으며, 지옥에 떨어져서 쉼 없는 고통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부처님 정법을 만났습니다.
 
부처님은 왜? 천상이 아닌 사람 몸 받기가 어렵다 하였겠습니까? 인간계는 천상의 즐거움, 수라의 투쟁심, 축생의 우둔함, 아귀의 배고픔, 지옥의 괴로움이 모두 머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육도의 호오(好惡)와 고락(苦樂)과 진위(眞僞)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이 몸 이대로 윤회의 업보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벗어날 것을 기약하겠습니까? 특히 머무는 법과 벗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부처님의 정법을 만난 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인간의 업을 벗어나는 열반을 얻으려면, 먼저 사람으로서 잘 머무는 법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해탈 없이는 열반이 없고, 열반 없이는 성불이 없습니다. 비유하면 3층 누각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해탈은 1층과 같고, 열반은 2층과 같고, 성불은 3층 누각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열반이나 성불의 경지에는 고락이 없지만, 인간이 머무는 세상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존재합니다. 열은 열로써 다스리고 냉은 냉으로 다스려야 하듯이 고락이 있는 이곳이 고락에서 벗어나는 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락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열반을 얻지 못합니다. 즉 해탈 없이 열반의 문을 두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나는 깨달아 열반의 경지에 올랐다.’  ‘성불하였다’ 말하는 도인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괴로움을 말하거나, 분노한 마음으로 성을 내거나, 권력과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거나, 시기 질투로 남을 괴롭히거나, 이웃과 사회에 불편함을 준다면 이것은 거짓 깨달음으로 해탈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해탈법을 어떠한 괴로움도 없는 여여한 경지입니다. 혹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일체중생의 괴로움이 자신의 괴로움으로 생각하는 자비의 괴로움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8만 4천의 말씀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머무름을 잘하라는 해탈의 가르침입니다. 열반과 성불의 경지로 나아가는 방편법입니다. 그러므로 45년 설법 후 쿠시나가라에서 ‘나는 한 법도 설한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열반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열반도 성불도 아닌 해탈을 중심으로 설하였다는 뜻입니다.
 
사찰은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을 지나 부처님 세계로 들어갑니다. 해탈문은 중생계에서 불보살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계 해탈을 지나 열반의 모습으로 불전에 청정수를 올리고 향을 올리면서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의 오분향례를 올립니다. 이것이 인간계에 머물면서 정법의 삼학을 실천하여 잘 머무름의 해탈과 잘 머무름의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오른 보은의 듯이 담긴 귀명례입니다. 성불로 향하는 맹세의 귀명레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100년을 머무는 동안 천상,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고락을 모두 받으면서 머물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무름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이 싯다르타 태자의 32상과 80종호의 원만함입니다. 이제 우리도 해탈의 공덕을 쌓기 위하여 머무름을 잘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머무름을 잘하는 방법을 진각성존은 넉넉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화합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빈궁고(貧窮苦)와 병고(病苦)와 불화고(不和苦)에서 벗어나 복지구족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방법으로는 가난하게 머물지 않으려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고, 병고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계행이 청정하고 인욕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불화에 머물지 않으려면, 정진하는 마음과 고요한 마음과 화합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법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도록 인도하는 곳이 심인 도량입니다.
 
해탈의 심인 도량에는 신구의(身口意)의 삼밀의 수행문이 있습니다. 생과 사. 현실과 진리를 하나로 표현하는 일주문 지나는 것처럼, 중생과 불을 하나로 하는 금강지권의 신밀문(身密門)을 갖추게 함이요, 모든 장애를 절복시키는 천왕문을 지나는 것처럼, 지수화풍 4대의 육신병과 탐진치만의(貪瞋癡慢疑)의 마음병을 조복시키는 진언을 염송하는 구밀문(口密門)이 이룸이요. 중생과 불이 둘이 아닌 불이의 해탈문을 지나는 것처럼, 오불 관행의 의밀문(意密門)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삼문을 지나면 본전에 이르듯 삼밀문을 지나면 곧 법신 비로자나불의 금강법계궁에 이르러 자신이 곧 비로자나불의 진면목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언 수행으로 삼밀행을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넉넉함에 머물고, 건강함에 머물고, 평화함에 머물면서 가난과 병고와 불화에서 벗어나 복지구족한 해탈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얻고자 할 때 얻어지지 않는 서원불성취병입니다. 이 병이 짙으면 짙을수록 해탈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세운 서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화합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명예와 내가 화합하지 못하였고, 권력과 자신이 화합하지 못하였고, 건강과 화합하지 못하였고, 물질과 화합하지 못하여 가난이 생기고, 가난으로 인하여 욕심은 더욱더 많아지며, 욕심이 많으므로 서원 또한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불화에서 가난하고, 가난에서 병이 생기며, 병에서 뭇 고통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고통에 머물지 않으려면, 자신의 인과를 믿고 정법의 가르침을 받아 일체중생을 자기 몸과 같이 생각하는 베풂의 자비로 살아야 합니다.
 
싯다르타 태자의 32상은 보시행으로 이루어진 상이요, 80종호는 청정계를 실천으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3천위의는 인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8만세행은 정진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두 육바라밀을 근본으로 수행한 결과입니다. 첫째 베풂의 보시와 자신의 허물을 찾는 계행과 욕망에서 벗어나는 인욕과 몸에 대한 애착을 끊는 정진과 명예와 권세에 초연한 선정과 슬기로운 생활을 하는 겁입니다. 끝없이 축적하고자 하는 간탐심, 이로 인해 일어나는 성냄과 우둔함이 해탈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가장 큰 것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성내지 말며, 어리석지 않은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많은 수행자가 성불을 목적으로 수행정진 하지만, 진언행자는 해탈을 목적으로 염송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머무는 동안 잘 머물다 가야 할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출생게에 분명하게 밝힌 ‘중생을 괴로움에서 편안하게 하리라’는 말씀과 진각성존의 삼고해탈 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편안함이란 행복입니다. 행복은 괴로움이 없이 머무는 것입니다. 이제 자성을 찾는 참회염송을 하면서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잘 머무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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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