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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60호)

편집부   
입력 : 2011-06-20  | 수정 :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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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dharma)에 의한 상생(相生)

보훈(報勳)의 달이다.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6일 현충일(顯忠日)이 있고,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이 달에 있었다. 무릇 한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란(戰亂)을 겪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분들에게 감사의 뜻과 더불어 추복(追福)을 서원 해 본다.

지난 20세기에도 백 년 동안 세계는 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양차(兩次)에 걸친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란 이라크전쟁, 발칸내전 등 유혈사태가 끊일 날이 없었다. 21세기 역시 전쟁의 암운(暗雲)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7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도 날마다 어디에선가 유혈충돌이 빚어지고 있으며, 해마다 1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는 전쟁이 10건 이상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란 말이 있다. 전쟁의 광풍(狂風)은 늘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폭력의 희생양을 양산(量産)해 낸다. 그런데 그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늘 권력과 먼 젊은이나 힘없는 노인,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서울 세종로 길거리에는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이 땅의 처참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서로의 총탄에 희생된 남북의 군인들은 물론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국 땅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외국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역시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간 50여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 이 땅의 백성들 모습이다. 우리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 못지 않게 이들을 위해서도 명복을 빌어야 하는 큰 뜻은, 이들의 죽음이야말로 억울하고 이유 없는, 그리고 값어치 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처럼 장엄한 서사시나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피를 부른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참혹한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쟁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쟁의 원인을 크게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향, 정치경제문화종교 각 부분의 갈등과 대립, 국제 체제상의 문제점 등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나 나라 간 갈등보다는 정치지도자 개인의 성향과 야망이 전쟁의 큰 원인이 된다고 한다. 나폴레옹, 아돌프 히틀러 또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모두가 탐진치의 결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근 6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로서, 양측 합하여 170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대치중이며, 여전히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상태이다. 그러나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공멸(共滅)이요,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파멸이다.

불자들은 누구나 전륜성왕 아쇼카를 잘 알고 있다. 마가다국 제3왕조인 마우리아제국의 세 번째 임금이었던 아쇼카. 그의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의 피로 강을 이루었다고 할 만큼 수많은 인명을 살상함으로써 오늘날의 인도 대부분을 지배한 바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피비린내 나는 욕망의 극한적 상황에서 몸서리치는 체험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칼링가를 정복하면서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의 영토가 수많은 시체로 덮인 광경을 바라보면서 (중략) 이유 없이 죽거나 부상당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나는 후회와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중략) 앞으로 나는 오직 진리에 맞는 법(法)만을 실천하고 가르칠 것이다. 나는 진리의 법에 의한 승리만이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을 얻은 그는 불교의 이상을 세속에서 구현하는 전륜성왕이 되기에 이른다. 잔인무도함의 대명사였던 아쇼카왕의 깨달음[覺]. 즉 '힘에 의한 지배'를 포기하고 '다르마(dharma·法)에 의한 정치'를 표방함으로써 사후 최초의 전륜성왕으로 불법수호의 상징이 되었던 그의 교훈을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조금이나마 깨닫는다면, 최소한 이 땅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