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예술가로 피어나다

밀교신문   
입력 : 2023-06-29 
+ -


thumb-20230330085750_241aad98c1eb6d9cfe9a56fce10879f3_0q6d_220x.jpg

 

동네에 있는 작은 미술 학원에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들어왔다. “나 같은 노인이 그림을 배워도 될까요?”라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지만, 지팡이를 꼭 잡은 두 손은 긴장한 듯 떨고 계셨다. 어떤 그림을 배우고 싶은지 물어보니 본인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다. 인물화는 어려우니 간단한 꽃이나 나무 그림을 그리며 기초부터 차근차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자화상을 꼭 그리고 싶다는 노인의 마음을 바꾸진 못했다. 본인이 그린 자화상으로 영정 사진을 대신하고 싶어 하는 <노인의 꿈>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나이 듦에 서러워서일까, 젊었을 때 시도해 보지 못한 미련 때문일까. 늙고 병이 드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미래이다 보니 주인공의 담백한 독백에 마음이 쓰리다.

 

매주 금요일, 2년째 나는 화실에 가고 있다. 고단한 한 주를 보냈으니 나와서 놀자는 친구들의 부름 대신 화실로 피신 간다. 그림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다. 어릴 때는 그림 그릴 주제가 정해져 있었다면,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원하는 그림을 원하는 재료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얀 캔버스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고 알록달록한 색깔로 물들이다 보면 지치고 탁한 하루가 조금은 개는 기분이다. ‘언제 끝나지?’ 막막한 느낌을 마주할 때도 있고 망치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덮칠 때도 있다. 서두르는 마음을 다잡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끝나있고, 삐죽 튀어나온 부분은 진한 색으로 덮으면 그만이다. 멋대로 해도 괜찮은 게 그림이고 해석하기 나름인 게 예술이더라.

 

지난달, 직장동료가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회사에서 만난 첫 친구이자 인생 멘토이기도 한 그분을 위해 출산 선물로 그림을 그렸다. 태명이 과일 열매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쨍한 색감을 사용해서 여러 개 그렸다. 아이가 태어나도 본인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시리즈 형태로 네 작품을 기획했다. 나를 위한 그림만 그리다가 남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그림에 대한 태도가 훨씬 진지해졌다. 혼자만의 만족과 휴식으로 시작한 취미가, 남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니. 어느새 내 사진첩에는 그리고 싶은 다음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지나치던 일상 속 풍경도 캔버스에 담을 한 조각의 작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린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으로 짜인 각자의 커다란 캔버스를 물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붓을 들고 있지 않아도, 화실에 앉아 있지 않아도 우리 모두 시간의 캔버스를 채우는 아름다운 예술가들이다.

 

양유진/글로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