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35

허일범 교수   
입력 : 2003-03-06  | 수정 : 200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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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적 불상의 조성 안성 칠장사 석조부조물 경전 근거한 사불 표현 충남 예산군 봉산 사면석불 오방불 신앙의 원류로 꼽혀 1. 봉산의 백제 사방불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는 자연석의 네 면에 부조되어 있는 사면석불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은 백제의 사면불로 우리나라 사면불 조성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 오대산을 중심으로 한 오악 오불보살신앙이 있었지만 실재로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 각각의 방각에 불보살을 조성한 예는 없었다. 우리들이 백제에서 조성한 사면불에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은 밀교적 사면불 조성의 원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석불들은 훼손상태가 심하기 때문에 사방에 부조된 존상의 종류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석불들의 특징은 불두에 비해서 육계가 작고, 광배에 조각된 불꽃무늬와 연꽃무늬를 한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이 매우 깊으며, 가슴아래의 옷 주름은 유자형으로 겹쳐있다. 발목 끝까지 내려온 옷자락은 오메가자형으로 되어 있다. 불교의 경전들에서는 초기불교 이래 방각에 대한 신앙이 내려오고 있다. 특히 힌두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각각의 방각에는 방각을 수호하는 신격들이 있으며, 이들은 수행자와 불보살들을 수호한다는 신앙이 있었다. 이것은 다시 불교적인 교리와 융합하여 각 방향에는 각각 불보살들이 머물고 계신다는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아축불국경이나 아미타경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동방에는 아축불이 계시며, 서방에는 아미타불이 계신다는 신앙이다. 이것은 다시 동서남북에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이 계신다는 신앙이 되고, 이와 같은 신앙은 점점 조직화되어 밀교경전에 이르게 되면 오방불신앙으로 전개된다. 다시 말해서 사방불신앙은 오불신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봉산의 사면석불은 우리나라 오방불신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칠현산의 조선 사방불 실재로 밀교경전에 나타난 오불 중에서 사불을 표현한 예는 경기도 안성시 죽장면 칠장리에 위치하고 있는 칠장사 대웅전 앞 석조부조물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이 석조물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당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의식과 무관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찰은 7세기 중엽에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 헌종5년(1014) 혜소국사 정현이 중건하였고, 여러 차례의 중창불사가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16세기 초 이후 19세기 말까지 4차례의 중건불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칠장사에는 당간, 혜소국사비, 인목대비 친필족자 등의 지정문화재와 대웅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 석탑, 동종 등이 남아 있다. 대웅전은 고려 말에 창건되었으나 조선시대 연산군 때 중창되었고,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고종14년(1878)에 중건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상과 오불회괘불탱화, 육자진언각인범종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최근까지 세인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대웅전 앞의 사방사불석물이다. 현재 그 용도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석물의 윗 부분은 반구형으로 음각되어 있고, 석물의 정면에는 좌수 여원, 우수 설법인의 부처님, 측면에는 좌수 여원, 우수 촉지인의 부처님, 후면에는 정인의 부처님, 또 다른 측면에는 좌수 여원인에 보주, 우수 설법인의 부처님이 부조되어 있다. 이들 부처님들은 각각 아촉불, 아미타불, 보생불, 불공성취불로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를 구유하고 있는 존격들이다. 이들 사불은 금강정경의 기본을 이루는 진실섭경 및 그 부속의궤인 금강정탄트라나 금강지역의 약출염송경의 내용을 통하여 그들의 활동상을 알 수 있다. 3. 사면불의 밀교적 의미 먼저 석물 중의 동쪽 측면에 부조된 아축불은 촉지인을 결하고, 좌권을 위로 향하게 해서 무릎 위에 두고 있으며, 오른손을 펼쳐서 아래로 향하게 한 다음 손가락 끝을 땅에 댄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태장만다라의 천고뇌음불의 인과 동일하며, 석존이 보리수하에서 성도했을 때 악마의 방해를 무찌른 인을 나타낸다. 경전에서는 아축이 주재하는 금강부의 제존은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불의 항마촉지인은 인간의 내외를 둘러싸고 있는 장애를 제거하고, 진리가 갖춘 영원성과 보편성을 발현시킨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석물 남쪽측면의 보생불은 왼손을 아축과 마찬가지로 무릎 위, 오른손을 무릎이 있는데서 바깥쪽을 향하여 벌린 여원인을 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태장만다라의 보당불와 같은 인으로 중생의 원을 듣고, 재보를 베푸는 것을 나타낸다. 이 불은 중생들의 물질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번뇌에 싸여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존재들의 가치를 발견해 내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석물 후면 서쪽편의 아미타불은 무량광불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태장만다라의 아미타불과 같은 정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용히 명상에 잠겨 괴로워하고 있는 중생에게 따뜻한 자비를 베풀며,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는데 방황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불이다. 또한 자아에 도취되어 있는 부질없는 애정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로 육성시켜 주는 책무를 맡고 있다. 끝으로 석물 정면의 불공성취불은 좌권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 손을 가슴이 있는데 두고, 손가락을 위로하여 바깥쪽을 향하여 펼친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태장만다라의 개부화왕불의 인과 동일하다. 이 불은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하는 활동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시무외인은 대일여래의 성격 중 실천적인 면을 담당하며, 중생교화의 실제적인 활동에 의해서 중생의 공포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칠장사 대웅전 앞 석물의 사불부조상은 경전의 내용과도 일치하는 분명한 금강정경계통의 존형들이다. 아마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경전의 내용과 일치하는 밀교적 사불이 발견된 예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들은 고려시대이래 금강계오불의 진언이 우리나라에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오불이 존형으로 조성된 예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칠장사의 석조부조물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