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심인당 동아리 활동으로 기획한 역사 문학기행의 첫 번째 장소로 진주성 일원과 사천 다솔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진주 남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육천팔백 명의 적은 군사로 삼만 명의 왜군을 물리쳤던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장소이며 39살의 나이로 적군과 싸우다 순국하신 충무공 김시민 장군과 나라를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를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왔지만, 진주성에 도착하여 임진왜란 박물관으로 특화된 진주성 박물관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교도분들과 함께 ‘승자총통’을 들고 왜군을 물리치는 3D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그 당시 사용했던 무기들. 사회상 등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지만, 김시민 장군도 공이 크기에 충무공으로 추서된 것이다.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김시민 장군과 논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뿐 아니라 수많은 승병들과 이름 모를 의병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종조님께서는 사대은혜를 이야기하면서 특히 국가의 은혜에 대해서도 강조하셨다. 각 심인당 앞에 ‘진호국가불사’라고 해 놓은 것도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씩 교도분들과 함께 불사를 볼 때 우리는 이렇게 매일 나라를 위한 ‘진호국가불사’를 하고 있으니 ‘자랑스러워하셔도 된다’라고 설법을 하기도 했다.
‘진각교전 실행론 184쪽’ “(나) 국민이 된 의무로서 나라일을 도울지니 내가 사는 이 나라에 큰 은혜를 모르는데 어찌 모든 천왕들이 나를 도와주겠으며” 라는 내용과 ‘405쪽 제3절 불법과 국가’ “(가) 국법을 실천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길의 하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법을 실천하며 온 국민이 실천하게 된다. 이 것이 곧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길이다. 나 혼자만이 아무리 잘살아도 나라가 없으며 무슨 재산이 필요하겠는가. 백성이 다 잘되고 나라가 부강해야 나도 존재할 수 있다. 종교는 주초(柱礎)가 되고 군사는 담장이 된다. 국가에 충성하고 가정에 효순하면 내가 효순하면 내가 유익하게 된다.”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더 국가에 대한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과 은혜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천 다솔사 역시도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등신불’을 작업한 곳이기도 하며 만해 한용운 스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던 곳이기도 하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3.1운동 때 우리 민족의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한 명으로, 본인이 말년에 거처하셨던 ‘심우장’을 총독부 반대 방향으로 하려다 보니 북향집이 되었을 정도로 애국정신이 투철한 분이셨지만 끝내 조국의 광복을 못 보고 열반하셨다. 6월은 호국의 달이다. 6.25전쟁이 일어난지도 벌써 74년이 되어간다. 분명 우리나라는 종전국이 아니고 현재 휴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이 일어나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군번도 없이 조국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간 우리의 영웅들을 잊지 말자. 지구상에서 그리 크지 않은 반도국가인 이 나라에서 우리가 예전의 가난과 역경을 딛고 수많은 강대국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지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국가가 IMF(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을 받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여 그 위기도 최대한 빨리 극복해 냈던 지혜로움과 강인함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강도부에 ‘사대은혜 보답하며’라고 하듯이 실생활에서도 국가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가지고 국민의 의무를 실천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호국가불사의 진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상광원 전수/보광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