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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청춘, 한 번뿐인 선택

밀교신문   
입력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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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리면 어린아이처럼 된다고 한다. 아이처럼 보살펴야 하고 그만큼 손이 많이 가기 때문 인데 꼭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보살피던 존재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된다. 그때가 되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 시간에 저항하는 대신, 가슴 속에 묻어둔 청춘을 카세트테이프 돌리듯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을 배경음악 삼아, 더 많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하거나 사랑받았던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회고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과정은 자연의 이치지만 그 과정에서 한 번 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궤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다시 주어진 젊음으로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어떤 선택을 되돌릴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젊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한 번 더 맛보는 발칙한 상상 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마치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다면?’ ‘어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라는 질문처럼..

 

독자로서 읽은 네이버웹툰 <회춘>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젊어지고 싶다는 본능에 독특한 세계관을 입혀 우리가 지나치던 시간에 대해 상기 시켜 준다. 작품 속 세계관을 설명하자면, 모든 사람이 중년이 되면 더 이상 늙지 않고 다시 어려진다. 그렇게 한없이 어려지다가 신생아의 상태로 죽게 된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품 속 캐릭터에 공감하면서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생아 상태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을 잘 내포했다.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초반 회차는 세계관, 아들의 시선, 중년 엄마, 회춘 엄마, 청 춘 엄마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무르익어 간다.

 

<회춘>이 네이버웹툰에서 단기간에 높은 조회수를 달성하고 식지 않는 인기를 이어가는 데는 다 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작품을 읽을 때마다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복잡하게 엉 켜 엄마가 될 미래의 나와 딸이었던 과거의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가 아닐까?

작품 속에서, 늘 주방에 서 있는 게 익숙했던 엄마는 점점 젊어지고 사진으로만 보던 엄마의 젊 은 순간을 눈으로 직접 본 자식은 그제야 부모님의 청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젊음을 다시 얻게 된 부모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찾아 각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를 했으니 이혼을 요구하거나 놓쳤던 첫사랑을 찾아 나서거나. 인생을 즐기기 위해 한평생 가정을 꾸리지 않는 친구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만큼 다양한 사연이 나오고 그 어떤 것이 더 좋거나 나쁜지를 손가락질하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여자로서 빛나는 삶을 택하는 대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회춘 엄마가 방 모서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큐빅을 박은 정돈된 손톱을 자르는 뒷모습이 마치 눈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표현한 연출은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회춘>은 참신한 소재와 감성적인 연출로 젊은 세대, 부모 세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이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가족의 희생과 함께하는 순간들에 대한 의 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나한테 일어난 일상 속 에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간은 태어나면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현생에서 연을 맺는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떠나보내는 인연도 있지만, 남은 인연이 친구가 되고 또 하나의 가족이 탄생한다. 죽음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와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내가 지은 업보가 전세와 현생 그리고 내세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윤회하여 돌고 돈다면, 가장 가까이에 머무는 가족,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입장을 헤아리는 게 가장 큰 참회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선 웹툰처럼 두 번째 청춘은 없으니, 내 마음이 머무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빛난다. 홀로 거침없이 달리는 동안 걸음이 느려진 부모님을 저 멀리 두고 온 건 아닌지, 멀리서는 안 보였던 부모님의 흐뭇한 미소를 가까이 다가가서야 알 수 있듯이, 가족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봄이고 청춘이다.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양유진/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