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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 인생

밀교신문   
입력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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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가질수록 좋은 건 줄 알고 채워 넣기 바빴다. 공간이 무한정 늘어나지 않았기에 소유하려는 욕심의 끝은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물건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입사 직전까지 차곡차곡 준비한 자기소개서엔 대외활동이나 수상내역으로 빼곡히 채웠다. 인생이 다채롭고 풍성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보증서 같았다. 종이 한 장에도 빈 공간을 두지 않으려 자꾸만 더하듯, 나는 채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침묵이 어색해서 적막을 대화로 채우려 했고, 누군가의 미움이 두려워 모두를 빠짐없이 챙기려 했고, 할 일을 빠르게 해치우고 쉴 틈 없이 다음 임무를 부여했다.

 

방에 물건이 쌓이면 사람이 서 있을 공간이 줄어들듯이, 인생도 채울수록 돌아볼 기회가 적어졌다. 위기감을 느끼고 하나씩 치우자 늘어난 공간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을 가까이한 삶은 가히 놀라웠다. 대화에선 불필요한 말을 빼고, 인간관계에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빼고, 생각에선 걱정을 빼고, 일에선 중요하지 않은 일을 뺐다. 뺄셈보다 덧셈이 익숙한 삶에서 조금씩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자 주변이 정리될수록 생각도 정리되었다.

 

처음 팀을 이끌었을 때 들은 조언이 있다. 물론 사업의 방향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때 당시 마음에 담아둔 조언은 뭘 하지 말까?’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고려해야 할 게 훨씬 많았다. 제한된 시간, 인력, 자원 속에서 누구보다 일의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기존 업무가 가중되는 거라 과연 지금 시점에서 정말 필요한 일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자칫하면 넘치기 쉬운 삶에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더욱 신중함이 필요하다. 빼야 할 게 참 많다. 몸이 무거우면 움직임도 둔해지니 일단 불필요한 지방부터 내 몸에서 빼야겠다.

 

양유진/글러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