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간호철학을 생각하며

밀교신문   
입력 : 2019-12-30 
+ -

thumb-20191111092049_f0e774625117626685b06586e833c60f_6ked_220x.jpg

 

한 학기의 종강이 다가오고 있다.

연구실과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사색들에 갈증을 느끼며 쉼 없이 달려왔던 학생들과의 수업이 하나씩 하나씩 마지막 책장을 덮어가고 있다. 매 학기마다 보람과 아쉬움 속에서 맞이하는 종강은 단순한 업무의 종료가 아니라 생각의 키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나무를 다듬는 일과도 같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 위에 어느새 계절도 옷을 바꿔 입고 있었다. 여름의 뜨거웠던 열정과 가을의 찬란했던 축제들이 자신의 쉼터를 찾아 돌아간 들판은 바람과 낙엽의 소리로 물들고 있었다. 알싸한 공기와 나목의 초연함은 언제나 세상살이의 본질을 느끼게 한다.

이번 학기에는 간호윤리와 철학을 강의하였다. 간호철학 수업자료를 만들기 위해 철학서적을 찾아보고 논문도 검색하면서 고민해보았지만 결국은 철학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철학에 대한 지식과 철학자들의 많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지난날 간호사로서 청춘을 불태웠던 시간 속에서 느끼고 발견했던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간호사 생활 수십 년을 통하여 깨달은 나의 간호철학은 육수간호(六水 看護)” 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육수(六水)’라는 말에 폭소를 터뜨리고 육수(六水)의 의미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감동의 제스춰를 보내주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근무를 하면서 항상 환자의 분비물을 만지게 되고 또한 인생의 슬픔과 고통이 삶의 곁에 함께 하면서 나는 좋고 싫음, 깨끗함과 더러움과 같은 이분법적인 생각들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간호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삶의 다양함과 깊이를 배우게 된 시간들이었다. 나는 환자를 돌봄에 있어서 그들의 소변, 대변, , 고름, 객담과 땀을 따뜻한 마음으로 만질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간호라고 생각한다. 마치 엄마가 아이의 대.소변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듯이 간호사는 환자에게서 나오는 분비물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지식과 기술보다 소중한 것은 간호사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함을 지키는 것이다. 간호의 현장은 추상과 관념의 세계에 빠져있던 내 생각에 인간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이성과 감성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학생들에게 부과한 기말 보고서의 주제는 간호의 철학적 주제와 그 수행방안에 대해 작성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들로 한줄 한줄 정성스레 적어 내려간 학생들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나는 나이팅게일의 후예들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철학을 좋아한다는 한 학생의 보고서가 간호에 대한 나의 생각에 종()을 울렸다.

나의 간호철학은 육감철학이다.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마음의 감각이라는 심각을 더해 육감이라고 하였다. 신체적 간호뿐만이 아니라 대상자의 고통을 같이 느낄 줄 아는 심각까지 더한 간호를 하겠다

간호철학 시간은 학생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간호에 대한 나의지평이 넓어지는 시간이었다. 바람이 일어나고 한 무리의 낙엽들이 창공을 휘돌아겨울 들판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제 곧 낙엽 위로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겠지.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는 것인가?

 

박현주/위덕대 간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