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6

편집부   
입력 : 2016-06-01  | 수정 :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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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정신의 원리

"자기가 처분할 수 있고 자기 소유라 할지라도 전부가 자기 것이라고 여기면 내보내는 것을 아깝게 생각한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소유가 반(半)이고 자기의 소유가 반이라고 인정하면 부처님에게 희사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생각된다. 이것이 희사정신의 원리이다."('실행론' 제2편 제10장 제1절)

아낌없이 주는 변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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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당은 예쁜 아가씨가 처음 만난 남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듯이 불그레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 산과 들을 뒤덮은 붉고 고은 단풍에 물들어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만추당 안마당에 드리워져 있는 그늘 역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곳간에는 곡식도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고, 어느 한 곳 모난데도 없었습니다.

여울 변화새가 가을을 나기 위해 만추당에 찾아 들었습니다. 지난 번 가을 만추당에 들렀을 때보다 곳간의 곡식은 더 늘었고, 분위기 또한 한결 좋았습니다. 한 철 앞서 가을을 보내고 떠난 다른 변화새가 만추당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다듬어 놓았던 것입니다.

변화새는 계절감각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차례대로 날수도 있고 봄, 가을, 여름, 겨울 식으로 바꾸어 지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철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3개월마다 무조건 변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3개월마다 머무를 집을 찾아 이동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 일가친척쯤 되는 네 무리가 공동으로 춘원각, 하림정, 만추당, 동빙고를 지어놓고 번갈아 들면서 한 철씩 나고 떠나는 것입니다. 3개월마다 다른 계절감각을 스스로 선택해서 지니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었지만, 머물다가 떠난 곳을 그 전보다 더 정성스럽게 가꾸고 정비하면서 곳간의 곡식이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 또한 무너뜨리지 말아야할 의무이자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변화새들은 계절 집을 새로이 찾아들 때마다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추당이 붉은 빛을 띈 포근한 계절, 가을 집이라면 춘원각은 이루 다 셀 수조차 없는 꽃들로 치장된 장엄한 꽃 대궐인 봄의 집입니다. 방방곡곡 꽃향기가 진동하고, 이웃해 있는 다른 무리의 춘원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또한 꽃 타령 일색입니다. 봄꽃 천지에 소담스럽게 솟아올라 있는 춘원각 역시 한 송이 봄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하림정은 여름 집입니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를 잡은 하림정은 아름드리 큰 나무들을 지붕으로 삼고, 키가 나직한 나무들을 벗삼아 오순도순 어울려 있는 별장 같은 곳입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조차 모를 서늘한 바람은 늘 가까이에서 한들한들 일렁거렸습니다. 하림정 둘레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벗삼아 쉴 때는 세월 가는 것도 잊게 했습니다. 동빙고는 겨울 산장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얼음으로 지은 집이지만,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동빙고 안은 추위를 견디기에 안성맞춤인 아늑한 곳입니다. 가을에 추수를 해 놓고 떠난 동족의 변화새를 대신해 곡식을 선별하고 저장하는 작업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지요. 바로 다음 동빙고를 찾아들 무리의 변화새를 위해 충분한 먹을거리를 준비해두는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터로서의 매력까지 갖춘 겨울 집은 몸과 마음까지도 넉넉히 살찌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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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는 모처럼 쉬는 휴일 아침 상상 속의 새인 변화새들의 삶과 생활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낌없이 나누는 변화새’라는 책을 읽다가 그대로 가슴 위에 얹어놓고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변화새들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았다. 주인공인 여울 변화새를 비롯한 모든 변화새들이 한결 같이 다른 변화새를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마음 씀씀이로 인한 진한 감동이 한동안 되새겨지면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사람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하고 책을 읽던 중이었다.

변화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부천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한 부부의 기부행위를 떠올리게 했다. 영채의 삶을 변화시켰던 부부였다. 자신들은 최소한의 여건만 갖추고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해 얻은 각종 수익금 대부분을 쏟아 부어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소문으로 드러나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숨은 실천행만 고집하다가 그들의 은혜를 입었던 한 노파가 남겨 놓은 유언장을 통해서 흔적이 공개됐던 것이다. 이후 그들은 수많은 기자들의 질문공세와 끈질긴 인터뷰 요청에도 결코 응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문장의 짧은 글을 써서 공개했다. 첫 문장은 “다른 사람들도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라고 썼다. 그들이 한사코 나서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글을 공개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여 벌어온 재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부처님의 재물을 내가 잠깐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 은혜를 모르지만 철이 좀 들면 그 은혜를 알게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일월(日月)을 보게 되고 성장을 하는 것은 모두 부처님 은혜입니다. 부처님께 먼저 복을 짓고 나머지는 자기 현실생활에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총총.”

첫 문장에 이어진 두 번째 문장은 ‘실행론’에 있는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는 글이었다. 누구나 스스로 노력해서 벌어들인 수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주법계 모든 인연 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얻어진 결과이기에 결코 혼자 성취한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을 지극히 믿고 행했다는 이야기다. 그 부부는 본래 혼자 쟁취한 것이 아니기에 나누면서 돕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기에 이름을 알릴 필요도, 얼굴을 드러낼 이유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셈이었다. 이후 이들 부부에 대한 어떤 소식도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서 보다 더 철저하게 자기들을 숨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부의 메시지는 짧았지만 울림은 컸다. ‘짧고 굵은’ 부부의 글로 감동을 받은 이 중 한 사람이 영채였다. 영채는 이들 부부의 소식을 들은 그 다음 달부터 유니세프에 기금을 내기 시작했다. 주말을 이용해서는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다음 달부터였다. 서먹서먹하고 내키지 않은 일들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부부의 글을 떠올리면서 참아냈다.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가는 곳마다 비치용 카드를 작성한다며 이름을 비롯한 각종 신상명세를 요구했던 것이 이유 중 하나다. 영채는 그 때마다 다른 이름을 써주었다. 한동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낭패를 볼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다음 차례가 닥쳐 방문했을 때 불러주는 이름이 생소해 영채 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방문지마다 다르게 썼던 이름을 메모해 두는 등의 갖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철저하게 위장하기도 했다.    

가슴에 얹어 놓았던 동화책을 접으면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영채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수첩을 펼쳤다. 한서연. 오후시간 봉사활동을 하러 갈 곳에서 그를 대하며 누군가가 불러줄지도 모르는 영채의 다른 이름을 확인했다. 변화새에 사로잡혀 있다가 아침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해버렸기 때문에 서둘렀다. 그렇다고 시간이 촉박해 발을 동동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서연, 아니 영채는 머리띠를 두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자기가 변화새로 변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