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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요?

밀교신문   
입력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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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들이 있다. 일에 미친 사람들. 일을 처리하는 시간보다 일이 쌓이는 시간이 더 빠른 이곳. 북미 글로벌 사업을 담당하다 보면 미국 시차 때문에 핸드폰은 새벽과 주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신기한 점은 팀원들 모두 지치는 법을 망각했는지 열렬하게 전의를 불태우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어디서 에너지를 충전하는지 살펴보니 업무 시간엔 일하고, 쉬는 시간엔 웹툰을 본다. 밥을 먹으면서, 퇴근하면서 웹툰을 보고 자기 전에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웹툰을 본다. 누군가는 경악할 테지만, 나 역시 일과 휴식이 웹툰 보는 일이니 일하면서도 쉬는 셈이다.
 
네이버 웹툰 지원조건은 최소 3~5년의 경력자 채용 공고였고, 난 이제 막 신입티를 벗은 경력자에 불과했다. 이력서에 내세울 경력은 2년이 채 안되었지만,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10년 이상 지독하게 웹툰을 본 게 내 경력이자 숨은 무기였다. 서류 지원은 웹툰 시장을 분석할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한 주제로 인적성과 자기소개서를 대신했다. 이력서에 적힌 0년의 경력보다 꾸준한 덕질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서류 합격 후, 면접을 준비했다. 내세울 점이라고는 웹툰에 중독되었다는 것뿐이라 ‘나’라는 사람을 부풀리기보다 ‘웹툰에 대한 애정’을 꾸밈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웹툰을 홍보하는 프로젝트를 몇 가지 구상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 동안 11포인트로 A4 3장짜리 기획서를 만들어 갔다. 꼭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읽고 진행해서 서비스 성장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면접 지원자가 아니라 웹툰 서비스를 오랜 시간 이용한 독자로서 개선했으면 하는 점들을 빼곡히 적었다. 훌륭한 작품을 발굴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면접에 붙길 바라는 욕심보다 컸다. “경력직에 지원한 거 치고는 경력이 없네요?”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경력은 없어도 경험은 많다!”라고 당차게 말하고 1차 면접에 합격했다. 최종 면접은 긴장감이 오히려 덜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인사말에 “웹툰 보느라 금방 시간 가던 걸요”라는 대답으로 첫 분위기가 밝아져서 그랬던 걸까. 좋아하는 웹툰 5개를 말하라는 질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보던 웹툰을 얘기하자 “그 작품도 알아요?”라며 놀라움을 표했고 흥미진진하게 웹툰 얘기로 마무리했다. 최종 면접을 마치고 나올 땐, 오랜 시간 짝사랑하던 대상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 온 후련한 느낌이었다.
 
네이버 웹툰 입사 후, 배울 점이 참 많지만 가장 놀랐던 건 팀원 대부분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점이다. 언어는 처음 배우는 것보다 실력을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 사용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감이 훅 떨어지기 때문인데 시간이 흘러도 실력이 녹슬지 않은 비법이 뭘까 궁금했는데 해답은 만화책이었다. 이처럼 웹툰도 마블 작품이나, 원피스, 슬램덩크 만화책처럼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컨텐츠다. 그래서일까 퇴근할 때 작가님한테 전화가 오면 연예인 목소리를 들은 것 마냥 설레고, 회식 자리에서 서로 마음껏 웹툰을 추천하는 시간이 참 유익하고 좋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웹툰 서비스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 내일 출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양유진/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