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23

편집부   
입력 : 2015-01-30  | 수정 : 201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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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대로 받는다

"만약 심인이 없다면 죄를 지어도 안 받을 수가 있으니 믿고 복을 지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심인이 있으므로 죄를 지어도 빠짐 없이 받게 되고 복을 지어도 어긋남이 없이 지은 대로 받으므로 꼭 믿고 복을 지을 수가 있다. 사람에게 하심(下心)은 만복의 근본이 되고 귀신과 모든 마장들을 용맹으로 이기면 행복이 된다."('실행론' 제2편 제4장 제4절 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굽은 나무가 산소를 지킨다고 했다. 반듯하게 자라지 못해, 목재로 쓰일 수가 없어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길도 그렇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이라 변함 없이 호젓한 분위기를 간직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잘 닦여진 신작로는 포장이 되어 쌩쌩 달리는 차들로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다. 둘레길은 다르다. 기어가는 뱀처럼 휘고 굽은 길이라 더 넓혀지지도 않았다. 움푹움푹 파인 곳이 많아 울퉁불퉁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추억을 더듬어 건빵을 즐기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한다면서 꽁보리밥을 파는 집이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는 세상이다 보니 하찮은 첩첩산골 시골길이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다. 기껏해야 농로 정도로나 이용됐던 길이 등산화를 신고, 등산복을 차려 입은 도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지 두 시간이나 지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목이 타고 등산화 끈도 풀린 듯해 상훈은 앞에 보이는 원두막 모퉁이에서 쉬어갈 생각을 했다. 새로 산 등산화라 끈을 꽉 조이지 않았던 게 실수였던 탓이다.

원두막은 높지 않게 지어져 있어 평상처럼 걸터앉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상훈은 등에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풀어서 내려놓고 원두막에 걸터앉았다. 등산화 끈마저 풀어헤치고서는 엉덩이를 뒤로 물려 아예 드러누웠다. 그때 발 쪽에서부터 시원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등산화에 파묻혀 있던 발이 해방되면서 느껴지는 시원함이거니 했던 생각은 금새 사라졌다.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건들마였다.
건들마에 취해 스르르 든 잠에서 깨어난 상훈은 한참을 뒹굴뒹굴하다가 일어나 앉았다. 건들마가 불어온 곳을 향해 돌아앉자 콩밭이 눈에 들어왔다. 건들마를 불러일으킨 콩잎이 어울려 새파란 둘레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눈이 즐거웠다. 상훈은 이내 몸을 일으켜 콩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어린 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두어 살은 많은 용호가 늘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3년 내내 들었던 말이다. 그가 두어 살은 많았지만, 중학교 입학이 늦어 같이 다녔던 것이다. 용호의 나잇값은 학교에서도 인정됐다. 인사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찾아 매일 청소를 하는 모범생으로 정평이 났다. 월요일이면 늘 있었던 아침 전체 조례시간마다 교장의 한 말씀 단골메뉴가 ‘용호를 닮아라’는 것이었을 정도로 그의 행동은 학생들의 생활규범으로 자리하기까지 했다.

교장이 됐건, 어느 선생이 됐건 쏟아지는 칭찬에 아랑곳없이 용호는 누구보다도 먼저 등교해 휴지를 줍거나 청소를 하면서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말을 주문처럼 쏟아냈다. 그의 행동이 기이하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말은 그의 전용구호가 됐다.

상훈은 콩밭 가장자리에 앉아 용호를 떠올리며 당시의 일들을 생각하던 중 자신도 모르는 새 미소를 머금었다. 콩밭은 용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마중물에 다름 아니었다.

용호가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라고 한 말이 그의 겉모습을 읽을 수 있는 말이라면, 콩이 싹을 틔우는가? 땅이 싹을 틔우는가? 하는 문제는 용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화두였다.
상훈이나 용호가 3학년 때였다. 좀체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한 말싸움은 교장과 선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용호의 행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교장이 오랜 시간 궁리한 끝에 논쟁의 불씨를 당긴 것이었다. 초반에 선생들은 한패였다. 당연히 콩이 싹을 틔운다는 쪽이 우세했다. 콩이 싹을 틔운다는, 상식선상에서 두말 할 것 없이 당연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와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쪽, 곧 열세들의 주장은 한참 뒤에 나왔다. 땅이 없으면 콩이 어떻게 싹을 틔울 수 있겠는가 하는, 논리도 정연하고 타당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판단은 유보된 채 끝없이 이어질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교직원회의 끝 무렵이나 삼삼오오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 논쟁이 가장 뜨거운 이야기 거리였다. 어느 한 쪽도 다른 쪽의 생각을 쉬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당연히 판단은 내려질 수 없었거니와 결론을 단정지어 말할 수가 없었다. 팽팽한 신경전이 나날이 계속됐다. 

교장은 교사들간의 치열한 논쟁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였다. 교장은 3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용호를 교장실로 불렀다. 서무과 직원이 용호를 부르러 다닌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 다음부터 용호는 스스럼없이 교장실을 드나들었다. 교장의 특별배려에 용호가 말려들었는지, 용호 스스로가 교장 만나는 일을 즐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밀담은 비교적 오랜 동안 이어졌다. 용호가 교장실에 들어갔다 하면 금새 나오는 법도 없었다. 한 번 만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짧게 끝나는 날이 없었다. 교장과 용호가 이상한 사이라느니,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나돌 때까지 두 사람의 밀회는 지속됐다. 교장실에 무지갯빛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본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교사들의 열띤 논쟁 끝에 새로운 화젯거리로 교장과 용호 사이의 관계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하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낙서 하나가 발견되면서 심각성이 드러났다. 그 날 이후로 교장은 더 이상 용호를 부르지 않았고, 용호도 교장과 만나는 것을 꺼렸다.

바닥에 떨어진 럭비공이 튈 곳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논쟁의 결과와 종착점이 안개 속에 파묻혀 있을 때 매듭을 지은 것은 교장이었다. 더 이상 사태를 지속시켜서 좋을 것이 없겠다고 판단한 듯 교장은 아침 조례시간에 말을 꺼냈다. 교사들은 물론 전체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건을 종결짓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두 쪽 다 틀렸습니다. 이 논쟁의 승자는 용호 군입니다. 본인과 용호 군은 여러 날, 많은 시간을 두고 아름다운 토론을 했습니다. 정답은 용호 군이 밝힐 것입니다. 용호 군 앞으로 나오세요.”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콩이나 팥이나 심지 않고서는 싹이 날 수 없습니다. 정답은 심는다는 말에 있습니다. 어디에 심겠습니까? 땅입니다. 콩이 땅을 만나야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용호가 단상으로 올라서기까지 여기저기서 들렸던 소란스러움은 이내 잠잠해졌다. 용호는 진작에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