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37

허일범 교수   
입력 : 2002-11-04  | 수정 : 200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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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와 천수경의 의식 1. 천수경의 내용체계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천수경은 불가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경전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경전의 찬술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불교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이 경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조선시대 사원의 건축물에 도화된 천수다라니의 활용빈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천수경은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어떤 대장경에서도 찿아 볼 수 없으며, 오직 찬술된 경전으로 우리들의 곁에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형태의 것과 유사한 한역경전에는 불공이 번역한 금강정유가천수관자재보살수행의궤경, 지통이 번역한 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 가범달마가 번역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등이 있다. 그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독송되고 있는 천수경은 가범달마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을 근간으로 편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중에는 이 경전에서 중심이 되는 다라니라고 할 수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다시 말해서 대비심다라니가 채용되어 있다. 이 다라니는 천수경의 독경의식에서 공덕을 산출시키는 공덕성취다라니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이래 사원 건축물의 단청이나 불화등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경전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경전의 의식체계가 지극히 밀교적인 의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천수경의 구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로 봉청단에서는 정구업진언을 통하여 지송자 자신의 입을 깨끗이 하고,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을 통하여 오방의 제신들을 위무하고, 개경게와 개법장진언을 독송한다. 이어서 이 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천수관음을 계청하기 위한 서원문을 봉독한 후, 서원의 성취를 기원하는 천수다라니를 독송한다. 두 번째 수법단에서는 사방의 정화를 위한 사방쇄정찬을 하고, 도량의 정화를 위한 도량찬, 제존앞에서 참회서약을 하는 참회게, 수법자 자신의 실천참회를 위한 십악참회와 참회진언독송, 준제관음에 대한 공덕찬과 명호독송, 정법계, 호신, 육자대명왕진언, 준제진언을 독송한다. 이어서 준제서원을 끝으로 이 단을 마친다. 세 번째로 회향단에서는 여래십대발원문, 사홍서원을 독송하고, 삼보에게 귀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경전은 관세음보살 신앙을 근간으로 해서 성립되었으며, 변화관음인 천수관음의 공덕성취를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천수경은 구조적인 면에서 의궤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독송용이라기 보다 전문인에 의한 의식집행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계에서 는 천수경의 의식차제가 전승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독송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독송용경전으로 변용되고 말았다. 특히 천수경에는 천수관음이 가지는 포괄성으로 인하여 다양한 종류의 관음들이 등장하고, 관세음관련 진언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진언과 다라니가 그러하듯이 이들 경전에 채용된 진언과 다라니는 경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이들 진언과 다라니는 마치 반야심경에서 반야심주가 독립적으로 독송되듯이 독립된 다라니와 진언으로 전개되어 갔다. 2. 밀교와 천수경의 의식 천수경의 의식차제는 봉청단, 수법단, 회향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체계는 밀교의식의 차제에서 널리 쓰이는 방식으로 천수경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마도 이런 면에서 천수경을 밀교경전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먼저 삼단구조로 된 천수경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서두의 봉청단은 정구업진언으로부터 신묘장구대다라니까지 이고, 중반부의 수법단은 사방찬에서부터 서원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기를 원하는 것입니다"에 이르기 까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회향단은 여래십대발원문에서부터 발원이귀명례삼보에 이르기 까지이다. 첫 번째로 봉청단에서는 정구업진언을 독송함으로써 지송자 자신을 정화하고,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을 독송하여 오방신중의 위요를 기원한다. 그리고 나서 개경게를 독송하여 이 경의 위대한 가르침을 수지하기를 서약하고, 개법장진언을 독송하여 경전에 담긴 법계의 진리를 증득하기를 서원한다. 다음에 이 경의 본존인 천수관음에 대한 공능을 찬탄하며, 그 존을 수법자 자신에게 불러들이는 관상을 하고, 그 다라니를 독송하여 자신에게 불러들인다. 여기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다시 말해서 천수다라니의 역할은 제관음을 자신의 몸과 마음속으로 불러들이는 소청다라니의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수법단은 실재로 의식작법의 의미가 강하다. 먼저 사방찬에서 사방을 쇄정하는 작법을 행하고, 도량찬에서 수법도량을 관상을 통하여 정화하며, 참회게를 통하여 제존앞에 수법자 자신이 참회를 서약하며, 십악참회를 통하여 스스로 자신의 실천참회를 행하면서 참회진언을 가지고 참회의 견고함을 다진다. 그리고 나서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을 독송하여 준제관음의 강림을 기원, 정법계진언으로 정법계가 전개되기를 서원, 호신진언으로 청정한 자신을 보호해 주기를 기원한다.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으로 육자대명왕진언의 공덕이 수법자 자신에게 깃들며, 스스로 그 공덕을 획득했음을 확신, 이어서 준제진언으로 자신의 서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세 번째로 여래십대발원문을 통하여 수법자 자신의 공덕성취가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발원, 발사홍서원을 통하여 자신이 성취한 공덕이 원만히 회향되기를 서원한다. 그리고 발원이귀명례삼보를 통하여 자신이 성취한 공덕이 모두 불법승 삼보에 있음을 밝히고, 그들 삼보에게 귀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천수경은 내용상으로 짧은 경전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의식집행용으로써 손색이 없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밀교의 의식차제와 유사한 부분들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현재 활용되고 있는 천수경에서 결인법이 쓰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밀교적 생동감을 느낄 수 없지만 경전의 첫머리에 있는 정구업진언이나 사방찬, 쇄정법등은 밀교의식에서 행자의 위의와 도량의 정화를 위해서 행하는 의식중에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진언들이 발견되는데 이것들도 또한 밀교적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진언이 아니라 소청용, 공덕용, 봉송용등의 진언과 다라니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천수경도 밀교적 입장에서 해석되고, 밀교의 의식에 채용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