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9

편집부   
입력 : 2016-10-16  | 수정 : 20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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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한 마음으로 행하라

"우리의 수행은 구정물을 맑은 물로 만드는 법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외마(外魔)의 해독을 입지 않는다. 보배구슬을 진흙 속에 묻어두고 주리고 배고픈 고통을 스스로 취한다. 사람의 칭찬보다 불(佛)의 칭찬 받기를 원해야 한다. 사람이 못 다스리는 것은 법계에서 다스린다."('실행론' 제3편 제3장 제7절 가)

씽킹컨트롤체인지센터

'생각을 바꾸면 만사형통 하리라. 생~통!'
힘없는 발걸음으로 추적추적 길을 걷던 김 여사는 용수철이라도 밟고 올라선 듯 순간적으로 몸이 솟구치는 감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떨군 채 길을 걷고 있었던 터라 땅바닥에 용수철은커녕 쇳조각 하나 보지 못한 터라 놀란 가슴은 좀체 진정되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칠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오른 손을 목덜미에 대고서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김 여사에게 자극을 가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눈을 의심할 만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생각을 바꾸면 만사형통 하리라. 생~통!' 철학관인 듯, 마인드컨트롤센터 같은 곳인 듯 알쏭달쏭한 간판만 덩그러니 보일 뿐이었다. 2층과 3층 사이에 붙어있는 간판만 봐서는 그곳이 몇 층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애매하게 붙어 있었다. 

김 여사는 보나마나 마찬가지고, 하나마나 뻔한 소리를 늘어놓겠거니 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발걸음을 떼어놓으려 했으나 이제는 발이 땅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양 떼어지지가 않았다. 왠지 자리를 떠나고 나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마음도 들어 발걸음을 좀체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그래,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처럼 온 몸에 생기가 돌고 기분까지 좋아진 듯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당신의 생각을 바꿔드립니다. 씽킹컨트롤체인지센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 여사는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센터 문 앞에 섰다. 김 여사를 맞이한 것은 알 듯 말듯 한 안내문구였다. 자석에라도 끌리듯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유리문이 밀쳐졌다. 문이 아주 부드럽게 열리면서 풍경소리가 뒤따라 올렸다. 실내는 고급 저택의 거실을 옮겨 놓은 듯 한 눈에도 널찍하게 보였으나 소품 정도만 군데군데 놓여있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하게 느껴졌다. 벽과 천장은 모두 화이트칼라로만 채색돼 있어 담백함을 주면서 아늑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도록 꾸민 듯 했다.

“생각이 많으시죠?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도 아프고 몸까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생각을 내려 놓고 편히 앉으세요.”
그동안 몇 번이나 망설인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2:8 가르마를 하고 하얀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 앞으로 와서 앉으라며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이내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갖춰 입은 아가씨가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무슨 차를 드시겠느냐며 대여섯 가지의 차 이름이 적힌 족자모양의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차는 괜찮은데, 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남자가 괜찮습니다, 드시고 싶은 차를 말씀하세요, 라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나직한 말투여서 여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송화차’라고 쓰인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족자모양의 메뉴판을 들고 아가씨가 자리를 떴다.

“어떤 상담을 해주는지….”
본론으로 들어가 궁금했던 바를 질문하려고 운을 떼려는데 조용히 있으라는 투로 남자가 집게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살짝 갖다대고는 내렸다. 김 여사는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앉아서 남자가 하는 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나타난 아가씨가 송화차를 담은 하얀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다시 자리를 뜨자 남자가 손바닥을 펴 찻잔을 가리켰다. 차를 마시라는 투였다.
“천천히 하세요. 그동안 너무 바삐 오셨어요. 남편은 떠나고 다 커버린 자식들은 결혼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생각이 무거우시죠?”
김 여사는 순간적으로 예,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고 대꾸를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참 신통방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썩 내키지는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 했듯이 센터에 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나니 송화찻잔 속 찻물만큼 고요해진 것 같기도 했다. 생각이 무겁다는 말이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남자의 말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것이 있는 듯도 해 보였다.
“자식놈이 언제쯤 장가를 갈까 하는 것이 걱정인데….”
김 여사는 다시 용기를 내 하고 싶은 말을 뱉어냈다.
“걱정이죠. 그렇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서 과연 장가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장가를 가게 됩니까요?”
“그렇죠. 여사님의 생각도 바꿔야 하겠지만, 장가를 가야할 아드님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져야 되겠지요.”
“생각을 어떻게 바꾸는데요?”
“구정물이 가득 차 있는 양동이를 맑은 물이 가득한 상태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구정물을 다 비워내고 맑은 물을 채워 넣든지, 맑은 물을 조금씩 채워 넣으면서 구정물을 다 비워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실행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행동으로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도 수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요.”
“수행이라면….”
“수행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 먹으며 행동을 변화시켜서 생활을 좋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방안에 따뜻한 공기가 가득 차면 찬 공기가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빨리 했으면 싶어도 결혼해야할 당사자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거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상대자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 이유부터 분석해보고 의논을 하면서 길을 찾아야겠지요. 결혼해야 될텐데 하고 생각만 해서는 혼인이 성사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혼을 하려는 움직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남자는 팁을 하나 준다면서 아들에게 결혼을 하라고 몰아치지만 말고 더 잘 지켜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은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 먹으며 행동을 변화시켜서 생활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행처도 소개해 주었다. 남자가 소개해준 곳은 심인당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도 한 심인당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덤으로 들려주었다. 씽킹컨트롤체인지센터는 이득을 얻기 위해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은퇴 후 뜻을 모은 몇몇이 무료로 상담활동을 해주는 곳이라고 밝히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사사건건 갑갑하게 여기고 안달하면서 조증을 냈던 김 여사는 씽킹컨트롤체인지센터를 나서면서 예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채 30분도 안 되는 상담을 받으면서 단지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 한번 다잡았을 뿐인데 몸조차 한결 가벼워진 듯 했다.                                              

정유제 소설가