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2-16  | 수정 : 2021-02-16
+ -

5. 교법의 정비와 종조의 열반

1) 교법의 정비

(2) 교주 비로자나불과 본존 해인
대종사는 불교에 입문하여 농림촌에서 정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주로 불교의 경서를 주로 공부하였다. 그리고 농림촌에서 육자진언의 묘리를 체득한 이후는 다라니와 밀교경전의 공부에 관심을 쏟았다. 헌법제정의 과정에서 헌법의 기본구조를 이법(理法)으로써 신장(信章)과 행정체계로서 교정(敎政)의 이원을 세웠다. 그중에서 신장은 약리와 인법으로 나누고 각기 심인불교의 교리를 개괄하고 교화스승의 수행과 자격요건을 정리하였다.
 
그 후 밀교문헌이 많이 수집되어 이들을 섭렵하면서 밀교가 담고 있는 정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밀교의 비로자나불 사상과 현실긍정의 정신에 매우 큰 동감을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우주의 궁극적 원리의 표현으로서 ‘진리의 성(性)’, ‘하나부처님’, ‘도솔천부처님’, ‘법신부처님’, ‘(법계)진각님’ 등의 술어를 ‘비로자나불’로 통일하였다. 결국 대종사는 수행 정진을 통하여 밀교의 비로자나불[大日如來]의 묘리를 증오하고 이를 심인불교의 교리체계에 수용하였다(11,8.12). 비로자나불은 삼밀(三密) 활동을 하면서 오불(五佛)을 출현하여 만다라를 전개한다. 비로자나불의 오불 만다라 삼밀은 그대로 우주 법계의 체(體), 상(相), 용(用)의 존재 방식이다. 비로자나불의 체·상·용의 존재 방식을 일본 진언종의 공해(空海)는 각기 육대(六大), 사만(四曼), 삼밀(三密)로써 체계화하였다. 그리고 육대, 사만, 삼밀의 체계로써 비로자나불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당위성을 해명하였다. 그래서 대종사도 처음 비로자나불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해의 육대사만삼밀을 원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의 체·상·용은 우주법계의 당체로서 그대로 진실한 설법활동이다. 우주법계의 당체로서 비로자나불은 진실한 설법활동의 주체로서 교주(敎主)가 된다. 종단은 비로자나불을 교주로 세우고 밀교 교리에 입각하여 총지법장을 편찬하고, 응화(應化)의 자료로서 현교의 경론을 정선하여 응화성전을 편찬하였다. 대종사는 보리심론을 번역하는 중에 보리심 비로자나불 오불과 삼십칠존의 교설에서 깊이 증득하였다. 먼저 심인은 보리심이고 보리심은 비로자나불이며, 나아가 비로자나불은 오불과 삼십존으로 출현한다. 그리고 삼십칠존 등의 출현은 곧 비로자나불의 중생구제의 구체적인 활동으로서 만다라 세계를 전개한다. 그렇다면 부처와 중생의 심인으로서 육자진언은 비로자나불의 진언으로서 오불의 심인이다. 대종사는 이렇게 심인 보리심 비로자나불 오불 육자진언 등의 관계를 증득하고 육자심인은 각기 오불(삼십칠존)의 상징으로 배대하였다. 그리고 우선 하왕십리심인당(밀각심인당)에서 삼밀선정 중에 시험적으로 실시하였다(11,9.27). 즉 ‘옴’은 비로자나불, ‘마’는 아축불, ‘니’는 보생불, ‘반’은 아미타불, ‘메’는 불공성취불, ‘훔’은 금강제보살로 관행하는 삼밀수행을 체험하여 보았다.
 
나아가 육자진언에 오불오지(五佛五智) 십육대보살(十六大菩薩)을 배대하여 다섯 금선(金線)의 동심원의 사방에 표시하여 그것을 자기 몸의 사방에 관하는 자기관념도(自己觀念圖)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왕십리심인당 본존판의 육자진언에 대신하여 시험적으로 부착하였다(11,10.11). 그러나 자기관념도의 본존판의 게시는 시험으로 끝나고 삼밀선정에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자기관념도는 대종사가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다라니신주경’의 자기관음밀주관념도(自己觀音密呪觀念圖)에 기초하여 새롭게 개작한 수행도이다. 자기관념도는 자기 몸에 육자진언을 관념하는 수행도로서 후에 육자관념도라 개칭하였다. 그리고 자기관념도 대신에 삼십칠존 법만다라를 역시 하왕십리심인당 본존 해인판에 시험적으로 부착하였다(11,11.1). 금강계만다라의 삼십칠존 불보살의 명호를 한글로 써서 법만다라라 부르고 본존판에 부쳤다. 삼십칠존 법만다라를 본존해인으로 삼아서 귀명과 관념의 대상으로 수행한 결과 법문이 좋았다. 삼십칠존 법만다라를 대소 사종으로 인쇄할 계획을 하고 먼저 대형을 인쇄하여 규모가 큰 심인당에 일차로 발송하여 수행하게 하였다(11,11.25). 또한 남산동심인당의 삼십칠존만다라는 육자진언 중심의 만다라로 교체하여 본존해인을 구성하였다(15,1.11). 본존해인은 결국 자기관념도 대신에 육자진언 중심의 삼십칠존법만다라를 기본으로 구성하고 수행의 표상이 되었다.
 
그동안 본존해인의 내용은 교화의 진행에 따라 그때그때 중요한 교설을 교체 게시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처음은 육자진언을 중심으로 십악참회 은혜경 등의 해인을 세로쓰기로 게시하였다. 그다음 가로쓰기로 중요한 교설과 함께 육자진언을 상단 혹은 중단에 배치하여 구성하였다. 또한, 경과 해인을 세로쓰기로 하면서(11,8.13) 육자진언은 중앙에 배치되었다. 본존 해인은 자기관념도의 시험적 실시를 지나서 다시 육자진언 중심의 삼십칠존 법만다라 형태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태장계법을 함께 쓰려는 뜻에서 심인당에 불상을 안치하고 건축양식도 현교사찰의 양식에 준하기로 결의하였다(14,6.20). 불상을 봉안하는 계획은 법문이 좋지 않고 심인불교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금태불이(金胎不二)의 의미를 부여하여 다시 금강계 삼십칠존 법만다라의 봉안(奉仰)하기로 하였다(17,3.15). 마지막으로 참회문이 본존 해인에 추가되면서 육자진언 중심의 삼십칠존을 기본으로 본존 해인이 구성이 되었다. 따라서 본존 해인은 신행 대상으로서 본존과 수행 실천에서 중심교설의 역할을 하였다.
 
(3) 삼밀 정송법과 수행방편
비로자나불이 교주로서 신행과 수행에서 심인불교의 종교 이상(理想)으로 정해지면서 삼밀선정법을 실시하였다(11,9.8). 법난이 2년여 동안 진행되면서 교화와 수행에서 무언법을 실시하기도 하였다(10,6.8). 무언법은 불공 중에 설법이나 말을 하지 않고 수행하는 법이다. 무언법의 실시는 마음을 모아서 선정에 들고 깨닫기 위한 실천행이지만 설법의 내용이나 교리의 설명 등에서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교주 비로자나불의 교리에 상응하는 수행법과 불공의식도 경론에 근거하여 정비하였다. 이에 따라서 대종사가 주석하는 하왕십리심인당에서 법계정인(法界定印)의 삼밀선정법을 시험적으로 실시하였다.
 
삼밀수행에서 법계정인은 교주 비로자나불의 교리에 맞지 않아서 다시 비로자나불의 금강지권(金剛智拳)으로 바꾸고 김헌덕, 송두남이 상경하여 일 주간 강공을 받았다(11,11.20). 그리하여 유가삼밀 중에 인계를 경험하여 본 결과 비로자나불의 금강지권법이 최승하여 보리가 속히 일어나고 마장을 항복 받는 법이므로 금강지권을 전국에 실시하였다. 금강지권법을 새해불공 때 신교도에게 자세히 일깨우도록 하였다(12,2.12).
 
또한 삼밀선정의 자세한 내용과 금강지권의 결인법을 정하여 고지하였다(12,2.19). 신밀은 인계(금강지권)를 결하고, 구밀은 진언(육자진언)을 염송하고, 의밀은 관(觀)하는 수행법을 세워서 실천하였다. 의밀은 지권(눈을 뜰때)과 오불(눈을 감을 때)을 관상하는 법으로 하였다. 삼밀선정에서 반눈을 뜨고 코끝을 보면서 지권의 상단부분을 관상하고, 눈을 감고 자기 몸의 만다라 오불을 관하였다. 자기 몸의 오불을 관하는 법은 자기관념도의 오불(육자진언)을 자기 몸에 가지(加持)하고, 그 오불(육자진언)을 관하는 수행이었다. 그리고 자기관념도의 오불(육자진언)을 자기 몸에 가지 하는 법은 대종사가 ‘육자대명왕다라니신주경’의 자기관음밀주관념설을 빌려서 쉽게 설명하였다.
 
“선정을 시작할 때마다 오른손으로 배꼽을 짚으며 입속으로 비로자나불을 부르고, 왼편을 짚으며 아축불을 부르고, 명문을 짚으며 보생불을 부르고, 오른편을 짚으며 아미타불을 부르고, 단전을 짚으며 불공성취불을 부른 다음에 결인하고 선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자기 몸에 오불이 관념적으로 항상 있게 되는 것입니다(12,2.19)”라고 고지하였다.
 
그다음 ‘금강정유가약출염송경’의 음성염송 금강염송 삼마지염송 진실염송의 사종염송법을 수용하여 삼밀수행법을 세웠다(12,11.17). 그러나 삼밀수행의 구체적인 행법은 교화와 시대의 환경에 따라서 변화하였다. 금강지권과 더불어 금강권법을 수용하였다. 삼밀수행의 정진을 매일 일정 시간 정하여서 하였다. 스승은 매일 금강지권을 1시간 30분, 금강권은 2시간을 정하였다. 신교도는 낮에는 금강지권을 폐지하고 아침에만 하며 공식불사와 기타 시간은 금강권으로 정하였다(14,12.11). 그러나 자성일 오후는 자유로이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삼밀정진하는 정송법(定誦法)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매일 일정한 금액을 희사하는 정시법(定施法)도 실시하였다. 정송법은 하루 1만 송을 시작한 후(6,2.7) 삼밀선정으로 바꾸었다. 정송법은 지혜를 밝히는 행법이고 정시법은 자비를 일으키는 행법이다.
 
삼밀정진의 수행법이 시행되고 여러 가지 법문을 통하여 스승은 신조(晨朝)에 2시간 금강지권으로 정진하고 공식불사에는 처음 금강지권, 다음은 금강권으로 정진하였다. 교도는 자기의 정진시간의 3분의 2를 금강지권으로 정진하기로 하였다(15,10.9). 그리고 스승의 정송시간은 매일 금강지권으로 3시간 정진, 자성일은 3시간 30분, 공식불사는 매회 10분, 그리고 사분정진(四分精進)은 4시간 30분으로 정하였다(15,11.2). 나아가 사부대중법을 제정하여 출가 스승은 금강지권, 재가보살과 신교도는 금강권으로 정하였다(16,9.3). 그러나 사부대중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문이 좋지 않아서 스승은 새벽에 지권으로 1시간 30분, 교도는 자기가 정한 정송시간의 3분의 1을 지권으로 정진하기로 변경하였다(16,10.30). 이때 신교도의 경우 금강지권 정송시간에 따라서 행계를 정하였다. 결연(結緣) 교도는 5분에서 15분, 수습(修習) 교도는 15분에서 25분, 수계교도는 30분에서 40분, 수기(授記) 교도는 50분에서 1시간, 인도(引導) 교도는 1시간 반으로 정하였다. 교도행계 조건은 정송시간 뿐만 아니라 희사 등 다른 신행 실천사항도 정하였다. 삼밀 정진에는 졸음이 가장 큰 문제가 되어서 꿇어앉아서 정진하는 등 시험적으로 방편도 실시하였다. 그래도 정진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아서 다시 삼밀정진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였다(17,3.27). “공식시간은 지권으로 매회 15분, 아이를 돌보는 분은 자유 선택하고, 금강지권으로 하여도 중간에 깨어도 무방, 신입 교도는 자유선택, 구교도 역시 자유선택, 새벽정송은 정사는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전수는 1시간 반 내지 2시간, 나머지 시간은 금강권(꿇어앉아서), 무시항송은 금강권, 시간정진 및 7시간 정진은 지권, 월초불공에는 지권을 배(倍)로 한다.”
 
이렇게 삼밀선정법은 교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변화를 겪으면서 정착하였다. 그중에서 정송법과 정시법은 차시법과 항송법과 더불어 독특한 수행법이 되었다. 그리고 효과적인 삼밀선정을 위한 방편도 시험적인 과정을 겪었다.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삼밀선정을 하기 위한 우담화 방편을 폐지하고 수마를 끊기 위한 방편도 도입하였다(16,10.12). 공식불사 중에 금강권으로 졸면서 정진하면 요령을 흔들어서 꿇어앉아 정진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금강지권 실시를 하면서 자동으로 폐지하였다(17,3.27).
 
또한 가정에 고통이 많고 서원이 큰 교도들에게 월요일부터 일 주간 해탈과 소재 도량을 설치하여 정진하게 하였다(13,3.29). 공식불사에서 신교도의 서원을 스승이 기록하여 발표하는 인도기(引導記)를 서울과 남산동 심인당에서 실시하였으나(15,8.29) 특별한 효과가 없어서 폐지하였다(16,4.1). 인도기법은 다시 강도부법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대종사(도정(道正))가 모든 일을 가부(可否) 두 개의 죽편(竹片)을 던져서 가(可)를 결정하는 취증법(取證法)을 실시하려 했지만(16,11.28) 교리에 맞지 않아서 폐지하고 가부결정은 시간정진 또는 불공을 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17,4.8).
 
그리고 일 주간 정진에는 육식을 금하는 법을 세우고(16,9.3), 신교도가 조상불을 모시는 방안에 대해 요구가 많아서 일부 심인당에 조상불의 위패를 모시는 영식불단(靈識佛壇)의 설치 계획을 추진하다가(16,12.20) 금강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하였다(17,4.10). 나아가 가정에 성심불단(誠心佛壇)을 설치하여 신심을 북돋우기 위하여 스승이 공통 법문을 보았으나 불가로 결정되었다(18,2.19). 반면에 같이 실시한 신교도의 다섯 가정 제도는 좋아서 가결되었다. 교화방편은 교화의 효율적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착되었다. 한동안 중단되었던 월초심공은 다시 실시하였다가(11,11.5) 또다시 폐지되고 불공 중의 희사는 매일하는 정시로 실행되었다(14,12.11). 그러나 월초심공의 묘덕이 큰 것을 감안하여 재실시하여 월초불공으로 정착되었다(15,10.16). 공식불사 진행도 삼밀선정(15분)→경 낭독(설법)→삼밀선정→경 낭독(설법)→참회(둘째 시간도 반복)의 순서로 정해졌다(12,2.9). 그리고 불공 내용이 늘어나서 교리참회→게송낭독(오대서원 등)→오불 혹은 삼십칠존 낭독(삼십칠존 중에 자유선택)→진언낭독(2번)→삼밀행(오불짚고)→독송(스승 자유선택, 선후창)→낭독(스승 외워둔 것 중 자유선택)→진언낭독(2번)→삼밀행(오불 짚고)→낭독(외워둔 것 중 자유선택)→참회(2절, 둘째 시간 3절)의 순서로 진행하였다(15,12.18). 불사 순서에서 보듯이 이즈음에 참회문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불공하는 방안도 시험적으로 실시하였다. 삼밀선정의 관행요법(觀行要法)의 실시를 위한 강공을 개최하였다(14,12.29). 관행요법은 삼밀선정에 따른 여러 불공정진법을 말한다. 이즈음 귀명불공과 독송불공법이 불공의 큰 관심사였다. 귀명불공은 달리 사분정진이라 하는데 하루 동안 네 번에 걸쳐 삼밀선정을 집중적으로 하는 불공이다. 월초불공 중에서 2월 5월 8월 11월의 월초불공은 귀명불공으로 하였다. 그 외의 월초불공은 독송불공으로 하였다(15,12.18). 그래서 임시강공을 열어서 미리 귀명불공과 독송불공을 결정하고 그 의의를 이해하고 인식시키는 공부를 하였다(15,11.30).
 
이어서 독송불공의 공식시간 진행 절차를 습득하려는 강공을 하고(15,12.11), 또다시 독송불공과 공식시간 진행법, 그리고 불공 중 마장 막는 법에 대하여 강공하였다(16,1.18). 이때 교화 방면에 대한 논의가 있어서 서남(西南)의 교화는 잘 되고 동북(東北)의 교화는 잘 안 되는 사실을 실증으로 들어서 인식시켰다. 서남법은 강공에서 다시 논의하여(16,11.29) 대종사의 유교에 이어서 심인당 구조와 신설의 공식법으로 정하였다(18,3.23). 그런데 독송불공은 공식불사 중에 해인을 낭독하는 것으로 대체하여 폐지하고 불사 중 삼밀선정을 10분에서 15분으로 변경하였다(16,3.30). 그리고 1월 월초심공과 신년 서원강도를 겸하여 시행하였지만(9,1.3) 1월 초순에 실시하던 새해서원 강도를 입춘 이후로 실시하기도 하였다(12,2.19). 매년 인회에서 새해서원강도 날짜를 정하여 통지하다가 양력으로 1월초불공을 하기로 정착하였다(16,3.30).

4면-자료사진.jpg

-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