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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경계

밀교신문   
입력 :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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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대왕 세종이라는 대하드라마가 있었다. 왕자인 충녕이 왕의 재목으로 성장하던 시절이다. 정인지, 최만리 등 성균관의 젊은 유생들이 이 나라엔 아무 희망이 없다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성의 권리를 확장하는 정책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충녕이 나타나, 실망하고 절망하는 거라면 그대들보다 내가 전배(선배)라고 너스레를 떨며 절망이라는 건 말이지요, 있는 힘껏 꿈을 위해 뛰었는데 그래서 이제 더는 남은 힘도 없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기만 할 때 그 때야 비로소 절망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에겐 좀 더 부서지고 깨질 힘이 남아 있다고 보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냐고 진지하게 되묻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경계를 짓는다. 이건 잘못됐고 저건 절망할 일이라고 규정을 한다. 그렇게 경계선을 서둘러 그어 버리면 편리한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생각의 길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충녕의 절망론도 젊은 유생들에게 절망의 제한된잘못된 경계지점을 일깨우며 다시 함께 도전해보자는 새로운 경계점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경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서의 경계와 넘어서고 개척해야할 경계가 있다.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순환하기도 한다.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프릭랜드는 그림에 미쳐 가정을 버리고 타이티 섬에서 그림을 그리다 일생을 마친다. 소설 빅 피쳐의 주인공 벤은 변호사이지만 극단적 선택 끝에 어릴 적 꿈인 사진작가로 변신한다.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두 주인공 모두 극악한 지점이 있지만 자신의 세계를 위해 어떤 경계와도 타협하지 않는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다양한 경계점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최근엔 이 정도면 됐다는 경계, 이것은 안 된다는 경계를 넘어서려는 모습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몫으로 많이 들어왔다. 가령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고양이가 좋다는 경계를 짓는다. 그런 다음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다른 경계를 만나고 넘어선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감내하기, 고양이에 대한 시와 소설과 그림과 음악이 있다면 당연히 섭렵하기,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뉴스나 전문지식 수용하기, TV나 길거리에서 고양이가 보이면 그윽한 눈빛으로 한 번 더 바라보기, 고양이의 체질과 식습관 수시로 들여다보기, 고양이의 슬픔과 기쁨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기 등 만약 고양이에 대한 수용성이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떨까. 만약 에 고양이를 아끼는 또 다른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자신의 고양이를 며칠간 맡아 줄 사람을 찾는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가 바로 적임자야 라고 선언할 것이다. 그의 나이와 신분과 상관없이 그는 고양이 학교의 최고 책임자급이다.

 

요즘은 어떤 영역에서든 만든 이의 진심이 담긴 것을 좋아한다. 작은 리플릿 하나라도 정성을 다 기울이는 인쇄소를 찾고 꽃집에서 꽃다발 장식 하나라도 대충 만들지 않는 사람이 눈에 띤다. 쉽고 편하게 적당히와 적당히 타협하는 가게엔 단골이 없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선 자리에서 언제나 경계를 살피고 경계를 넘고 경계의 경계까지 한 걸음 더 들어갈 때 비로소 자신만의 정체성 같은 새로운 경계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속 세종도 오십에 이르러 한글을 완성했다. 그 일이 빛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극심한 경계점인 반대파의 소용돌이를 기어코 딛고 일어선 것이라면 어떨까.

 

한상권/심인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